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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Nov 19. 2023

Apple에서 승진을 포기하겠습니다.

삶의 에너지를 현명하게 분배하는 법

 캐나다에 사는 내 친구는 4년째 애플을 다니고 있다. 정말 타고난 센스도 있고, 상황적 판단도 정확하고, 예술적 감각도 뛰어난 내 친구는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꽤 오랜 시간동안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꿈을 쫓아 다닌 의류 회사는 박봉으로 텁텁한 삶을 보상으로 꿈을 팔고 있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와 함께 부모님의 건강이 나빠져 부모님의 병원을 따라다니고 돌보느라 일을 그만뒀다. 그리고 다시 다른 일을 찾아 배우고 일을 하다가 원래 다녔던 의류회사의 대표가 애플로 이직하게 되어 오퍼를 받고 애플에서 그의 커리어를 쌓게 되었다.


 정말 영혼의 단짝이 따로 없는 내 캐나다 친구는 장점이 너무도 많지만 불평 불만도 굉장한 친구였다. 우리는 서로의 단점을 비난하기 보다 그러러니한다. 서로의 장점들만 보기에도 늘 시간이 모자란 관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 이후에 만난 그는 그 많던 불평 불만이 온 세상의 감사로 바뀌어있었다. 갑작스런 개종으로 의한 드라마틱한 감사는 아니었다. 여전히 그의 시니컬하고 직선적인 말투와 인사이트는 그를 해석하는데 한 몫했지만, 그는 현재에서 한단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 자신을 지킬 줄 알고, 주워진 지금을 감사해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있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늘 최고가 되고 싶고, 개인적으로 욕심이 많아서 나를 갈아넣다시피하는 삶을 살다보면 번아웃을 달고 산다. 하지만 또 일에서 오는 성취들 역시도 도파민의 짜릿한 자극과 내 자신에 대한 유의미한 보상으로 이만하면 꽤 잘산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삶에 힘을 빼지 못하는 현실에서 내 스스로를 코너로 몰아넣는 것에 익숙해지다보면 쉬는 법을 잊어버릴때가 많다.


 친구는 4년동안 애플에서 열심히 일했다. 단순히 시간을 따져 정률적으로만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라 현명하게 일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조언을 해주고, 또 서로를 위해주는 언어와 태도를 사용했다. 항상 그들을 위해서 마음을 쓰지만 이는 회사 내에서의 시간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일뿐 회사가 끝나면 또 그는 그의 삶을 살아냈다. 그러면서 일에서도 너무 힘을 주지 않고, 보는 사람들도 부담스럽지 않게 강약 조절을 하면서 사회생활과 자신을 지키는 방법의 온앤오프와 밸런스들을 지켜나갔다.


 친구는 4년 내내 애플에서 연이은 승진을 했고, 정확히 어떻게 동료들과 일해야하는지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사람을 대해야하는지, 그리고 본인이 온전할 수 있는 법들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학교다닐때부터 내 친구는 정말 타고난 재주꾼이었다. 게이지만 게이라는 이유를 떠나서 사람 자체만으로도 현명하고 똑부러진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만들었다. 친구는 최근에 본인은 자식으로써 아픈 부모님을 돌보고 이로 인한 부모님의 문제들을 해결해주는데에도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번 승진을 거절했다고 했다. 자신도 있다고 한다. 다음 승진의 기회를 본인이 잡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미 회사생활에서 본인의 강점과 장점을 어떻게 활용해야하는지, 본인이 가진 단점들을 어떻게 숨기고 사람들에게 극한의 효율로 어떤 자세로 대해야하는지 득도했기때문에 할수 있는 용감한 결정이었다.


 물론 캐나다라는 사회 자체가 올라갈수록 리더에게 바라는 것들이 많아지고 책임 또한 크다. 오르는 연봉만큼 그만큼 일에 투자하는 시간적, 정신적 에너지도 크게 따라온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리더가 절대적 위치를 가지고 어린 직원들이 일한 것들을 가져간다거나, 본인의 아이디어처럼 이야기 한다거나 리더로써 책임을 져야할때 오히려 책임을 회피하거나 모르쇠하는 경우들이 종종있다. 그래서 더더욱 친구의 결정이 놀랍게 다가왔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현실에 과한 감사를 하지 않고서 그 많던 불평 불만들이 사라질수 있냐고, 그리고 늘 성장과 지금보다 더 나은 삶에 갈증을 느꼈던 친구에게서 애플에서의 매니저자리를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냐고.


  진심으로 그 방법을 알고 싶어 물었다.


친구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이 결정에 일말의 후회나 아쉬움이 남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의 남자친구는 불평 불만이 많던 내 친구에게 항상 일상에서 적당히 만족해도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을 알려준다고 한다. 막상 만날때는 서로의 다름이라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치부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들이 몇달간 헤어졌을때 친구는 깨달았다. 그의 남자친구가 늘 이야기하던 만족과 삶의 행복의 상관관계에서 일정 수치 이상 도덜하면 그 이후에는 조금 나를 위해서 끈을 느슨하게 풀어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내 친구는 승진은 이번에 거절했지만, 앞으로 승진을 또 거절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여전히 열심히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다음번 승진의 기회가 올때까지 지금처럼 현명하게 본인의 위치에서 업무시간에만 온전히 자신의 일을 해낼 것이라고 했다. 정률적인 숫자로 이에 대한 인풋을 표현하면 75%~85%정도의 본인 에너지를 일에 쏟는다고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도, 주위에 있는 사람들 역시도 함께 숨통을 좀 틀수 있다고 했다. 어떻게 보면 나를 잃지 않고 길게 오래가기 위해서 그는 현명한 결정을 한 것이었다.


 나를 포함해서 주위에서 친구들을 보면 죽어라 자신을 갈아넣고 성취하고 또 좌절하고 혹은 아예 결혼을 하면서 커리어를 포기하거나 삶의 쉼표가 먼저라고 생각하는 친구들 이렇게 양극단으로 나뉘어져있다. 그리고 이중에 말은 본인이 선택한 삶에 100% 온전히 만족한다고 말하지만 자존심에 이리저리 망설일때도 많아 보인다.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는데 혈안이 되어서 조금 일하고 많이 쉬는 삶을 쫓는 것 역시 나는 반기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가진 에너지의 150~200%를 갈아서 미래의 건강을 현재에 땡겨쓰고, 현재에서 누려하는 가치와 행복들을 잃어가면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는 이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잘 살아보겠다고, 남들보다 더 악착같이 죽어라 이 악물다 보면 잇몸만 상해서 늙고 나중엔 돈이 있어도 갈비를 못뜯는다.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 어쩌면 삶을 뒤흔드는 현명한 가르침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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