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그 자리엔 도쿄가 있었다

하루 한끼 제대로 먹어보세

by 나이쑤

저가항공 중 가장 밥이 잘 나온다는 에어부산을 타고 김해-도쿄로 갔다. 비행기 타기 전에 티켓팅을 하고 면세점을 지나 편의점으로 향했다. 언제나 먹어도 감동인 감동란을 흡입하고 탄산수를 실컷 들이켰다. 비행기 타는 시간을 넉넉하게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 언제나 기다리는 것도 싫으면서 게이트 앞에서 한 시간은 멀뚱 거리고 기다리는 것 같다. 기내식이 기대 이상으로 맛있어서 다섯 숟갈만 먹어야지 했던 게 반쯤 먹고 종이 도시락 뚜껑을 덮었다. 도쿄에 도착하고 에어비엔비 숙소로 향하는 길에 돈은 돈대로 쓰고 고생은 고생대로 했다. 넥스였던가?(일본어 능통한 친구 덕에 여행의 수고로움을 덜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친구찬스! 내 친구 능력자~) 빠른 열차를 탔는데 시부야까지 가지 않았고 무거운 짐을 끙끙이고 지고 지도까지 놓고 온 터라 시부야에서 다시 숙소까지 가는 지하철을 타고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을 찾아가는 길이 어찌나 멀게만 느껴지던지 감으로 가고 있었는데 다시 되돌아가야 했으면 캐리어 던질 뻔했었다. 다음번엔 꼭 하네다 공항을 이용하리라 마음먹었다. 진짜 멀어도 너무 먼 나리타 공항임을 절실히 느꼈다. 돌아오는 길은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집에서 바로 연결된 지하철로 30분쯤 더 걸리는 지하철만 두어 번 갈아탔는데 내려서 바로 다음 열차를 타고 오는 식으로 아주 수월하고 저렴하게 왔었다. 구글맵은 이렇게 믿음을 준다.(가끔씩 황당한 경우도 있지만)

일본 집은 좁았지만 친구와 함께 쓰기엔 충분했다. 집도 집이었지만 동네가 너무 맘에 들었다. 관광객이 없고 진짜 우리 나이대 젊은이들의 일상을 함께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공간을 가장 많이 걷고 느낄 수 있다는 게 에어비엔비의 장점이다.

에어비엔비 호스트의 웰컴 기프트 겸 레터와 달달구리로 당보충을 하고 시간이 아까우니 얼른 시부야로 나섰다. 숙소에서 시부야까지 세네 정 거장만에 도착해서 시부야를 기점으로 옮겨 다녔는데 문제는 라인을 갈아탈 때마다 추가로 돈이 붙어서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은 돈을 쓰게 된 건 지하철값이었다. 체감하기엔 캐나다 토론토보다 더 비싼 듯했다.


일본은 어떤 음식이든 장난치지 않아서 그게 믿을 수 있고 좋았다. 그냥 막 들어간 지하철역 주변의 초밥가게에서도 굉장히 두툼하고 신선한 초밥을 먹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쿄를 찾았던 그 기억을 살려 이번엔 백화점 타임세일 초밥을 노렸다. 처음에 매장에 들어갔더니 30% 할인하고, 십 분쯤 더 기다리면 50%로 떨어져있었다. 이렇게 그득하게 맛있는 초밥을 먹을 수 있다니 기대감에 벅차올랐다. 지하철 주변에 있는 가게도 그리 맛있었는데 백화점은 더 맛있겠지라는 예측은 정확히 빗나갔다. 왜냐하면 맛이 기대 이하였기 때문이다.

도쿄까지 갔으면 진짜 맛있는 초밥집에 가서 오동통한 초밥을 제대로 느끼고 올 걸 후회했다. 딱, 궁상 떨다 망한 케이스다. 아가리 다이어터의 사명감으로 다이어트할 거라고 하루 종일 조금만 먹다 초밥 먹기 20분 전에 수소문해서 올리브영 같은데 들러서 칼로리커트제를 사고 20분 지난 후 초밥 먹기 시작했다.

물론 '초밥은 살 안 찔 거야... 생선이잖아... 칼로리커트 제대로 먹었으니 살 안 찔 거야...'라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세상엔 살 안 찔 이유가 너무 많은데 내 몸무게는 늘 그대로인 건 왤까. 어쭙잖게 먹어서 칼로리 커트제 배출 못하서 몸만 무거워지는 이 찝찝함까지 정말 더 별로였다. 평소엔 그냥 살다가 꼭 여행 간 다하면 가서 다이어트하는 여자의 욕망은 뭘까? 단순히 나의 기준으론 사진을 찍을 때 1g이라도 가녀려 보이기 위한 사투인셈이다. 여행 가서 남는 건 사진이고 그 사진을 보며 그때를 기억할 때 얼굴이라도 핼쑥하면 셀카든 전신 사진이든 꽤 많은 사진을 오래 간직하고 싶게 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음식이 달게 느껴지는 자의 업보라 여긴다.

