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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호 Jul 18. 2020

대학 시절의 돈 이야기

대학 시절의 돈 이야기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밑 빠진 독'이었다. 돈이 들어오는 대로 쓰기에 바빴는데, 직접 버는 돈은 하나도 없이 부모님이 주시는 돈에만 의존했다. 그 흔한 아르바이트도 한 번 안 해봤다. 당시에는 돈 받아쓰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한 등골 브레이킹 했던 것 같다.


대학교에 와서는 일주일에 만원 받던 용돈이 10만 원으로 올랐다. 큰돈 같지만 밖에서 점심 저녁 하루 두 끼를 사 먹고, 친구들과 술도 한 잔 하고, PC방 당구장 등 여가 활동을 즐기기에 충분한 돈은 아니었다. 많은 동아리에도 참여하고 있어서 회비로 나가는 돈도 상당했다. 용돈은 어머니 지갑에서 나왔는데 어머니는 용돈을 올려줄 생각은 없으셨다. 대신 아버지가 어머니 몰래 간헐적으로 100만 원씩 보내주셔서 생활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버지가 100만 원을 보내주시면 3개월 정도는 풍족하게 썼다. 용돈과 합하면 한 달에 약 70만 원 정도 소비한 것인데, 소비 패턴을 돌아보면 참 헤프면서도 건전하게 썼다. 주된 소비처는 PC방이었다. 학창 시절에 부모님의 견제로 게임을 많이 못한 한(恨)이 있었다. 대학교 입학 후에는 견제가 사라졌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온종일 게임에 몰두했다. 평일 수업이 끝나면 대충 저녁을 때우고 PC방에 가서 자기 전까지 게임을 하고, 주말에는 눈 떠서 눈 감을 때까지 PC방에 있었다. 일주일에 60시간을 PC방에서 보냈는데, 60시간을 보내는데 들어가는 돈은 고작 5만 원이었다. 헤프게 게임을 했지만 돈만 놓고 보면 매우 효율적이고 건전한 소비였다.


나머지 돈은 거의 다 뱃속으로 들어갔다. 여느 대학교 앞이 다 그렇듯 수많은 식당과 주점이 있었고, 모든 곳에 한 번씩 다 가봐야 직성이 풀렸다. 때로는 모여서, 때로는 혼자서 학교 앞의 골목들을 탐방했다. 대부분은 적당한 가격이지만, 큰 맘먹고 가야 하는 곳으로 소갈비 집이 있었다. 수원은 오래전부터 소갈비로 유명하여 굵직한 소갈비 집들이 몇 개 있다. 가끔 교수님이나 선배가 데려가 주면 무한한 감사를 표하며 뱃속에 꾹꾹 눌러 담곤 했다.


소갈비 집에서는 한정 메뉴로 갈비탕도 파는데, 갈비탕 사준다고 친한 친구와 함께 간 적이 있었다. 갈비탕을 시켰는데 다 떨어졌다는 것이었다. 차마 그냥 나갈 수가 없어서 그럼 갈비 먹자고 2인분을 시켰는데, 당시 수중에는 갈비 2인분 먹을 돈이 전부였다. 그때의 갈비 맛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고 말 그대로 모래를 씹는 느낌이었다. 빈 주머니로 3일을 버텨야 한다는 걱정에 미각을 완전히 잃고 식욕도 증발했었다.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한 이유를 뼈저리게 느꼈다.


다른 데 쓸 여윳돈이 없어서 그랬는지, 타고난 물욕이 없는 건지 PC방과 식비 외에는 다른 곳에 쓰는 돈이 거의 없었다. 옷은 그냥 어머니가 사주는 대로 입었고, 꾸미는 것에도 관심이 없어서 한 달에 한 번 미용실 가는 것 외에는 지출이 없었다. 드물게 갖고픈 게 생기면 우선 사버리고 일주일 정도 부실하게 먹고 다녔다. 일주일 부실하게 먹으면 꼭 감기나 장염을 앓곤 해서 밥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때의 소비 패턴이 고착되어 아직도 거의 똑같이 돈을 쓴다. 아쉽게도 옷은 내 돈 주고 사 입는다.


지금도 여전히 밑 빠진 독처럼 딱히 아끼자는 생각은 안 하고 쓰는데, 다행히 빠져나가는 물보다는 새로 들어오는 물이 더 많다. 그다지 빠르지는 않지만 차곡차곡 모여가는 돈을 보면 뿌듯하다. 사람마다 의견이 매우 다르겠지만 돈은 쓰는 재미보다 모으는 재미가 더 큰 것 같다. 돈은 숫자로 존재할 때가 가장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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