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아가면서 '왜?'라는 단어를 지우고 살아도 괜찮을까?
이이경이라는 배우가 있다. 그가 인생에서 지운 단어가 바로 "왜?"라고 하는데 그 계기가 군생활 중 들었던 연대장의 말씀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머릿속에서 '왜?'라는 단어를 지워라. 네가 거기 왜 있고, 이 옷을 왜 입고 있으며, 왜 먹어야 하는지, 왜 해야 되는지, 앞으로 왜라는 단어를 지워." 이 말에 감명받은 배우는 자신의 삶을 그렇게 살기로 했다는데 이후 삶이 많이 편해지더라고 했다.
나는 그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우리는 어떤 일이든 '왜?'라는 것을 적극 추구하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라는 단어를 지우고 살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긍정적인 면이다. 세상의 일은 반드시 정의가 이기는 것도 아니고 그다지 공평하지도 않다. 여기에 일일이 '왜?'라고 묻게 되면 삶이 힘들고 괴로워진다. 예를 들어보자. 성실하게 직장 생활했던 사람인데 어느 날 IMF 사태로 직장이 문을 닫게 되어 졸지에 실업자가 되었다. 그는 '대체 왜, 내가 무슨 잘못을 했기에 이런 일이 생겼을까?'라고 실의에 빠질만하다. 또 이런 경우는 어떤가. 내 차선을 따라 잘 가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차가 중앙선을 넘어 들이받는다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벌어지는 게 우리의 인생이다. 그런데 그때마다 '왜 하필 나에게?'라고 묻는다면 답은 없고 가슴만 답답할 것 같다. 이럴 땐 스스로 '왜'라고 묻지 말고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고 툴툴 털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다.
그 연대장이 했던 말도 여기에 해당한다. 20대 젊은이들이 군에 입대했다. 그리고 어차피 정해진 기간을 보내야 한다. 여기에 생각이 많아서는 곤란하다. 군인은 아침에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하고, 걷기 싫어도 행군해야 하고, 먹기 싫어도 먹어야 한다. 여기에 '왜'라는 단어를 붙이면 군생활이 너무 힘들어진다. 그러니 어쩔 수 없는 일이나 이미 벌어진 일에는 '왜'라는 단어가 적합하지 않을 것 같다. 이때는 많은 생각대신 움직이는 게 정답이다. 우리는 태어났으니 사는 거지 사는 데는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왜'라는 단어가 필요할 때가 있다. 물리 법칙을 다루는 과학자가 '왜'라는 호기심이 없으면 발전이 없을 것이고, 지도자가 독재 성향을 보인다면 국민들은 '왜'라고 물어야 견제를 할 수 있다. 물론 괴롭고 힘들지도 모른다. '왜'라는 질문은 답을 구해야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왜'라는 화두를 잡은 사람은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에 처할 수도 있다. 2차 대전 당시 아이히만은 자신의 행동에 '왜'라고 묻지 않는 성실함을 보였지만 이는 수많은 유태인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군부독재 시절 '왜'라고 묻지 않았던 경찰들은 잡혀온 민주인사들을 고문하는 일이 대한민국을 위한 일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인간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하지만 '왜'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 삶이 편할 수는 있을 것 같긴 하다. 이것도 선별적으로 써야겠다. 지금의 나는 어떨까? 어쩐지 '왜'라는 단어를 안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후반생을 사는 인생은 너무 많은 생각보다는 소박한 일상에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