유자라멘으로 유명한 afuri 아프리를 찾았다. 일본 라멘이라 함은 조금은 리치하 다 못해 무겁게 느껴지는 국물 맛을 떠올렸는데 이곳은 국물이 진~짜 담백해서 코를 그릇에 처박고 마셨다. 그렇게 아점을 라멘으로 먹고 라멘값이랑 비슷한 시부야 한복판에 위치한 500엔 넘는 아이스크림을 저녁의 후식으로 먹었다. 맛있게 달고 진한 풍미의 아이스크림 크으으으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리운 맛은 아니었다. 한국에도 맛있는 고급 아이스크림들이 많이 들어오던데 '백미당 아이스크림을 한번 먹어봐야지.'하면서 그냥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에서 꽤 많은 일본 라멘집을 찾아다녔다. 모모푸쿠는 제 집 넘나들듯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꼭 가서 테이크아웃이라도 해다 먹었고 3대 라멘집중에 내 취향에 맞는 맵싹한 라멘집을 즐겨 찾았다. 한국엔 얼큰하면서도 국물을 진짜 진하게 우려낸 라멘을 찾기 힘들었다. 예뻐도부터 시작해서 몇 군데 다녔는데 면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아무리 유명하고 브랜드가 있다고 하더라도 물 건너 오면 그 오리지널리티가 조금 달라지는데서 오는 아쉬움이 있었다. 맛을 그대로 재연해 낼 수만 있다면 진심으로 afuri(아퓨리)가 한국 오면 좋겠다. 우엉의 아삭 거림으로 시작해 면도 맛있고 한 끼 먹으면 든든하다.

그리고 없던 입맛이 돈다.(x, 그런 적 없음) 식욕이 돈다.(o, 언제나 늘)

이성을 잃고 반만 먹겠다고 국물을 마시다 보니 짜고, 그러다 보니 면을 먹고, 여기까지 지하철 타고 와서 기다린 게 아까우니 먹고, 한 숟갈 겨우 남겼는데도 그 집을 떠날 때 까지 남긴 면이 눈에 아른거려 눈물 날뻔했다.

디즈니씨에서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 마지막 날 밤의 아쉬움을 시부야에서 달랠 힘이 없었다. 하루 종일 기다리기만 하다가 놀이기구 조금 타고 남들이 공략해서 탄다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어서 그냥 무식하게 다 기다리고 탔다. 그래도 우직하게 기다리다 보니 유명한 거, 인기 많은 것은 다 타고 뽕을 뽑고 집으로 왔다.

집에 들어가서 흘린 땀을 씻어내고 다시 집 앞으로 나오기 귀찮을 걸 뻔히 알아버린 우리는 역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주위의 편의점과 선술집으로 향했다. 진짜 담배 소굴에 들어와서 숨쉬기 힘들었다. 담배냄새 때문에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조차 없었다. 코로 한참을 막고 있다가 눈도 몇 번 비벼보다가 좀 있으니 그리 못 앉아 있을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담배냄새에 적응도 하고 친구가 시킨 갖가지 꼬치들을 얻어먹었다. 대체적으로 아주 싼 곳이었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가 싶다. 원가도 안 나올 것 같은 가격이었다. 150엔~250엔대였다. 메뉴 중에선 감자 샐러드가 이 집의 베스트 2의 메뉴였던 만큼 맛있었다. 일본의 꼬치를 제대로 먹고 싶었으나 세븐일레븐 어묵이 더 만족스러웠다. 다음번엔 제대로 된 꼬치집과 제대로 된 초밥집을 찾을 것이란 다짐을 했다. (어쨌든 여행에서 가장 그 곳을 좋게 기억하는 것은 먹는데서 오는 충족감이니까 말이다. )

인생 초콜릿이 나타났다. 친구가 편의점에 들러 다른 맛은 재고가 많은데 하나 남았길래 사 먹었는데 에어가 들어가도 공기맛이 느껴지지 않고 촘촘하게 맛이 느껴지고 머리 띵하게 달콤한 건 없었다. 당떨어진다고 먹기 시작하다가 '한 봉지 크기 작으니까 하나 다 먹어도 돼.'라고 자기 합리화하게 만드는 맛이었다. 한 달 뒤 엄마가 일본 가게 되셔서 열개 사 와달라고 부탁했다. 다섯 개 중에 하나는 엄마가 맛보시고 내 손에 받아온 건 총 네개였는데 하나는 참다 참다 초콜릿이 너무도 간절한 날 하나 먹고, 두개는 친구를 주려고 챙겨뒀다. 남은 한 개 올해가 가기 전 가장 행복한 날 만끽하려고 아껴뒀다.

