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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Jul 15. 2020

학창 시절의 돈 이야기

돈에 대한 첫 기억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정확한 앞뒤 사정은 기억이 안 나는데, 100원짜리 3개로 친구의 500원짜리 하나와 바꾸자고 했던 것 같다. 무사히 거래를 마치고 하교했는데, 그 친구의 어머니가 전화를 해서는 내가 500원을 훔쳤다고 했다.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도둑은 내 자식이 아니라며 나를 맨발에 속옷 차림으로 집 밖으로 내쫓았다. 두 시간을 문 밖에서 잘못했다고 빌어서 겨우 집에 들어간 기억이 난다. 이후 어머니의 명령으로 친구에게 500원을 돌려줬는데 300원은 돌려받지 못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용돈이 일주일에 천 원이었다. 주로 군것질에 많이 사용했다. 하교 시간마다 등장하는 리어카 포장마차에서 떡볶이, 피카츄 돈가스, 아이스크림을 사 먹곤 했다. 메뉴 하나에 500원씩 해서 주 2회 군것질이 가능했다. 학년이 좀 올라간 뒤로는 친구들과 PC방에 가는 데 용돈을 전부 사용했다. PC방 이용료가 한 시간에 천 원이라서 일주일 동안 군것질을 꾹 참고, 주말에 친구들과 PC방에서 딱 한 시간 놀고 나와 아쉬운 마음으로 놀이터에서 뛰어놀곤 했다.


중학교 때는 용돈이 일주일에 2천 원으로 올랐다. 역시 PC방으로 전부 들어갔다. 다른 친구들은 용돈이 꽤 올라서 혼자 PC방에서 일찍 나오곤 했다. 친구들과 좀 더 놀고 싶은 마음에 바늘 도둑이 됐었다. 용돈이 적었던 만큼 부모님께 학업에 관련된 책이나 학용품 비용은 받아서 썼는데, 몇 백 원 몇 천 원 남겨서 PC방 한 시간 더하고, 떡볶이 사 먹고 그랬다. 죄책감보다 놀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시절이다.


고등학교 때는 PC방에 갈 시간이 거의 없었다. 타 지역에 있는 학교를 다니느라 새벽에 스쿨버스로 등교하고, 야간 자율학습을 하고 스쿨버스로 하교하면 밤 11시 30분이었다. 주말에는 학원에 다니느라 바빴다. 돈은 오로지 간식비로만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는 식욕이 왕성하여 점심과 저녁 급식 후 꼭 빵을 하나씩 사 먹었는데 이러면 하루에 2천 원씩 들었다. 어머니께 말했더니 용돈을 일주일에 만원으로 올려주셔서 잘 먹고 다녔다. 간간히 빵을 안 먹는 날도 있어서 졸업할 때쯤에는 돈이 꽤 모였다. 돈 쓸 시간은 없는데, 돈은 오히려 풍족해서 도둑이 될 이유가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우연히 학급에서 총무를 맡게 되어 돈의 무서움을 알게 되고, 돈에 대한 올바른 관념이 생겼다. 단돈 100원이라도 비면 맞을 때까지 다시 세어보며 조마조마하고, 누군가 공금에 손을 댈까 모두를 의심하게 되었다. 제출 기한까지 안 내는 친구가 있을 때의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고, 괜한 의심을 받기 싫어 항상 행동거지에 신중하게 되었다. 동전 몇 개, 지폐 몇 장에 사람 마음이 이리 동요할 수 있다는 게 참 무서웠다.


돈의 힘과 돈을 쓰는 즐거움도 알게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친구들과 스터디를 운영하였는데, 주로 알려주는 입장이었다. 동기 부여를 위해 간식을 좀 사 와서 상품으로 걸고 문제를 내면 열기가 대단했다. 가끔 가다 별 이유 없이 아이스크림 하나씩 돌리는 날에는 세상 제일가는 리더가 되었다. 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친구 대여섯 명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것이다. 돈의 강력한 힘을 알게 되니, '쓸 땐 쓰자' 마인드가 자리 잡았다.


내가 생각하는 '쓸 때'는 꽤 미래지향적이다. 식당 갔는데 아는 후배가 밥 먹고 있으면 그냥 계산해 준다. 밥 잘 사 주는 좋은 선배라는 평판이 언젠가 나에게 득이 될 거라 믿는다. 축의금 조의금 낼 때도 남들보다 더 많이 내려고 한다. 남들이 5만 원 낸다고 하면 10만 원 내고, 10만 원 낼 거라 하면 20만 원 낸다. 내가 힘들 때를 대비한 투자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 일반적인 소비도 길게 보고 하는 편이다.


정말 '쓸 때'라고 생각되면 가격은 중요한 고려 대상이 아니다. 어느 정도 상한선은 있지만, 비싼 물건일수록 더 좋다는 믿음이 있다. 마찬가지로 다른 제품보다 너무 싼 제품은 평이 아무리 좋아도 안 산다. 싼 데에는 이유가 있다. 돈을 쓰기로 마음먹었으면 제대로 된 곳에 돈을 쓰는 게 중요하다. 싼 음식 먹으면 배탈 나고, 싼 기계 사면 고장 나고, 공짜 좋아하면 대머리 된다.


쓸 땐 쓰자 마인드로 살고 싶으면 결국 돈이 있어야 한다. 과거 쓰고 싶은데 못 쓰고 살다가 바늘 도둑이 되었었다. 환경의 변화가 없었다면 소 도둑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돈이 없는 상황이 찾아온다면 언제든지 다시 도둑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열심히 일해서 꾸준하게 돈을 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해 일부는 저축하고, 돈을 더 불려보기 위해 이것저것 투자도 한다. 그 와중에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올바르게 번 돈만 내 돈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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