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먹는다 고로 여행한다 _ 서울 편

서울의 핫한 곳만 찾아 먹는 여행 ::: 2박 3일 서울구경

by 나이쑤
서울살이가 5년쯤 지났지만,
여전히 누군가에게 서울을 소개해준다는 것은 쉽지 않다.

어쩌면 너무 광범위해 보이고, 어쩌면 참 별게 아닌데 서울에서만 할 수 있는 것만 찾다 보니 꽤나 어려운 과제가 된다. 내가 만족하고 즐기는 것을 상대도 만족할 수 있을까에 대한 압박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주 찾아오지 못하는 기회에 최대한 효율적인 동선과 최고의 가성비로 상대의 취향을 끊임없이 물어보고 최대한 편리하고 빠른 대중교통을 활용하여 여행을 계획하곤 했다. 처음엔 오랜만에 온 친구의 연락이 반가워 무작정 서울에 오는 게 환영이라고 했지만 가이드라는 것이 육체적으로도 피곤한 노동이지만 정신적으로도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것이었다.

야~니 어딘데? 아, 잠만... 니 찾았다!

경상도 여자들의 만남에선 가타부타 반가워하는 감정소비가 덜하다. 오랜만에 만나 서로 변한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아무리 꾸미고 성인이 되어 짧은 스커트를 입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한다지만 우리는 처음 교복을 입던 날 자연스럽게 친해진 사이였기에 변해버린 서로의 모습을 적응해나가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냥, 익숙한 반가움이 앞서 친구를 맞이했다. 김해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온 친구를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만났다. 신세계 백화점과 고속터미널역 그리고 파미에 스테이션까지 먹을게 천국인 곳에서 우리는 곧장 오랜만에 만나 서로의 근황을 묻기에 너무 복잡하고 정신없는 곳을 벗어나기로 했다. 지하철 통로를 지나 뉴코아 아웃렛의 b-side에서 브런치 세트를 먹었다. 함박스테이크 맛은 어디서나 맛볼 수 있는 보통의 맛이었지만 이곳의 달콤하고 폭삭한 팬케이크와 그 안에 있는 크림 파스타의 조합은 정말 특색 있고 맛있었다. 오랜만에 이런 파스타를 먹는다며 친구는 즐거워했고 세트메뉴로 시키면 음료까지 함께 나와서 브런치 치고 특별한 웨이팅 없이 고속터미널 주위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폴바셋에서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한동안 아이스크림이 그리도 맛있더니 이젠 그 맛이 그 맛 같고 여전히 비싸고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맥도널드 콘 아이스크림만큼 500원의 행복을 누릴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없다.

서울에만 있는 것이 뭘까?

날씨가 너무 더워 더위를 피해 우선 집으로 곧장 가서 짐을 놔두고 좀 쉬었다. 해가 질 무렵, 한참을 집에서 시간을 끌다가 이렇게 하루를 보내긴 아까워 서울에 있는 것이 뭔지 한참을 고민했다. 친구는 한강에서 라면을 먹어보고 싶다고 했고 연예인을 보고 싶다고 했다. (연예인은 볼 생각도 없었는데 다음날 신사역에서 여의도로 넘어오는 지하철 환승역에서 배터리 충전을 하고 있는 유명한 피디를 만나 신기해했다.)

