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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Sep 01. 2015

또 다른 나의 서울 이야기

외국인 둘 모시고 서울 탐험



2015년 8월 27일 목요일 오전 8시 20분에 인천에 도착한다는 친구 녀석 둘을 맞이하기 위해 전날 저녁부터 서울에 올라와 새벽같이 공항으로 나갔다. 누군가를 공항까지 가서 바래다 주는 것이 내게 꽤나 낯선 일이었다. 지방에 살다 보면 공항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인사하고 헤어지는 게 참 익숙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참 많은 눈물을 훔쳤다. 영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궁금함이 앞서 무리한 여행을 하길 4년째에 접어들고 더 이상 영어에 있어서 평생의 숙제로 남겨두고 싶지 않아 어학연수를 떠났었다.







 그리고 캐나다에서 둘도 없는 친구들을 만났다.
무조건 내 생돈 다 주고 가는 어학연수는
내가 기대한 효과 이상을 얻고 돌아가야 한다는 어마어마한 압박감과
삽질정신으로 무장하여
토론토 외곽의 예술학교에 입학하자는 '지름'을 택했다.

 물론 탁월한 선택이었고 그 결과 단 한 번도 캐나다 밖을 나가 본 적이 없는 캐네디언 친구 둘은 그렇게 나를 서울로 찾아왔다. 우리가 졸업에 가까워 마지막 farewell party로 원더랜드를 갔다가 오는 신호등을 기다리며 내 캐나다 절친 Al은 내 손을 잡으며 자신이 밥 한 끼 해다 먹였어야 하는데 이렇게 헤어지는 게 후회된다고 이야기했었다. 간간이 연락은 했지만 1년 동안 pinterest에서 이것, 저것을 교류하기 바빴지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눈 적은 몇 번 안되었다. 타임존이 다르다는 이유와 한국 생활 적응을 큰 이유로 귀찮아하고 심드렁해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게 6개월쯤 지났을까, 갑자기 Al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나로 인해 한국이 궁금해졌고 서울을 여행하고 싶다고. 그리고 요즘은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처음엔 1년 동안 그의 남자친구와 함께 서울에서 어학당을 다니며 한국을 더 알고 싶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여건상 3주 동안 다른 그의 절친 Alysha와 함께 서울을 여행하기로 했다고 했다. Alysha는 Al의 생일파티에서 2박 3일간 함께였었지만 조금은 내성적인 성격 탓에 많은 대화는 하지 못했었다. 그래도 내 금쪽같은 친구 Al의 평생 절친이라니 우리는 그것만으로 더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집 앞까지 바로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타고 그들은 모든 게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었다. 물론 인천공항에서 만나는 순간부터 방방거리고 반가워 뛰고 흥분을 가라앉히기 힘들었다. 비행기는 연착에 짐까지 늦게 나와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1시간 30분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그 기다림도 거의 영원히 우리는 만나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 던지라 꽤 참을만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Al이 카톡을 보내왔다.


자신이 영장류로 태어난 역사상 가장 찐따 같은 모습을 하고
우리는 만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참 이 녀석의 단어 선택 또한 기깔 넘친다.
그래서 내가 얘를 좋아라 한다.


airbnb를 통해 응암역 주위에 오피스텔에 하루 70불짜리 복층방을 예약했고 함께 집주인을 만나서 체크인을 했다. 사실 첫날은 오랜 비행이며 시차 때문에 힘들어할 줄 알았는데 너무 쌩쌩했다. 캐나다에서 자는 시간이 거의 비행기 안에서 잘 수 있었던 시간이라며 첫날부터 짐을 풀어놓고 강행군에 나섰다. 우선 집 주변에 있는 죠스떡볶이집의 순대와 튀김(템포라라 불렀다.)을 싸게 먹을 수 있다고 알려줬고 주변의 김밥집을 가리키며 초밥라 불리는 우리네의 김밥도 캐나다의 1/3 가격이라며 실컷 즐기라 했다.


