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여기저기 원서를 넣고 있는 딸이 뭔가 부산하게 준비하는 것 같다. 마침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기에 무심코 화면을 들여다보다가 물어 보았다.
“뭘 하기에 그렇게 바쁘니?”
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사이드 프로젝트에 지원하고 있어.”
나는 잠시 말을 되새겼다. 사이드 프로젝트? 단어 하나하나는 이해되지만, 대체 무슨 뜻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게 뭔데?”
“UX/UI 디자이너로 취업하려면 개발자랑 협업해 본 경험이 중요한데, 나는 아직 그런 경험이 없잖아. 그래서 다른 취업 준비생들이랑 팀을 짜서 작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거야.”
“아니, 그냥 회사에 들어가서 배우면 되는 거 아니야?”
“아빠 때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회사가 신입이라도 실무 경험이 있는 사람을 원해. 그냥 학원에서 배우는 걸로는 부족하거든. 그래서 우리끼리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하고, 개발하면서 실무랑 비슷한 경험을 쌓는 거야.”
나는 이해가 안 되었다. 취업하려면 경력이 있어야 하는데, 신입은 경력이 없으니 취업이 어렵다는 말은 들어봤다. 그런데 요즘 애들은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그걸 회사에서 인정해 주기는 해?”
“그럼! 요즘 UX/UI 디자이너는 포트폴리오가 제일 중요해. 내가 실제로 만든 프로젝트가 있으면 이걸 증거로 제시할 수 있거든. 회사에서도 그런 걸 더 신뢰하고.”
나는 여전히 아리송하다. 내가 취업하던 시절에는 공채 시험 보고, 면접 보고, 합격하면 끝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자기가 먼저 능력을 증명하고, 회사가 그것을 보고 뽑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나 보다. 딸이 지원하는 분야가 IT분야라서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결국은 면접 보고 뽑는 거 아니야?”
“맞아. 근데 요즘은 면접에서도 ‘이런 프로젝트 해봤어요’ 하고 보여줄 게 있어야 해. 그냥 ‘저 열심히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시대는 지났어.”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내 시절의 취업은 정해진 레이스를 뛰는 것과 같았다. 코스가 정해져 있고, 시험만 통과하면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취업은 마치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 정해진 트랙없이,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능력을 쌓아가야 하는 시대인가 보다.
작년인가 재학중이던 딸아이가 링크드 인에 맥도날드의 키오스크 UX/UI 디자인에 대해 분석하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는데 조회수가 18,000건을 넘었다며 상기된 표정을 짓던 게 생각났다.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것도 자신의 취업에 도움이 되는 이력인가 보다.
나는 딸을 다시 보게 되었다. 예전에는 그냥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것 같아 답답했는데, 알고 보니 그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자신과 맞지 않다고 여겨지는 업무에 과감히 사표를 낼 생각도 했겠지. 나라면 그냥 참고 견뎠을 것 같은데. - -;
“그래서, 너 지금 지원한다는 프로젝트는 뭔데?”
“인공지능을 활용해 정해진 시간에 고객들에게 전화해 영어를 과외하는 프로젝트인데 개발자랑 협업해서 MVP까지 만들어 볼 생각이야.”
MVP는 또 뭔가? 운동선수 중 가장 잘 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으로만 알았는데 그런 뜻은 아닌 것 같아 또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그건 또 뭐냐?” 대강 알아 듣기론 최소 기능을 갖춘 제품을 말하는 것 같았다.
딸과의 대화를 통해 나는 연신 감탄과 안쓰러움을 동시에 느꼈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저렇게까지 하는 걸 당연하다 여기는구나 싶어서다. 하지만 취업의 방식은 바뀌었지만, 결국 본질은 같다고 본다. 자신의 길을 찾아 나아가는 것. 단지 그 방식이 달라졌을 뿐. 아무튼 지금의 20대는 나의 20대 보다는 뛰어난 능력을 갖추었지만 기회는 부족한 세대인 건 확실하다. 잘 사는 나라인데 청춘의 삶은 왜 이리 더 팍팍해져 가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