그렇다면 이태원으로 가자고 친구를 이끌었다.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서 아무래도 조명이 예쁘고 특이한 시설이니까 그곳을 들렀다 바토스에서 가볍게 맥주 한잔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다. 친구는 말했다. 서울은 어딜 가나 30분은 그냥 넘는 것 같다고. 아무리 부산을 돌아다니고 부산에서 김해를 왔다 갔다 해도 1시간인데 우리 집에서 지하철을 타고도 (퇴근시간이라 버스를 타면 더 밀렸겠지만) 50분을 꼬박 지하철을 바꿔 타고 또다시 버스를 타고 겨우 도착했다. 근방에 멋진 건물이 많았지만 유독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건물이 눈에 띄었는데 그것이 역시나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였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곳이 천국일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을 했다. 나는 팝이나 주류 음악과 옛날부터 알게 된 음악만으로 충분히 음악이 주는 감성은 채울 수 있는 타입이라, 한마디로 음악에 대한 깊은 조예나 지식이 없어, 친구랑 이런 게 있구나 둘러만 보려고 했는데 우연히 공연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김수로 프로젝트라는 뮤지컬이었고 친구랑 나랑 둘 다 현대카드를 들고 있던 터라 만원 싸게 공연을 봤다. 공연 시작 30분 전에 표를 끊고 그 남는 시간 동안 뮤직 라이브러리를 둘러봤다. 보통은 커플들끼리 한 LP판을 들으며 데이트를 하는 장소처럼 보였다.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를 입장할 때 신분증을 내고 가방을 맡긴 후 입장 카드를 바꿔 들고 다니는 게 처음엔 좀 성가신 일이었다. 하지만 두 번쯤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를 이용하니 늘 정돈된 분위기에 내가 원하는 정보를 깊이 있게 알 수 있는 공간이라서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사실 공연도 볼 생각이 없었는데 뮤지컬이었고 김수로라는 이름과 현대카드도 아무런 무대를 올리지 않는다는 믿음에 급작스럽게 보게 되었는데 오랜만에 문화적인 감성을 충전하고 또 소극장 형태로 되어있어 온전히 배우들의 연기에 빠져들 수 있던 시간이었다.

서울은 처음이 아니지만 다른 친구들과는 달리 여행 삼아 서울에 오는 것을 귀찮아하고 버거워하던 친구에게 이번 서울여행은 일탈 아닌 일탈이었다. 그렇게 주위의 하나같은 조언이 서울에 가면 꼭 바토스에 가보라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바토스의 분위기는 좋지만 바토스에서 먹은 음식이 서울을 대표할 만큼 최고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뭐 많은 사람들이 서울 하면 바로 떠오를 만큼 강추하는 음식점이니 데리고 가야겠다 생각했다. 원래 현대카드 라이브러리를 20분 정도 둘러만 보고 올 생각이었는데 공연을 보게 되어 시간이 많이 늦어졌다. 한참을 걸어서 바토스에 갔는데 시간이 늦어 음식은 시킬 수 없고 음료만 가능하다고 했다. 가는 길에 예쁜 카페들과 분위기 좋은 바들이 줄지어 있는 것이 장관이었다. 서운한 마음을 달래려 깐부치킨에 갔다. 나도 치킨을 즐겨먹지 않는지라 처음 갔는데 순살을 시키는 바람에 완전 치킨 비계가 너무 많아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치킨을 남기다니..." 우리의 먹성에 그렇게 맛없는 치킨을 남기고 후회가 없기는 처음이었다. 막차시간이 끊길까 마음 졸이며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와 함께 어딘가를 이동하고 같이 즐기고 먹고 하는 것이 단순히 다른 곳에 사는 친구와 행아웃 하는 의미 그 이상이었다. 함께 웃고 떠들고, 서울말이 충분히 편해졌지만 친구와 함께라 사투리가 하염없이 편해지는 순간을 마음껏 즐겼다. 또 어릴 적부터 수능날까지 그리고 수능이 끝나서 함께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몸부림쳤던 그 날의 기억을 다시금 낄낄거리며 곱씹을 수 있었다.

오늘 또 뭐 먹지?

서울에서 제일 좋아하는 맛집은 여기 다 모여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곳에 있는 맛집들도 음식점 하나, 하나를 찾아가려면 몇십 분씩 줄 서야 하고 웨이팅 해야 할 때도 있는데 이곳에선 각자의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으니 세 번, 네 번을 데리고 가도 전혀 아쉬운 소리 들을 리 없는 곳이었다. 어제 힘들게 도착했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던 바토스에서 타코를 시키고 내가 소개하여주고 싶었던 서울의 명물 음식점인 카페 마마스에서 리코타 치즈 샐러드와 청포도 주스를 먹었다. 꽤나 많은 양이었지만 우선 서울에서 먹는 한 끼, 한 끼를 소중하고 신중하게 음식점을 선정하고 메뉴를 골랐기에 음식이 나오면 사진을 찍고 몇 번의 감탄사와 함께 둘이 장단에 맞춰 흡입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주변의 추천에 비해 너무 기대를 했던 탓인지 바토스는 기대 이하라 했고 카페 마마스는 다른 메뉴들도 더 먹어보고 싶은 맛이라 했다. 그리고 가로수길을 가운데로 가로질러 걸어보았다. 가기 전에 정말 별게 아니라고 그냥 샵들 쫙 있는 길이라고 했지만 가보기 전에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그놈의 가로수길이 뭐길래 하는 궁금증이 친구를 사로잡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가로수길을 걷고 나니 이것 또한 그저 그런 것이 되어있었다. 늘 익숙하고 일상적인 것들이지만 이를 경험해보지 못한 상대에게는 무한한 동경과 호기심이 있는 곳이 서울이었다.

