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인터뷰를 보고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인터뷰를 보다 저 말을 들었다. 인간의 성실함이란 운명이라는 큰 힘 앞에는 워낙 보잘것 없기에 하고자 하는 일이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여서다. 그렇다고 아침에 눈을 뜨고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아무렇게나 살아도 되는가 하면 그건 아니다. 다시 그의 말을 빌면 길고 넒은 시간의 범위는 통제할 수 없지만, 세분화된 짧은 시간은 그나마 우리의 할 바가 있으니 하루라도 성실히 임하겠다는 다짐이란다. 어찌 보면 잠시 후도 어찌 될지 모르는 인간에겐 하루라는 시간도 긴 시간이다. 이 중 자신은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를 더 강조하고 싶다고 했다. ‘진인사(盡人事)‘ 했으면 ’대천명(待天命)‘ 하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내가 많이 듣고 공감하는 부분이지만 나는 그의 다음 이야기에 나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뷰 진행자가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지금 모습이 있기 전 그가 어떤 좌절과 어려움을 헤쳐왔고 그것을 극복한 스토리를 듣고 싶다고 했더니 부드럽게 거절하면서 대강 이런 말을 했다. “자신의 좌절과 고난 극복의 과정을 감동 있게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건 그런대로 좋다고 생각해요. 물론 제게도 크지는 않지만 실패와 좌절, 어려움이 있긴 했죠. 하지만 저는 그런 이야기를 지금껏 하지 않았어요. 그 이유가 사람마다 나름의 아픈 경험들은 있게 마련이고, 그건 저마다 감내하고 견뎌야 할 무게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과거의 실패, 좌절을 극복했던 이야기를 않는 사람이 되기로 했어요. 그냥 저는 그런 사람인 거죠.” 솔직히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반면 나는 지난 좌절, 실패를 이겨낸 경험을 너무 떠벌린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맞다. 어떤 인생이건 이런저런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그 좌절과 실패를 극복하고 지금 좋은 모습이 되었을 때 보통은 “봐라, 내가 이런저런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오늘의 내가 되었다" 라는 말을 한다. 누군가의 좌절을 극복한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 재미난 스토리에 빠져들게 되고 말하는 사람은 더욱 심취해 개선장군 마냥 이야기 한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그가 어려움을 극복한 것이 정말 온전히 그의 힘만으로 가능했을까? 그렇진 않을 것이다. 어떤 이는 그 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살았어도 결과가 실패로 끝난 이들도 많으니 하는 말이다. 이는 많은 부분 운에 기인한 면이 크다. 자신의 성공을 ‘운이 좋았다’로 돌릴 수 있는 사람은 그래서 참 단단한 사람 같다.
그의 인터뷰를 보면서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을 떠올렸다. 왜 요란할까? 혹시 남의 인정을 갈구하는 마음 속 거지가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세상에는 나보다 더 능력 있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다 잘 되는 것은 아니다. 상당 부분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운의 영역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누리는 삶,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취한 것 등이 나의 성실과 결단도 어느 정도 기여는 했겠지만 그 보다는 더 큰 운명이라는 큰 수레바퀴에 맞아 떨어진 면이 더 크다. 이제부터 나는 과거의 어려움을 극복했던 이야기는 하지 말자. 그 무게는 내 인생에서 감당해야 할 무게였고 다른 이들에 비해 운이 좀 좋았던 게 사실이었다. 이것을 마치 모두 나 잘나서 그런 양 떠든다는 자체가 빈 수레가 되는 것 같아서다. 나에게 교훈을 준 이동진에게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