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수 May 06. 2022

추앙하세요, 박해영 작가를

<나의 해방일지> 추천사

시작한 지 며칠만에 8화를 봤다.

대단한 영웅이 없다. 다들 성격은 찌질하고 일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다.

대단한 갈등도 없다. 여자친구와의 이별, 끊임없이 망하는 소개팅, 할부내서 차 못사게 하는 아빠와의 싸움, 나 빼고 몰래 괌 놀러가는 직장동료들에 대한 서운함, 그나마 가장 강력한 게 사업하다 말아먹은 전남친에게 빌려준 돈 떼먹힌 일 정도. 모두가 소소하고 우리네 일상에서 자주 일어나는 갈등들이다.

그런데 재밌다.

자꾸만 생각이 나고, 계속해서 찾게 되고 보게 된다.

그렇게 보다보면 뜬금 없는 장면에서 눈물이 쏙 난다.

나같은 경우는 이 뜀박질 장면이었다....

6화쯤 보았을 때 친구에게 카톡을 날렸다.


"나의 해방일지 보니?

나는 추앙한다, 박해영 작가를..."




입문은 <또오해영>이었고 다음은 <나의 아저씨>였다.

두 개의 드라마가 같은 작가인지, 작가 이름을 모르고 본다면 짐작도 못 할 정도로 스타일이 달랐다.

<또오해영>도 꽤 잘 된 드라마였지만 박해영 작가는 <나의 아저씨>로 이름을 날렸다.


처음 <나의 아저씨>를 봤을 때는 주인공 지안(아이유 易)의 숨막히는 상황이 너무 극단적이라 생각하여 2화쯤 보다가 그만두었었다. 이후에 다시 3화부터 보기 시작한 뒤로 끊임없이 쭉 달릴 수 있었는데,

그 때 느낀 작가의 색깔은 뭐랄까,

어딘가 그늘이 져 있는 건물 구석에,

해의 방향이 바뀌면서 햇살이 싸악, 비치는 그림.

1화부터 16화까지 그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하고 고달픈 삶에 햇살을 비추이는 느낌.

그리고 그 햇살이 어딘가 외부 환경에서 오는 게 아니라

작가가 그려낸 지극히 평범한 '캐릭터들' 안에서 오는 것 같이 느껴졌다.


가장 어두운 삶과 상황을 그리고 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의 따스함을 담는 작가.

어찌 이 작가님을 추앙하지 않을 수 있는가,,,,,, 사랑,,아니 추앙합니다 작가님,,

 



개인적으로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나의 아저씨>보다 인물들이 훨씬 더 평범해졌다.

지안과 같이 극단적으로 어두운 상황 가운데 있는 인물이 보이지 않는다.

짐작하기로는 구씨 정도인데 상황이 나오지 않았으니 패쓰.

주인공들인 삼 남매, 기정, 창희, 미정은 정말 평범하기 짝이 없는 직장인들이다.

세 명 각각이 가지고 있는 성격, 결점, 욕망에서 내 모습이 보이고, 내 친구들의 모습이 보인다.


그들의 상황 또한 보다 더 평범하고 일상적이어졌다.

미래가 보이는 초능력이나, 바람 피우는 아내, 갚아야하는 천문학적인 빚이나 아픈 가족 등이 전혀 없다.

그저 서울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살면서 출퇴근은 서울로 하고, 거지 같은 직장 상사와 동료가 있고, 일에서 성취감 따위는 느낄 수조차 없고, 그 와중에 애인까지 없을 뿐이다.


이렇듯 반복되고 지루한 일상에 지친 주인공들이 사랑을 찾아가고, 사랑을 하고, 사랑을 베푸는 모습이 사실 이 드라마의 전부다. (핵심 단어: 날 추앙해요! - 언뜻 보면 지나치게 문어체적인 이 대사가 이상하게 드라마에 큰 매력을 준다)

주인공들이 심지어 희생적이거나 마냥 선하지도 않다. 짜증내고 성질 부리고, 말도 많고 미운 구석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는 이 주인공들을 사랑하게 되고,

이 주인공들을 사랑하는 힘이 곧 드라마를 보게 만드는 힘이 된다.

(앗 물론 대사도 큰 힘이긴 하지만)




나는 늘 이런 드라마가 보고 싶었다.

지극히 일상적인 삶, 지극히 평범한 주인공들, 이들의 모습 속에서 내가 보이고 내 친구가 보이는데

이런 평범한 주인공들을 사랑하게 되는 드라마.

주인공들을 사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나를 사랑하게 되고,

내 친구를 사랑하게 되며,

내가 미워하고 피하던 이까지 이해하게 되는 드라마.


현실에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보여주어서 도망칠 구석이 되는 드라마가 아니라,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도 그 속의 사랑할 구석을 비추어주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보다 훨씬 더 좋다.

일상에 지치고 힘든 사람들, "모든 관계가 노동"처럼 느껴지는 이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 삶에 무력감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쓴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