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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Mar 17. 2022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는 것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라이너 마리아 릴케

요즈음 나는 이것저것을 어지러이 시도하고 또 꿈꾸고 있다.

그렇게 어지러이 시도하며 꿈꾸는 여러 가지 , 가장 크고도 원대한 꿈은 아마도


"글로 벌어먹고 사는 삶"

일 것이다.


전혀 관련 없는 이공계통의 전공 공부를 하면서도, 드라마 작가 과정까지 밟아가며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있다'라기 보다는 '쓰려고 노력하고 있다'가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지만.


밟고 있는 과정의 필수 코스인 단막극 한 편을 제출하고 수정고, 수정고의 수정고, 수정고의 수정고의 수정고까지 쓰고 있는데

야아, 이 과정이 생각보다 녹록치가 않다.


한 편을 쓰는 것까지는 어떻게 해 냈는데 생각보다 이 '수정고'를 쓰는 과정이 상당히 힘들다.

심지어 수정고를 보여주고 받는 피드백이 더 박하다...!

아마 어떻게 수정해야할지 감을 아직 잘 잡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때부터 쓰고 있던 단막극은 던져두고 다른 것에 한 눈을 팔기 시작했다.

새로운 소재, 새로운 캐릭터의 새 단막극을 무작정 시작해버리고,

전공 공부에 조금 더 매진해야 겠다며 이리저리 뽀짝거려보는 등.

그런데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되겠는데?'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수많은 성경 인물들 중에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물은 솔로몬이다.

이스라엘에 최고의 부와 번영을 가져다준 왕이자 지혜의 상징,

지혜의 보고라는 잠언의 저자,

그 유명한 이야기, 아기 하나를 두고 서로 제 아이라며 싸우는 두 여인에게 현명한 재판을 내린 바로 그 사람.

사실 솔로몬의 이미지는 이렇듯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편인데 나에게는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그는 끝이 좋지 못했기 때문.


시작은 물질 대신 지혜를 구하고, 자애롭고 공정한 심판을 내린 사람이었을지 몰라도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나라의 번영을 목적으로 이방 민족의 첩을 아주 많이 두었는데,

문제는 이게 솔로몬이 지혜를 구하던 바로 그 신(하나님)이 엄격하게 금지했던 사항이었다.

솔로몬의 첩들을 시작으로 이스라엘에 이방 나라의 문화들이 들어오게 되었고, 이는 이스라엘이 무너지게 된 큰 원인이 되었으니...

결국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패망하는 초석을 마련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내 개인적인 생각.


따라서 그는 나에게 있어 '끝이 좋지 못한' 사람이다.

'시작은 누구나 잘 할 수 있지? 그것을 어떻게 지키느냐의 문제지.'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는 그를 분명히 싫어하는데, 문제는....

내가 바로 그 끝이 좋지 못한 사람 같다는 거다!

(p.s. '페르소나 이론')


시리즈물 연재는 물 건너가기 일쑤고, 석사 과정도 마지막 1학기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마음으로 어영부영 보냈고, 그 마음으로 논문도 대충대충 썼고 .. 어제 읽어봤더니 너무 부끄럽더라 ^^... 얼마나 대충 썼는지가 여실히 보이는 그런 챙피한 논문이었다...

최근에도 선한 마음이 아니라 회피하고 도망가는 심정으로 어떤 일을 마무리 할 뻔한 일이 있었는데,

다행히 그렇게 하지 않고 마무리를 할 시간을 조금 더 벌어두었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두면서, 또 최근 나를 돌아보면서 조금 깨달았던 것 같다.


아, 무언가를 끝까지 잘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구나.

나 또한 무언가를 끝까지 잘 하는 사람이 아니구나!




어쩌면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글을 쓰고, 많은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신이 나서 이리저리 써재낄 때와는 상황이 달라졌다.

진짜 '글로 벌어 먹고 살려면' 아니, 벌어 먹고 사는 척이라도 할 수 있으려면

꾸준히, 놓치지 않고, 꾸역꾸역. 써야만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기 싫어질 때'.

하기 싫어질 때 하는 바로 그 사람이 최종 승자가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요즘들어 하고 있다.


선물 받은 책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당신의 시가 좋은 작품이냐고 물었죠? 이전에는 다른 사람에게 물었겠죠. 당신의 시를 잡지사에도 보냈고요.

다른 시인의 시와 비교하거나 편집자에게 거절의 말을 들으면 침울해지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그 모든 걸 그만두십시오.

당신은 온통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밖에서 당신에게 조언하고 당신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그렇습니다. 아무도 없습니다.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세요.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세요.

당신이 글을 쓰도록 만드는 근본이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그 근본이 당신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지 확인하세요.

글을 쓰지 못할 바에야 죽음을 택할 것인지 생각해보세요.

이 모든 내용을 아주 조용한 밤에 자문해보십시오.


'나는 글을 써야만 하는가?'


질문에 대한 답이 긍정이라면, 운명에 따라 당신의 삶을 만들어가면 됩니다.




내 글이 인정받지 못할 때에도, 많은 비판 가운데에 놓여져도, 내가 보기에도 내 글이 별로이게 느껴질 때에도, 빛을 볼 그 날이 요원하게 느껴질 지라도....


일단... 수정고부터 마무리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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