가로수길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를 경험하고 서울에서 일하는 친구들이 서울이 부산보다 더 덥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겠다고 친구는 말했다. 뭔가 도시에서의 더위는 에어컨과 배기가스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 타들어가는 습도가 합쳐져 금세 더위를 먹게 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물을 챙겨마시지 않았더니 금세 탈수 증상이 오는 것 같아 편의점에서 물을 사다 시원한 지하철역 안에서 금세 한통을 비웠다. 그리고 이 더위를 피하려면 몰이 최고라며 여의도 ifc 몰로 갔다. ifc몰에 두 개의 커피빈이 있었고 가로수길에서도 커피빈에 들렀지만 디카페인 원두가 전국 일시 품절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나라가 유통이 미국처럼 땅덩어리가 커서 몇 날, 며칠이 걸리는 곳도 아닌데 왜 이런 시련을 이리도 더운 날 주는 건지 답답했다. 스위스에선 관광 페리에 있는 카페에서도 디카페인 커피를 시킬 수 있었고 커피의 나라 이태리는 물론이고 미국, 캐나다에서도 디카페인은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는데 그나마 프랜차이즈인 커피빈마저 디카페인을 구하기 힘들어진다면 정말 카페인을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나 임산부들은 선택권이 말도 안 되게 좁아진다.

그리고 주위에 서울에만 있는 커피집이 없냐고 물었다. 그래서 ifc몰에서 몇 발 멀지 않은 곳에 테라로사 커피 전문점에 갔다. 그곳에서 먹은 호두타르트는 맛있게 달았고 씹는 재미가 고소하게 있었다. 직접 집에서 호두 타르트를 구워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 맛이었다. 친구는 이곳의 커피가 맛있다고 극찬했다. 증권가 한 가운데 있어서 직장인들도 많았지만 테라로사의 분위기는 마치 시카고에서 가 본 인텔리젠시아 커피 전문점의 분위기와 유튜브에서 훔쳐다 보곤 하는 L.A의 유명한 커피 전문점의 모습을 합쳐놓은 것 같았다. 결국 디카페인 커피는 이곳에서도 찾지 못하고 비트가 들어간 음료를 시켰는데 사람들이 테라로사 커피를 마시러 외곽까지 나가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한강이 뭐라고

처음엔 한강에 괴물이라도 살고 있는 줄 알았단다. 그렇게 매체를 통해 사람들은 한강을 마치 서울 사람들의 친구이자 휴식처이자 눈물과 웃음을 한 데 담은 공간처럼 느끼는 것 같았다. 친구가 화장실 간 사이 선선한 바람이 불고 해가 막 지기 시작해 모여드는 사람들과 삼삼 오오 모여 배달음식을 먹으며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틈에서 하늘 구경을 한참 했다. 그리고 겨우 배를 꺼주고 소원풀이를 했다. 막상 서울에 살았던 나도 이곳에서 파는 라면을 한 번도 먹어본 적 없었다. 그리고 몇 달 전에 처음 남산타워를 제대로 올라가 보았다. 늘 지내는 사람에게는 별게 아니게 된다. 그래서 당연한 것에 대한 가치와 소중함을 친구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여자들에게 인기라는 이슬 톡톡 복숭아를 한 모금 마셔보았는데 음료수 같았다. 차라리 음료수를 먹는 게 나았다. 밖에서 먹는 신라면은 그 또한 쏠쏠한 맛이 있었고 매콤한 국물에 적당한 아쉬움이 남았을 때 멈추었다. 사실 집 앞에도 한강이 있지만 사람이 많이 모이는 한강공원에서 우르르 함께 즐기는 피크닉이 주는 분위기가 한강의 매력에 한몫 함을 느꼈다. 친구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별 일도 아는 일에 세상이 떠날 만큼 웃어대고 키득거렸다. 정말 초등학생스러 장난인데도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웃게 한다. 함께 공유하는 것들이 많은 친구라 어른이 되고 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것들에 고개 숙여가며 살다가 다시 학창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여의도가 떠나갈 듯이 웃고 장난치고 떠들고 걸었다. 익숙한 사람과 함께 곱씹는 추억거리가 많이 있다는 것은 나이가 들수록 귀한 기회임을 알게 한다.