편의점에서 발까져서 제일 싼 대일밴드 200엔쯤(그것도 그중에 제일 싼 거라서 샀다.) 주고 샀는데 일주일이 지나도록 떨어지지 않고 기존 대일밴드랑 확연히 차이나는 제품력에 반했다. 블로그를 보다 보니 일본 가서 사람들이 몇 개씩 쟁여오는 그 제품을 우연히 사게 된 것이었다. 초록색에 가까운 대일밴드인데 아껴 쓰고 있다. 다음에 일본 가면 대일밴드랑 초콜릿 galbo black kakao만 왕창 사와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그놈의 로손(lawson)! [부들부들]

일본 내리자마자 눈앞에 보이는 로손 들어가서 저 빵 찾았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관광객 많은 덴 안 보였다. 그리 무리하지 않은 날 밤에 집에 일찍 들어와 돈키호테를 찾아 집을 나섰는데 가는 길에 집에서 십오 분쯤 떨어진 로손을 발견했다. 밤에 갔더니 종류별로 있어서 다 먹어봤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가격 대비 괜찮으나 이틀 지나서 집에 가지고 와서 먹은 건 몽글몽글 크림이 돼서 그냥 가성비 치고 괜찮은 정도였다. 멜론빵이 의외로 풍미가 가득하니 맛있었다. 거북이 등껍질처럼 크고 맛나서 돌아오는 길에 하나 더 사 와서 냉동실에 넣어뒀다 평소 소보루빵을 좋아하는 동생에게 줬다. 내가 아주 맛있다고 극찬을 했지만 "그냥 소보루 빵이더만 멜론맛 나는..."이란 말을 듣고 로손을 힘들게 찾아 헤맸던 전투감이 상실되는 김 빠진 소리를 하고 있었다. 선물은 좋든 실든 무조건 오버한다 싶을 만큼 고맙다고 표현하는 겁니다...

마지막 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캐리어를 질질 끌고 집에서 가까운 지하철 역 앞에 있는 도토루에 들렀다. 언제나 담백하게 맛있는 도토루 커피 한잔을 물고 마무리했다. 한국에 도토루가 있을 땐 그런가 보구나 했는데 일본 가서 먹으니 커피부터 샌드위치류까지 언제나 깔끔하게 맛있어서 찾곤 한다. 사라진 도토루 돌리도!

대체적으로 도쿄 여행에서 다이어트는 실패였다. 열심히 작게 먹었다 생각했지만 하루이 한 번씩 고된 일정을 마치고 밤마다 찾아오는 핑핑 돌 것 같은 현기증에 프렌치 프라이의 유혹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발을 튀겨도 맛있다는 명제를 되새기게 하는 일본 맥도널드의 감자튀김이었다. 그리고 새우버거도 어찌나 맛있던지 진짜 끝장나게 맛있었다. 썰전에서 나온 것처럼 새우가 도톰하게 가득 들어있고 소스가 막 패스트푸드라 느껴질 만큼 짜지 않아서 좋았다.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운 명제는 "여행 가서 다이어트는 넣어둬~ 넣어둬~"다.

사람들이 하나같이 사 온다길래 뭔가 싶어 돈키호테에서 하나 사온 ufo라멘은 사 온지 두 달이 넘었는데도 그대로 식료품칸에서 뜯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궁금한데 맛보기 귀찮은... 면요리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대신 나는 과자러버, 빵러버, 떡러버, 디저트 러버다.(자랑이다.)

이 모든 걸 다 포기해도 괜찮은데 유독 미친 듯이 프렌치 프라이가 제일 당겼던 도쿄였다. 그리고 도쿄에서 먹었던 것들 중 제일 맛있었던 건 맥도널드 새우버거였다.(과연 식도락 여행인가! 한탄스럽다.)

일본인이 기다리는 것의 끝판왕인 줄 몰랐었다.

그냥 선진국이고 기본 질서를 잘 지킨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미친 듯이 기다리는데 손님들 진을 다 빼놓는 것을 빨리 수정해서 대안을 내놓지 않고 있는 게 답답했다. 진짜 그렇게 즐거워야 할 디즈니씨에서 기다리다가 웃을 힘도 없었다. 하루 종일 기다리는 게 고문스럽게까지 느껴졌다. 몇 년 동안 미국 올란도에 있는 디즈니월드에서부터 디즈니랜드까지 디즈니 놀이동산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진짜 유치하고 비싸고 힘들고 그냥 그랬다. 내 인생의 디즈니랜드는 이제 그만 넣어둬 넣어둬... 입장료모아서 인형을 사모으는 편이 나에겐 남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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