 굉장히 전형적인 서울여행 코스의 일환으로 우리는 인사동을 선택했다. 인사동에서 가장 유명한 똥빵을 팔았던 건물에 데려갔더니 붕어빵을 먹어보고 싶다 하여 똥빵도 맛이 똑같을 것이라 알려줬는데 그것보다 오히려 조그만 토토로 피규어에 관심을 가졌다. 자신의 취향이 확실한 친구 Al은 그 건물을 끝까지 둘러보더니 very anthropologie스타일이라며 평가했다. anthropologie라 함은 미국 중산층 여성들의 쇼핑 보물창고다. 빈티지하고 조금 걸리쉬하면서 보헤미안틱 한 모든 물건들을 다 파는 편집샵이다. 꽤 비싸서 세일가격에서 겨우 살까 말까를 고민하긴 하지만 그들의 시즌마다 새로워지는 물건 디스플레이나 샵의 분위기가 화사하고 매장 안에 들여다볼게 너무 많아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었다. 늘 물건과 향수들을 쭉 둘러다보고 세일섹션으로 직행하여 뒤지다 보면 꽤 괜찮은 물건을 득템 한다. 하지만 이곳의 재미는 언제나 어떤 지점을 가도 늘 색다른 보고 느끼는 즐거움을 준다는 것이다. 나도 어디 가서 취향에 관해선 미친 까다로움을 자랑하는데 이 친구 앞에서만큼은 못 당한다. 조금 picky 하긴 해도 악의가 없고 대부분 옳은 감각을 가지고 있어 Al의 의견을 자주 경청하곤 한다.


 돈이 없는 게 불편함을 넘어 죄가 되는 세상이 서울이었다.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속물이 되어가는 내가 싫어 떠났던 캐나다였고
그 곳에서 굳이 브랜드가 아니고 돈이 많지 않아도
자신의 내면이 당당하면 그것만큼 멋진 것은 없다고
인생을 배우고 왔다고 느꼈는데,

한국에서의 1년 동안 나는 또 타성에 젖어
돈이 없으면 불편해 미치고 돈이 없으면 삶이 후져질 것만 같은
보이는 삶에 너무도 빨리 익숙해져 있었다.
근본 없는 자만심과 함께 말이다.


카페가 캐나다보다 2배는 더 비싸다는 이유로 평소에 쉽게 찾아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여유를 누릴 수 없었다. 만원이면 거의 천 원 쓰듯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지갑을 열수 있다는 나의 오만방자함이 그들의 가이드 노릇을 하며 벽에 부딪혔다. 그들의 예산은 넉넉지 않았고 더운 날씨에 이것도 비싸고 저것도 비싸다 하여 나도 한계에 부딪혔던 것 같다. 하고 싶은 것은 많고 한국은 캐나다에 비해 그리 싼 것이 많이 없는 나라였다. 아니 비싼 게 더 많은 나라였다. 어떻게 연봉은 1/2 수준이면서 커피값은 2배, 디저트값은 2배를 훌쩍 넘긴단 말인가.

사실 빙수도 6900 원하는 것을 겨우 찾아 세 명이서 갈라먹었는데 그들은 팥을 좋아한다 했지만 떡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떡보다 더 혹평을 받았던 건 미숫가루였다. 입안에서 파우더리 한 게 푹하고 퍼지는 느낌을 견디지 못해했다.


내가 보여주고 싶은 서울의 모습은 한국적인 고즈넉함이 위주가 아니었다. 고급스럽고 fancy 하게 꾸며진 강남 일대의 카페와 디저트 샵을 전전하며 전 세계에서 온 맛있는 디저트와 베이커리들을 소개해주고 싶었다. 그 마음가짐이 가이드노릇을 하면서 가장 힘들어했던 점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뉴욕과 닮은 점들을 찾아다녔고 그들은 진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스팔트의 패턴과 삼천 원짜리 분식을 원했던 것이었다. 그런 것이 우리가 가진 부끄러움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정확히 말해, 다양한 스펙트럼의 가격대에서 즐길 수 있는 소비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이 또 하나의 장점이라 생각했다.) 가장 먼저 서울을 떠올렸을 때 가지는 이미지는 전 세계 좋은 음식들은 우리 나라에서 마음만 먹으면 다 입점되어있는 잘 정돈된 음식들과 분위기를 자랑하고 싶었다. 그들이 캐나다를 떠날 때 beavertails를 꼭 먹어 봐야 한다고 해서 '진짜 캐나다의 디저트를 느끼고 가는 구나.' 여겼는데 하얀 벽과 밝은 톤의 조명의 서울 백화점 푸드코트에 가면 beavertails는 물론이고 푸틴부터 각종 유명한 미국, 일본 등지의 디저트까지 없는 게 없다는 것을 각인시켜주고 싶었다.

