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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Jul 02. 2020

의사 겸 한의사, 한의사 겸 의사

졸업학년인 6학년의 1학기가 끝나고, 병원 안에서 하는 정규 임상실습은 끝이 났다. 남은 것은 4주 간의 '선택 실습' 뿐이었다. 선택 실습은 평소 본인이 관심 있던 분야를 선택하여 실습할 수 있는 제도이다. 병원 내부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고, 외부의 의료 시설과 접촉하여 직접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진행할 수도 있었다. 아무래도 외부로 나가면 학교의 삼엄한 통제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 외부 실습을 알아보던 중에 좋은 제안이 들어왔다.


평소 친했던 동기 중에 한의대를 졸업하고 한의사가 된 후, 군 복무를 마치고 의학전문대학원으로 들어온 형이 있었다. 이 형 역시 나와 비슷하게 편함-만능주의 성향의 소유자였는데, 본인이 편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며 함께 하자고 하였다. 어차피 크게 관심 있는 분야도 없었을 때라, 뭐하는지 들어보지도 않고 하겠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통합 의학' 관련한 실습이었다. 통합 의학은 굉장히 방대한 개념인데, 넓게는 현대 의학에 포함되지 않는 모든 의학을 말하고, 그 대표가 '한의학'이다.


의사 중에 드물게 한의사와 의사 면허를 모두 갖고 있는 분들이 있다. '복수면허자'라고 하는데, 이런 분들은 혼자서도 일반 의원과 한의원을 동시에 개원할 수가 있다. 수도권에 존재하는 이런 한 지붕 두 의학 병원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실습의 주 활동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의사와 한의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치열하게 싸우는데, 의사 겸 한의사이자, 한의사 겸 의사인 이 복수면허자들의 입장은 어떤지, 어떤 의학을 기반으로 살아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습의 본래 취지는 통합 의학 공부였지만, 머릿속에서는 의학과 한의학의 대결로 변질되어 버렸다.


대결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의학도 한의학도 아닌 복수면허자의 승리였다. 복수면허자들은 의학과 한의학의 장점을 결합하여 전략적으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 결과, 복수면허자의 병원은 항상 손님으로 바글바글하였고, 직접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돈 역시 잘 벌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복수면허자의 호황을 봤을 때, 의사와 한의사는 서로의 장점이 배 아파서, 장점을 빼앗고 싶어서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복수면허자의 전략은 '진단 기술은 의학, 치료 기술은 한의학'이었다. 의학의 진단 기술은 피검사와 영상 검사로 대표되는 상당히 객관적인 방법이라면, 한의학의 진단 기술은 진맥이다. 같이 간 형이 진맥에 대해 들려준 바로는, 어느 정도 재능의 영역이 있고, 어떤 스승한테 배우는지가 매우 중요하단다. 한마디로 한의사마다 진맥 결과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기계를 사용하는 의학의 일관성 있는 진단 기술이 진맥보다는 합리적인 것처럼 보인다.


의학의 치료 기술약과 수술이라면, 한의학의 치료 기술은 한약과 침술이다. 약부터 비교하자면, 의학의 약은 성분과 양을 정확히 알고 있고,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확실히 연구한 뒤에 출시된다. 반면 한약은 성분을 정확히 알기가 어려우며, 어떤 연구를 거치지 않고 역사를 근거로 사용한다. 다만, 한약 성분 자체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의학 연구를 통해 밝혀져 있다. 문제는 약의 재료나 농도의 일관성이 떨어진다는 점인데, 이는 약효와 부작용을 예측하기에 어려운 점이 있다.


수술과 침술은 사실 비교가 무의미하다. 수술이 필요한 환자를 침술로 어떻게 해줄 수는 없다. 침술은 의학의 통증 조절 주사와 비교할 수 있는데, 통증 조절에 효과적인 주사 위치를 한의학에서 말하는 '혈 자리'와 비교한 결과 높은 일치율을 보였다. 침술 역시 한약처럼 의학에서 인정할만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의학과 한의학의 치료 기술이 모두 효과가 있다면, 어떤 치료 기술을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당연히 돈이 더 되는 치료 기술이다. 복수면허자들의 선택을 봤을 때, 아무래도 한약과 침술이 돈이 더 되는 것처럼 보인다.


결과적으로 통합 의학 실습은 나를 편견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의사와 한의사의 싸움은 의학과 한의학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돈의 문제다. 큰 병원에서 큰 뜻을 가지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몇몇 참의사를 제외하면, 동네 병원의 의사와 한의사는 이 사회의 수많은 노동자 중 하나일 뿐이고, 먹여 살릴 가족이 있는 가장일 뿐이다. 노동자라면 누구나 그렇듯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할 뿐이고, 돈을 더 벌 방법이 있다면 싸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두 직업의 싸움은 두 직업이 같은 고객을 상대하는 한, 평생 끝나지 않을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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