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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Jun 28. 2020

연극에 도전한 생활 연기 달인

왜인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어렸을 때부터 생활 연기의 달인이었던 것 같다. 대표적인 사건으로 초등학교 하굣길에서의 일이 있다. 무서운 형이 돈을 뺏으려고 접근했는데, 3초 만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돈 없다고 했더니 형이 오히려 사과를 하며 집에 가라고 했고, 나는 뒤돌아서 씩 웃으며 주머니에 있는 천 원짜리를 만져 확인한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는 친구의 뒤통수를 장난으로 툭 쳤는데, 뒤를 돌아본 친구가 나의 완벽한 표정 연기에 속아서 다른 친구를 추궁하다가 엉뚱한 친구 둘이서 주먹다짐까지 간 적도 있다(미안합니다).


아쉽게도 철이 좀 들고 난 고등학교 때부터는 연기력을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자습시간에 딴짓하는 정도에만 겨우 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다닌 학교는 시험이 끝난 날에도 야간 자습을 시켰는데, 그런 날은 야자 분위기가 정말 난장판일 수밖에 없었다. 감독 선생님이 뒷문으로 들어와서는 차마 혼내지는 못하시고, 내 쪽으로 와서 "여기서 공부하는 사람이 너밖에 없네~" 말씀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준 적이 있다. 사실은 혼신의 뒷모습 연기를 하며 딴짓을 하고 있었다.


대학교에서는 연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동아리인 연극부가 있었다. 다만 연극부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있어서 고민이 되었다. 의대생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연극 퀄리티를 자랑하는데, 그만큼 아주 힘들게 훈련을 시킨다는 소문이었다. 거기에 더해 연극부의 쟁쟁한 라이벌로 밴드부가 있었는데, 두 동아리의 연습 시간이 겹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들어갈 수 있었다. 최종적으로 밴드부를 선택하게 되었고, 이후 다른 친구들의 연극 공연을 보며 '나라면 이렇게 저렇게 할 텐데' 하면서 혼자 괜히 아쉬워했었다.


다행히 연극부 외에 연기력을 선보일 기회가 1년에 한 번씩 있었다. 매년 2월 중순에 진행되는 2박 3일의 새내기 배움터(새터) 행사가 있었는데, 황금 시간대인 2일 차 저녁에 진행되는 '촌극'이라는 순서가 있었다. 촌극은 콩트 같은 짧은 연극을 말하는데, 신입생들이 배우로 나와서 어떻게든 전교생을 웃겨야 하는 일종의 재롱잔치였다. 문제는 평생 공부만 하다가 들어온 신입생이 웃기는 방법을 알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선배들이 달라붙어서 스토리도 짜주고, 연기 지도도 해주고 해야 되는데, 선배들 역시 평생 공부만 하다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 선배들 사이에서 내 존재는 독보적이었다. 학교 전체를 호그와트 마냥 4개의 컬리지(college)로 나누어 서로 경쟁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나의 열정적인 지도 아래 완성된 촌극은 매년 1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4년 차에는 X맨 역할을 맡아서 2박 3일 동안 신입생인 척 행동하며 직접 촌극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그 결과 촌극 1위에 더불어 촌극 MVP에 선정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5년 차에는 결국 못 참고 연극부에 늦깎이 신입생으로 가입을 해버리고 말았다. 매년 가벼운 웃음 위주의 촌극만 하다 보니, 좀 진지한 연극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들어가서 딱 1년 동안 열심히 활했다. 첫 학기에는 복식 호흡과 발성 연습으로 기초를 다지고, 방학 때열심히 연습하여 분장을 하고 무대에도 올랐다. 2학기에는 극을 총괄하는 연출이라는 직책을 맡아 직접 배우들을 지휘하여 극을 올리기도 하였다.


짧은 시간 연극을 하며 가장 강렬했던 시간은 단연 커튼콜(curtain call)이다. 극이 끝나고 무대 뒤에 숨어 있다가, 경쾌한 음악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갈 때 쏟아지던 박수와 환호는 절대 잊히지 않는다. 그 외에도 가끔 그때 했던 실수나 웃긴 대사가 생각나면 혼자 빵 터져서 낄낄거리기도 한다. 쓰다보니 또 그리워지는데, 언젠가는 과거 참여했던 연극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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