 이런 관점의 차이를 통해 나는 한국인으로써 한국적인 것을, 한국을 제대로 모르고 살고 있음을 자각해야 했다. 여권만 대한민국이었지 무엇이 애국심이고 어떤 것이 내가 사랑하고 가치 있게 생각해야 할 것들인지 잊게 되었다. 언제부터 서울에서 한국스러움이 서브가 되었던가? 중심을 잃어버린 가이드라 틀린 것은 알았지만 무엇이 옳은 것인지 헤매고 있었기에 앞으로의 일정을 정하는데 있어 어떤 것들을 해야 할지 두려움에 앞섰다.  반성해야 했고 내 것과 내 안의 진짜 아이덴티티를 지켜내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가 함께 뒤섞여왔다.

 인사동의 아름다움은 언제나 볼 수 있어 진부하다 생각했고
뉴욕에서 들여온 컵케이크는 한 시간을 기다려도
먹을만한 가치 있는 것이라 여긴 우리 모두가
'잘못된 가치를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경복궁 야간개장 마지막 날의 전 날, 인사동을 헤매고 무료로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관을 관람했다. 그리고 6시부터 티켓 오픈이라 5시부터 미리 외국인 전용 줄을 서서 경복궁 야간개장 티켓을 거머쥘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그러고 보면 제도적으로는 외국인들에게 서울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혜택들을 꽤 많이 주고 있음을 느꼈다. 외국인들이 인터넷 예매를 하는데 불편함을 겪을 테니 이를 현지에서 바로 표를 판매하여 외국인 1인당 4장의 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한국인뿐만 아니라 외국인에게도 무료로 미술관을 관람할 수 있는 조건을 똑같이 학생이면 자격을 줄 수 있게 기회의 문을 열어두어서 한국을 효과적으로 관광할 수 있었다. 이 날 점심으로 삼청동 입구에 있는 죠스떡볶이에 들러 5000원 미만으로 튀김과 튀김크로켓 그리고 소다를 시켜 배를 채웠다. 싸고 맛도 좋다며 만족해했지만 무엇보다 아무것도 든 게 없어 보이는 어묵 국물에서 깊은 맛이 난다며 연달아 들이켰다. 떡볶이와 순대를 시킬 줄 알았는데 튀김에 감동하고 사이드로 나오는 국물 맛에 감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참 친한 내 친구지만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나?' 답답해지는 것 같았다.

 So beautiful을 연발하였던 근정전의 야경과 경복궁 야간개장만이 줄 수 있는 특별한 들뜸과 분위기는 어떤 근사한 Bar보다 더 인상 깊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28일 금요일엔 eat your kimchi라는 유명한 캐네디언 유투버가 운영하는 카페 here is cafe에 놀러 갔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비쌌고 직원들은 그리 친절하지 않았다. 그 안에 유튜브 동영상으로 쓰일 부스는 신기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전혀 끌리는 장소는 아니었다. 한국의 프랜차이즈 카페와 비교하여 조금 더 비싼 듯한 가격에 외국인들이 그들의 동영상을 보고 찾아오는 외국인 전용 관광명소와 같아 보였다.

 그 전에 뉴욕과 꽤 비슷한 맛을 자랑하는 베이글이 있다며 이대 퀸즈 베이글에 갔는데 달달한 맛을 즐기는 나는 언제나 시나몬 베이글에 스트로베리 크림치즈와 같은 조합을 시켰는데 그들은 할라피뇨 크림치즈에 플레인 베이글 등 달달구리가 아닌 식사를 위한 식사적인 맛을 선호하며 즐긴 게 신기했다.

그거였다.
달달구리는 달달구리만큼의 칼로리를 먹었으니
그것을 식사로 친다는 나의 마인드와
디저트는 디저트 따로 식사로 먹는 빵은
지극히 플레인하고 meal스러워야한다는
개념의 차이를 깨달았다.

