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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Jul 05. 2020

마음에 따뜻함을 불어넣어준 시험

의사 국가고시 실기 시험 두려움 극복기

의대생이 의사가 되는 마지막 관문인 의사 국가고시는 실기 시험과 필기시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기 시험은 두 가지로 나누어지는데, 환자 진료 능력을 평가하는 CPX(씨피엑스)와 술기 능력을 평가하는 OSCE(오스키)로 되어 있다. 이 글은 CPX에 관한 이야기다.


환자 진료 능력을 평가하는 CPX 시험은 10분 동안 '모의 환자'를 진료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모의 환자는 일종의 연기자다. 출제자가 만든 환자 시나리오가 있는데, 환자의 병에 대한 정보는 당연히 주어져 있고, 환자가 어떤 배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까지 대략 정해져 있다. 모의 환자는 이 시나리오대로 환자 역할을 연기하게 된다. 모의 환자에 맞춰 의대생은 '학생 의사'로 잠시 변신한다. 그리고 서로를 완전히 환자와 의사라고 생각한 채로 시험을 진행하게 된다.


의대에는 실기 시험에 대해 교육하는 수업 시간이 있고, 연습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 내가 다닌 학교는 3학년에 해당하는 본과 1학년부터 관련 수업과 모의시험을 진행하였는데, 그때는 내가 가장 철없던 시절이다. 듣는 둥 마는 둥 수업을 듣고, 시험에 들어가서는 3분 만에 환자에게 거의 '축하합니다~ 대장암입니다!' 하는 수준으로 하고 나왔다. '점수 좀 깎이는 거 말고 별일 있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중요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시험장의 거울은 밖에서만 보이는 유리로 되어 있었고, 거울 너머에서는 교수님이 모든 것을 지켜보며 채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모두 모인 강의실에서 교수님께 크게 혼났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오히려 기억이 희미할 정도로 정말 크게 혼났다. 대충 시험에 임하는 태도, 환자에 대한 예의, 예비 의사로서의 책임감에 대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철이 없는 만큼 반항심은 컸던 시절이라 한 번의 혼남으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후 시험에서는 형식적으로 시간을 채우고 나오긴 했지만, 내용물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성적은 항상 하위권이었다. 학년이 좀 올라간 후에는 잘해보려고 했는데도 잘 안됐다. 벽에 부딪힌 듯 좌절감에 빠졌고, CPX 시험은 점점 두려운 시험이 되어 갔다.


반전의 계기는 3년이 지난 본과 4학년 2학기, 국가고시 실기 시험을 한 달 앞두고 찾아왔다. 학교에서는 시험 한 달 전부터 다른 일정 없이 4인 1조로 실기 시험만을 준비하도록 해 줬다. CPX 시험 연습은 둘로 나눠서 2인 1조로 했는데, 한 명은 책에 나온 시나리오대로 환자 역할을 연기하고, 다른 한 명은 의사 역할을 맡아서 실제 시험처럼 진행했다. 한 바퀴 돌면 역할을 바꿔서 다시 진행했는데, 한 케이스에 대해 환자 역할과 의사 역할을 모두 해보면서 눈이 번쩍 떠졌다. 역지사지를 통해 시험의 본질을 이해해버린 것이다.


CPX 시험은 진료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이다. 진료는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에 대해 듣고, 환자의 현 상태를 평가하기 위한 질문을 하고, 필요하다면 청진이나 촉진 등의 신체 진찰을 하고, 의심 가는 질환에 대하여 설명한 뒤 진단에 필요한 검사를 처방하고, 마지막으로 환자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면 끝난다. 진료를 10분 내에 정확하게 해냈다면, 놀랍게도 100점 만점에 50점만 확보하게 된다. 나머지 50점은 환자-의사 관계에서 나오는데, 이 부분이 나의 저득점의 원인이었다.


환자-의사 관계는 낯가림이 심하고, 매사에 냉소적인 나에게는 감이 잘 잡히지 않는 항목이었다. 환자를 만나면 자기소개와 함께 따뜻한 인사로 긴장을 풀어줘라, 대화할 때의 표정은 살짝 미소를 지은 상태, 목소리는 적당한 톤과 속도, 항상 배려 넘치는 말투와 행동으로 환자를 불편하게 하지 마라 등의 내용인데, '따뜻한', '살짝 미소', '적당한', '배려 넘치는' 같은 부분은 누가 붙잡고 알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안 되는 사람은 계속 안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환자 역할을 수행하면서 다른 사람의 진료를 코 앞에서 보니, 그제야 환자-의사 관계에 대한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같은 내용인데도 친구의 말은 친절하게 느껴지고, 내 말은 뭔가 불친절해 보이는 이유를 분석했다. 환자가 불편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웃음 짓게 해주는 친구의 디테일한 배려를 포착했다. 친구의 진료를 때로는 귀감으로 때로는 타산지석으로 삼아 내 진료에 끊임없이 반영했고, 내가 의사 역할일 때는 환자-의사 관계에 가차 없는 피드백을 부탁했다. 열심히 연습한 결과, 마지막 주에는 진료 기계가 되어 시선 처리와 손동작까지 조율하는 수준에 이르렀고, 시험은 전 과목 패스라는 쾌거를 이루며 합격했다. 물론 같이 고생한 친구들도 전부 합격이었다.


시험이 끝난 후부터, 이상하게 가족과 친구들이 "왜 이렇게 착해졌어~", "언제부터 이렇게 따뜻했지?"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듣고 보니 내가 보기에도 사람이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시험 준비를 하며 억지로 나에게 밀어 넣었던 따뜻함과 배려심이 어느새 나의 일부가 되어 있었던 거다. 그렇게 26년 만에 처음으로 얻은 따뜻함은 지금까지의 의사 생활에 정말 큰 역할을 해줬고,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이 많다. 의사가 되는 데에 가장 험난한 관문이라 생각했던 CPX 시험은, 오히려 나를 의사에 적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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