이틀 잘 먹은 것들에 대한 회개 점심

원래 배드 파머스에 가서 그동안 먹은 것들에 대한 회개 식사를 하려고 했는데 둘 다 늦게 일어난 나머지 느지막하게 집에서 나왔다. 아침은 물론이고 점심식사 시간도 지난 터라 고속터미널 환승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는 게 귀찮아 햄버거도 먹고 싶다는 친구를 꼬드겨 johnny rocket으로 갔다. 그래도 샐러드먹으려라다 햄버거 반쪽씩만 먹자고 해서 들어갔는데 이틀 연속으로 과식해서 위장이 늘어난 탓인지 뭔가 이렇게 식사를 끝내기에도 아쉽고 디저트를 먹기에도 적당치 않았다. 결국 서울에서만 있는 음식점을 그리도 찾아다녔거늘 제일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이 당긴다며 죠스 떡볶이를 찾았다. 다 먹진 못했지만 또 눈에 한가득 보이게 시켜야 직성이 풀려 음식을 한가득 시키고 후회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배는 불러도 커피는 마셔야 한다며 결국 커피빈을 찾았다. 커피빈의 케이크는 뭘 시켜도 기대 이상이었다.


친구와 백화점과 주위 상점들을 돌아다니다 뉴욕 saks fifth avenue에서 본 전용 주소를 가진 구두 매장 층이 연상되는 곳이 리뉴얼된 것을 보고 감탄했다. http://blog.naver.com/909090k/70182775822

우리나라는 진짜 1차원적으로 잘 베끼는 게 아니라 기존의 것을 덧붙여 한 3차원쯤은 업그레이드시켜서 우리나라에 맞게 잘 뽑아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가 망하니, 이렇게 가면 대한민국도 필리핀처럼 된다는 우려가 많지만 이런 기술력만 봐서는 우리나라 성장동력은 전 세계 1위를 하진 못하겠지만 늘 지금처럼, 지금과 엇비슷하겐 또 어떻게든 굴러가고 살아갈 것이란 생각을 하게 한다. 신세계 강남 식료품 지하매장은 늘 분기별로 인기 아이템이 바뀌는 것 같다. 그리고 10~20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디저트의 줄의 끝에는 내가 있어왔다. 이번엔 안 궁금하다며 몇 번을 뿌리쳤지만 몇 시간 뒤에 우리 집을 찾을 동생이 에그타르트가 먹고 싶다 하여 과하지 않게 3개를 들고 친구와 작별인사를 했다. 그렇게 2박 3일을 꼬박 붙어있다가 집으로 혼자 돌아가는 길에 너무도 허한 마음이 뒤섞여 어쩔 줄 몰랐다. 혼자서도 늘 잘 있고 혼자 있는 게 너무나도 편한 나지만 그 순간만큼은 공허한 마음에 외로움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설레고 재밌는 순간의 연속이었던 만큼 여독의 피로를 그 이상으로 뒤집어쓰고 있다. 서울에 발 붙이고 살았던 시간 동안 내가 축적해놓은 맛집 데이터가 생각보다 편협했고 서울에 대해 안 가본 곳 없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느꼈는데 지금도 서울은 세상 어떤 대도시보다 더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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