 바닷가 없는 곳에서 평생을 자랐으니 당연히 노량진 수산시장은 굉장히 신기한 곳이라고 연신 동영상을  찍어댔다. 노량진 수산시장이 궁금할 거란 생각보다 그들의 budget이 한 끼에 5천 원이니 만큼 5천 원 이하의 식사가 분식 말고 뭐가 있을까 궁리한 끝에 노량진만이 그 답일 것 같아 수산시장이 문을 닫는 시간을 계산하여 느지막하게 노량진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의 진짜 유명한 베트남 쌀국수 아줌마를 찾았는데 그곳에 다른 분이 장사를 하고 계셔서 진짜 절망했었다. 그곳만큼 그 가격에 맛 좋은 베트남 음식은 없었기 때문이다. 토토로와 다른 귀여운 문구들에 환장하는 친구들을 문구점에 넣어다 두고 잽싸게 가게를 찾았더니 노량진 한가운데 꽤 크고 좋은 가게를 여셔서 찾아갔다. 가격은 500원 올랐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가성비 최고를 자랑하는 베트남 음식점이었다. 친구들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볶음밥이라고 했다. 그렇게 맛있는 볶음밥을 이 가격에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캐나다에서 보통 한 끼를 먹으면 2만 원은 족히 들어간다. 우리나라는 팁도 안 내고 세금도 따로 안내서 10000원이면 꽤 근사하고 7000원이면 보통의 괜찮은 외식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진짜 그놈의 예산이 문제였다. 돈 없는 그들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왜 캐나다에선 2만 원씩 내면서 외식을 하면서 우리나라도 절대 싼 나라가 아닌데 그렇게 빡빡하게 예산을 잡고 와서 이리 제약이 많은 채 관광을 해야 하나 혼자 소개할 수 있는 한계를 느껴 골머리를 앓았다. 그러고 보면 참 우리나라도 물가가 소름 돋게 빨리 오른다. 원래도 알고 있었지만 이 친구들과 함께 3자의 시각으로 보면 카페의 가격, 특히나 디저트의 가격은 금값이다. 독일만 해도 프랑크푸르트 완전 노른자 땅에 있었던 카페의 케이크 한 조각의 가격이 3000원대라 거의 나는 공짜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필요 이상으로 카페와 디저트의 가격이 과하게 측정되어있다는 불만을 그들과 함께 늘어놓게 되었다. 평소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던 가격이거나 비싼다는 생각보다 디저트는 그래 왔기 때문이라는 인식을 아무런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게 문제였던 것 같다.


 그렇게 노량진에서 한강대교를 지나고 여의도까지 한강을 따라 꽤 걸어왔다. 도심 한복판에 청계천부터 시작해서 한강을 보고 아름다운 경치를 쉽게 즐길 수 있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되려 "너네는 얼마나 아름다운 온타리오의 호수를 가졌는지 아니? 나는 매일같이 옥빌의 온타리오 호수를 보는 순간을 놓치는 게 아까워 한 시간 반을 그 광경을 보기 위해 걸어 다녔어. 그리고 세상에 좋고 멋있는 것들을 여행하면서 많이 보았지만 옥빌의 온타리오 호수 뷰만큼 내 마음을 힐링시켜주는 뷰는 없다고 생각해!"라고 답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옆집 잔디가 더 푸르러 보인다는 말처럼 사람은 늘 내가 가진 것의 소중함보다 남이 가진 좋은 것을 부러워하는 동경을 더 크게 인지하는 것 같다. 내가 가진 익숙함에 대한 가치를 감사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을 늘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8월 30일 토요일엔 통인시장을 찾았다. 싸고 앤티크 한 동양적인 물건들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먹거리도 시장이니만큼 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미리 인터넷을 뒤져보니 통인시장 입구에 한국 전통 물품들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무료로 이용하게 되었다. 이렇게 제도들을 빼꼼이처럼 잘만 이용하면 외국인들에게 둘도 없는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는 것이 참 곳곳에 많이 있음을 깨달았다. 미술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이니만큼 그림을 그리라 하니 한참을 오리고 그리고 붙이느라 여념이 없어 보였다.


