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시대 우크라이나를 보며 드는 생각
미국 트럼프의 취임 후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나라가 우크라이나이다. 이번 전쟁으로 27% 가까운 영토를 러시아에 빼앗겼고, 전쟁 지원 대가로 광물자원의 50%는 미국에 바쳐야 한다. 대규모 인명 피해와 국외 탈출, 잿더미로 변한 전쟁의 상흔만 남았다. 게다가 종전 협상의 당사국에서 배제된 모양세라 내부적으로 '우리는 이 전쟁을 피할 수 없었나?'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사실 피할 길은 있었다. 다만 지도자의 무능과 러시아를 미워하는 국민들의 정서가 그 길을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이 전쟁은 시작부터 우크라이나가 승산이 없는 전쟁이었다. 그리고 전쟁이 길어질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크라이나가 떠안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전쟁의 장소가 우크라이나 땅이었고 무기들은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트럼프는 취임 이후 우크라이나에 전쟁 비용 청구서를 내민 격이다.
개인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관심이 있어 러시아나 중앙아시아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을 기회가 종종 있다. 러-우 전쟁에 대한 그분들의 공통된 견해는 모든 게 러시아에 유리하게 흘러간다고 했는데 국내 언론은 러시아가 마치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어 이상히 여겼다. 이는 기자들이 직접 취재를 않고 미국이나 유럽의 기사를 인용해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 후 전쟁 양상을 보니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무모한 전쟁에 임했는지 알게 된다. 권투 선수 타이슨의 명언 중에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얻어 맞기 전까지는" 이란 말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현실이 비록 마음 아프지만 이번 전쟁은 그 말을 떠올리게 한다.
요즘 돌아가는 우리의 외교를 보면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뜻을 따라 러시아 제재에 적극 동참했지만 트럼프 당선 후에는 미국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돌변했으니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었다. 이처럼 정부의 실리 추구를 못한 외교 때문에 그 피해는 고스란히 러시아에 사업기반을 구축했던 기업들과 국민들이 져야 한다.
프랑스 대통령 마크롱과 트럼프가 회담을 했나 보다.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전쟁 지원 대가로 우크라이나의 광물 자원을 챙겨가자 프랑스는 우리도 많은 지원을 했으니 무언가를 가져가겠다는 모습이다. 여기에 우크라이나가 끼일 자리는 없다. 이런 모습을 보니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거친 한국의 근현대사와 닮은 모습이다. 카쓰라-테프트 밀약으로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먹는 것에 합의한 것이나 광복 후 38선을 제 맘대로 긋고 미국과 소련이 신탁 통치를 한 것과 비슷하다. 이처럼 국제 관계는 힘이 없으면 조용히 지내야 하는 조폭 세계와 닮았다. 하지만 힘이 없더라도 상황 파악은 제대로 해야 피해 볼 일이 적다.
전쟁이 발발할 당시 내가 아는 러시아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미국 눈치 때문에 겉으로는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지만 최소한 민간 차원의 경제 협력은 중앙아시아를 통해 우회적으로 이어가야 한다. 그 정도는 러시아도 이해해 준다. 그런데 러시아와 모든 걸 끊어 버리고 적대시 한다면 나중에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심히 우려된다. 그것도 우리와 상관없는 남의 나라 전쟁 때문에." 청일 전쟁과 러일전쟁이 일어난 곳은 한반도와 우리의 영해였다.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을 치른 것도 이 땅에서였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전쟁만은 피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균형감각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