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대답할 수 없는 것을 묻는 사람들
열두 살 소년이 AI의 도움으로 양자역학 논문을 썼다. 박사급 수준이었다. 사람들은 감탄했지만, 동시에 묘한 불편함을 느꼈다. 그 아이는 정말 양자역학을 '아는' 것일까?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식의 소유'가 무의미해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AI는 이미 인간이 평생 쌓을 수 있는 지식의 총량을 초월했다. 의학, 법학, 공학, 철학... 어떤 분야든 AI에게 물으면 박사 수준의 답변이 돌아온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지식이 더 이상 희소하지 않은 세상에서, 인간의 '안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과거 수천 년 동안 지식은 권력이었다. 책을 읽을 줄 아는 사람, 라틴어를 아는 사람, 법전을 외우는 사람. 그들은 지식을 소유했기에 권위를 가졌다. 대학은 지식의 성채였고, 교수는 지식의 수호자였다. 하지만 AI는 이 구조를 근본부터 흔든다. 지식의 총량은 이제 무한대에 가깝다. 누구나 손안의 스마트폰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는 일찍이 말했다. "지식은 기억된 정보가 아니라, 새로운 상황에의 적응력이다." AI가 데이터를 '기억'한다면, 인간은 그 데이터에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다.
사례: 의사와 AI의 차이
AI는 10만 건의 의료 사례를 학습해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하지만 40대 중반 남성 환자가 가슴 통증을 호소할 때, 경험 많은 의사는 단순히 심장 검사만 하지 않는다. 그는 환자의 얼굴 표정, 목소리 떨림, 최근 실직 이야기를 듣고 불안장애 가능성도 함께 고려한다. 지식은 이제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과 무엇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AI가 점들을 제공한다면, 인간은 그 점들 사이에 의미의 선을 긋는 존재다.
열다섯 살 고등학생이 AI를 활용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완벽하게 요약했다. 하지만 그 학생에게 "당신은 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한다. AI가 박사 수준의 논문을 쓴다 해도, 그것은 의미의 재조합이지 경험의 내면화가 아니다. 지식은 단순히 정보를 조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경험과 맥락 속에서 형성되는 이해다.
인간의 지식 = 정보 × 감정 × 경험 × 시간
AI가 빠진 부분은 바로 '감정과 맥락의 시간성'이다.
사례: AI가 작성한 시
AI는 상실에 관한 수천 편의 시를 분석해 비슷한 시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본 시인이 쓴 한 줄의 무게를 흉내 낼 수는 없다. "그가 떠난 뒤 나는 처음으로 새소리를 들었다." 이 문장은 정보가 아니라, 시간을 견딘 경험이 응축된 이해다. 폴라니(Polanyi)가 말한 '암묵지(tacit knowledge)'는 바로 이것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몸과 마음에 새겨진 앎. AI는 형식지(explicit knowledge)를 완벽히 다루지만, 암묵지의 영역에는 닿을 수 없다.
AI가 모든 지식을 복제할 수 있게 되면, 지식 자체의 희소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 지식을 언제, 왜, 어떤 맥락에서 활용할지 판단하는 능력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정보 → 이해 → 통찰 → 지혜' 이 흐름 중 AI는 '정보'와 '이해'까지 도달할 수 있다. 하지만 '통찰'과 '지혜'는 인간의 영역으로 남는다.
사례: 스티브 잡스와 캘리그래피
스티브 잡스는 대학을 중퇴한 후 캘리그래피 수업을 청강했다. 당시에는 쓸모없어 보였다. 하지만 10년 후 매킨토시를 만들 때, 그 경험이 아름다운 폰트를 만드는 통찰로 연결되었다. AI는 "캘리그래피를 배우면 컴퓨터 폰트 개발에 도움이 된다"는 상관관계를 데이터에서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아름다움이 기술을 인간적으로 만든다'는 통찰은, 삶의 우회로를 걸어본 인간만이 얻을 수 있다.
AI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은 누구인가?
더 이상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다. AI가 '무엇이 옳은가'를 말할 수는 있어도, '왜 옳다고 믿는가'를 스스로 자문할 수는 없다. 진정한 지식인은 답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의문을 지속시키는 사람이다.
사례: 소크라테스의 산파술
소크라테스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했다. "정의란 무엇인가?" "용기란 무엇인가?" 그의 질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AI가 "답"을 주는 시대에는, "좋은 질문"을 던질 줄 아는 사람이 새로운 지식인이다. AI는 검색어에 답하지만, 인간은 검색할 가치가 있는 질문을 던진다.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경고했다. "기술이 우리를 대신 생각하게 내버려 두면, 우리는 생각하는 능력을 잃는다." AI 시대의 지식인은 편리함에 안주하지 않고, 불편한 질문을 계속 던지는 사람이다.
AI는 '지식을 흉내 내는 존재'이고, 인간은 '지식을 살아내는 존재'다.
이제 인간의 지식은 결과물이 아니라 과정, 즉 '사유의 여정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다. AI는 "정답의 시대"를 끝내고, 인간에게 "사유의 시대"를 다시 열어주고 있다.
사례: 알츠하이머 환자와 기억
알츠하이머 환자는 사실을 잊는다. 하지만 음악을 들으면 몸이 기억한다. 발은 리듬을 타고, 입은 가사를 따라 부른다. 지식이 사라져도 이해는 남는다. 지식은 머리에 저장된 파일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 새겨진 경험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살아냄'을 대체할 수는 없다. 하이데거는 말했다. "사유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다." AI가 모든 답을 주는 세상에서, 우리는 비로소 진짜 질문을 던질 자유를 얻었다. 지식 이후의 인간은 '아는 사람'이 아니라 '깨닫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오직 삶을 살아낸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선물이다.
참고문헌
Polanyi, M. (1966). The Tacit Dimension
Han, B. C. (2017). The Expulsion of the Other
Carr, N. (2010). The Shallows
Harari, Y. N. (2016). Homo Deus
Whitehead, A. N. (1929). Process and Re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