 한 가지 인상을 찌푸릴만한 사건은 통인시장 상인들의 태도였다. 특히 건물 안에 있는 가게 주인들은 친구들이 물건을 사려고 문 앞에 서성이자 당연히 그들이 못 알아들을 거라 생각하고 '사지도 않을 애들처럼 보이니까 대응해주지도 말라.'고 얘기하더니 '진짜 안사고 갈 줄 알았다.'고 면전에 대가 대놓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살다가 그렇게 무례함은 손가락에 꼽을 만큼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실컷 나라에서 여러 가지 한국을 체험하고 느낄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놓아도 저런 몰상식한 행위가 얼마나 경우 없는 일인지 인식을 고치지 않으면 모든 게 다 헛수고라는 생각뿐이었다. 너무 다행히도 감사하게도 그들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사람은 느낄 수 있다.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어투나 느낌에서 그들이 환대받을 때와 지하철에서 뻔하게 동물원 보는 것마냥 쳐다보며 아래위를 훑는 창피함까지 모든 것을 말이다.


그리고 쿠팡에서 저렴하게 구매해둔 jump티켓을 선물했다. 한국에서 내가 근사한 밥 한 끼 사는 것보다 이런 공연들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질 것이란 판단 때문이었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그들은 jump공연을 너무 즐겁게 즐겼다고 했다. 그리고 공연장 바로 앞에 있는 김밥천국에서 참치김밥을 시켜먹었다. 캐나다는 김밥 6알에 10불쯤 한다고 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김밥 값은 캐나다에 비하면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였다. jump전용극장을 찾아가는 길에 다음 지도를 이용했는데 분명히 jump서울 전용극장이라 되어있어서 그곳을 찾아갔는데 그냥 서울극장이라 해서 다시 길을 찾아 헤매아했다. 가끔씩 지도가 틀릴 때마다 허탕을 쳤다는 생각에 화가 난다. 지도가 100%다 옳을 순 없지만 포털사이트가 일일이 다 확인하지 못하더라도 이건 극장 자체에서 수정 요청을 해야 하는 부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남산타워에 올라가서 남산을 못 보는 것보다 이태원 루프탑바에 가서 제대로 된 남산 뷰를 즐기자는 의견을 모아 힘들게 찾아간 이태원의 한 루프탑바에서 친구들은 화가 폭발했다. 불친절한 응대와 많은 손님을 수용할 수 없어 엉망진창이었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외국인이라서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건 아니고 갑자기 이 곳이 유명해져서 그런 것이라 다독였는데 실컷 좋은 것 보여주려고 데려갔던 내가 더 미안하고 민망해졌다. 내가 평소에 술을 즐기지 않아 제대로 아는 바도 하나 없이 무작정 유명하다는 곳을 데려간 게 잘못이었다. 이럴 때 보면 어느 정도 술을 좀 즐겨야 하나 싶은 회의감이 들 때도 있다. 그리고 토요일 밤의 이태원은 커플천국이었다. Al이 서울에 있는 커플들을 이곳에 모아놓은 것 같다고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몇 년 전 강남의 토요일 저녁이 이랬던 것 같은데 그 붐이 이태원으로 넘어온 듯 보였다.

 그렇게 우리의 awful 했던 이태원 사냥은 마무리했다. 편의점에서 매화수 한 병을 사들고 캐나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왜냐하면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에서는 술을 일반 슈퍼에서 팔지 못하고 LCBO라는 술을 파는 가게에서만 술을 살 수 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술을 마시는 것은 법으로 금지된 사항인데 그들은 이 모든 것을 한국에서 일탈하는 경험을 하고 한참을 신나 했다. 물론 저렇게 매화수를 만만하게 봤다가 집에 도착하고부터 밤새 sober up 했다는 잊지 못할 추억을 만든 채로 말이다.


 친구들에게 최고의 가이드가 되기 위해 그리고 최선을 다하기 위해 꽤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상상 이상으로 고되고 지쳤다. 그리고 상대의 의중과 취향을 100% 이해하지 못한 채 어떤 것이 좋아하고 싫어할지 plan b까지 늘 찾아야 하고 길을 한 번에 가장 편하게 알려줘야 하고 모든 것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알려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더욱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이 한국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스스로에게 후회를 남기지 않는 가이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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