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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시호 Jul 12. 2020

매일 실패하는 잠들기

불면증 투병기

거의 8년째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불면증은 매우 흔한 정신 질환이다. 불면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는 말인데, 같은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 내 고통을 줄여주지는 못한다. 게다가 나는 상당히 무책임한 악질 불면증 환자이다. 의대생 시절 불면증에 대하여 배웠고 치료법도 빠삭하게 알고 있는데, 전혀 나에게 적용시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해가 갈수록 상태가 악화되고 있다.


불면증은 잠에 잘 들지 못하는 증상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정의는 좀 더 복잡하다. 기본 전제는 잠을 자려는 마음이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불면증이 아니라 수면 부족이다. 충분히 자고 싶은 사람 중에 잠드는 데 어려움이 있거나, 잠에서 자주 깨거나, 잠에서 너무 일찍 깨버리는 상황이 일정 기간 높은 빈도로 발생하고, 그로 인해 사회적이나 직업적으로 능률이 저하되는 경우 불면증이라 할 수 있다.


나의 불면증은 잠에 잘 들지 못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2시간 정도 있어야 잠이 올락 말락 하고, 그때부터 좀 더 정신을 흩뜨려 트리는 데에 집중하면 겨우 잠들 수 있다. 우선 잠에 들면 5시간은 쭉 잘 수 있는데, 문제는 5시간도 못 자는 날이 많다. 출근 시간을 고려하면 12시에 누워서 2시에는 잠에 들어야 하는데, 밤만 되면 재밌는 게 너무 많다. 글도 쓰고, 게임도 하고, 넷플릭스도 보다 보면 어느새 1시가 넘어 있다. 부랴부랴 잠자리에 누워 서너 시간 자고 출근하면 오전에는 내내 비몽사몽 상태다. 점심시간에 낮잠을 자고 나면 그제야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잠에 못 드는 이유는 머리가 뜨거워서 그렇다.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들어오면 뇌가 활성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고 더 이상 자극이 없으면 점점 활성도가 낮아져야 하는데, 나는 이 머리를 식히는 과정이 남들보다 상당히 더디다. 불면증이 막 생기던 대학교 초반에는 게임이 주 자극원이었다. 밤늦게까지 게임을 하고 침대에 누워 간신히 뜨거운 머리를 식혀 잠드는 게 일상이었는데, 어느샌가 머리가 차가운 날에도 침대에 누우면 머리가 뜨거워졌다. 몸이 침대를 '자는 곳'으로 인식하지 않고 '머리가 뜨거워지는 곳'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한번 생긴 불면증은 이후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심해지기 시작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밤새는 일이 잦아졌고, 게임 외에 머리가 뜨거워질 일도 많아졌다. 졸업 후에는 교대 근무자로 일하며 수면 시간이 매우 불규칙해졌다. 최근에는 코로나 19로 인해 활동이 급격히 감소하며 몸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어려워졌다. 처음에는 어쩌다 한 번씩 잠이 안 오는 수준이었는데, 점점 심해지더니 매일 잠이 오지 않기 시작했다. 심지어 요즘은 그나마 꿀맛 같던 낮잠에도 불면증이 번져오는 느낌이다.


불면증은 또한 악순환의 고리를 계속 돌리며 더 심해진다. 침대에 누우면, 잠이 안 온다는 현실에 대한 가벼운 한숨으로 시작하여 4시간도 못 자고 출근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이어진다. 이는 어떻게든 자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지며 강박감은 잠에 드는 것을 방해하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어떨 때는 반대로 어차피 안 오는 잠 뭐하러 누워있냐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스마트폰을 켜기도 한다. 잠을 못 자니까 더 못 자게 되는 악순환의 연속인 것이다. 


이 악순환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나약하게 만드는데, 이게 불면증의 진짜 무서움이다. 나도 불면증으로 인해 점점 약해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얼마 전부터 '잠'이라는 단어를 듣거나, '자야지'라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자려고 침대에 누우면 불안감이 엄습해와서, 숨이 턱 막히고 온몸이 긴장된다. 그리고는 누가 야구 방망이로 뒤통수를 쳐줬으면 좋겠다든지, 영화 <버드맨>처럼 관자놀이에 총알을 박고 싶다든지 하는 위험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불면증은 우울증을 비롯한 여러 정신질환과 관계가 있다고 한다. 나는 병이 더 커지는 것을 자기 객관화를 통해 버텨내고 있다. 이유 모를 우울감이 찾아오는 날에는 무리하지 않고 몇 시간 일찍 침대에 눕는다. 그러면 다음날은 버틸만하다. 어떤 날에는 별 거 아닌 일에도 화가 치미는데, 잠시 멈추고 분노의 이유를 다시 살펴본다. 대부분은 내 마음에 그 이유가 있다. 마음이 약해져 있어서 기복이 심한 것이다. 분노의 원인이 나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분노를 다스리기는 어렵지 않다.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졸린 채로 생활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지고, 삶의 능률은 점점 떨어져 간다. 항상 피곤하다. 8시간만 깨지 않고 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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