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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이쑤 Sep 03. 2017

예상치 못한 일상의 선물, 렌트카 여행

가족과 함께 떠난 렌트카 여행 #파리 #취리히 #라인폭포 #피렌체

 혼자 좋은 곳을 보러다닐 수록 아쉬움이 몰려왔다. 내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여행하며 추억을 함께 곱씹 을 수 있는 안주거리가 절실했다. 국내 여행은 일요일만 되면 짐을 싸고 장거리를 다니는 우리가족이었다. 어렸을때 일본을 나갔다 온 것이 가족 넷이서 해외여행다운 해외여행을 간 것이 전부였고 이미 수십번 다녀온 부산과 서울 그리고 몇년에 한번씩 찾는 제주도까지 우리 가족에겐 무언가 색다른 것이 필요했다. 나이가 들면 더 큰 모험적인 여행도 할 수 없었던 이유가 가장 컸고 엄마와 함께 2년전 찾았던 스위스에서 아빠에게도 이 감동과 절경을 나누고 싶어 계획한 여행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또 흐지부지 되어서 영원히 가지 못할 것 같아 앞만 보고 몇개월을 준비했다.

 아침 비행기라 전날 지방에서 부모님과 가족이 모두 서울에 올라와서 함께 하룻밤을 보냈다. 여행을 하는 순간보다 여행짐을 싸며 설레는 그 순간이 더 즐겁다고들 하는데 이번 여행은 루트를 짜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많은 것들을 볼 수 있게 이리 저리 정보를 찾았던 몇개월의 주말이 나를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밤을 꼴딱 새고 새벽 네시부터 비와 함께 공항버스 리무진에 올랐다. 버스비를 내려는데 "아빠"라는 말을 기사 아저씨께서 들으셔서 가족이면 1명은 무료라고 하셨다. 여행의 초반부터 즐거운 신호가 마구 오는 듯 했다. 동남아는 자주 가시지만 유럽, 북미등 10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은 경험이 전무한 아빠는 몇개월전부터 걱정하셨고 파리로 가는 내내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답답해하셨다. 그 와중에 밤새 잠을 한숨도 자지 않았던 나는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바로 꿀잠을 잤다.  

 일주일이 넘게 파리에 있었고 이번에 파리는 세번째였다. 불어를 몰라 혹은 파리의 매력을 아직 몰라서 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파리하면 에펠탑만 보면 파리가 줄 수 있는 왠만한 즐거움은 주는 것이라 여긴다. 시간이 남아 몽마르뜨도 가려고 했는데 공항까지 가는데 50유로를 넷이서 줬는데 몽마르뜨까지 40유로라는 사기성넘치는 에펠탑 주변의 택시 아저씨들때문에 사이요궁으로 향했다. 도착하자마자 한국에서 유심칩을 사가 이용했는데 우버가 내 카드를 결제하는데 자꾸 실패해서 우버도 이용하지 못했다. 아빠는 실제로 생각했던 에펠탑의 규모보다 훨씬 큰 장관에 놀라하셨다. 파리에 왔으면 크레페를 먹어야한다며 더운 날씨에도 누텔라 가득 바른 크레페를 한입씩 나눠 먹었다.

사이요궁을 가는 길에 파리의 곳곳을 배로 관통하는 시티투어가 있어 그것을 타고 파리를 구경했다. 가는 길에 오르세 미술관이 있었는데 한번도 가지 못해 다음번에 파리를 찾을땐 꼭 찾으리라 다짐했다. 혼자 여행에선 미술관에서 지겹도록 시간을 할애할 수 있지만 누군가 함께 하는 여행에선 미술관을 찾는다고 해도 작품 그대로를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없다. 그리고 동선의 마지막인 노트르담의 성당에서 하차해서 눈에 보이는 아무 피자 가게에 들어갔다. 노천카페에서 엄마에게 선물한 1980년생 김지영을 읽으며 엄마는 파리의 정취를 한껏 즐기고 계셨다. 생각보다 빨리 나온 피자는 원래 피자를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역시 피자는 맛이 없는 것임을 알게 해주는 맛이었다. 역시 피자는 이태리지 말이다. 그리고 발길 닿는대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다 다시 파리에서 취리히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 청소가 아직 덜되어 비행기가 지연된다는 에어프랑스의 어의없는 보고에 지친 피로를 공항 의자에 가득 펼쳐 놓고 죽은 듯이 잠들었다. 그리고 취리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3개의 짐중에 한개가 나오지 않아 dnata에 보고를 하고 찝찝한 마음으로 뫼벤픽 호텔 막차를 타고 호텔 체크인을 했다. 분명 성인 4명을 체크인했는데 수건이고 슬리퍼등 간단한 것들이 다 구비되지 않아 전화를 했더니 직원들이 퇴근했다고 가지고 내려오란다. 그래서 힘들게 내려갔더니 타월이 모자라다고 10분 있다가 자신이 가져다준단다. 직원들의 대화엔 나이스함이라곤 찾아볼수 없었다. 지난번 인터라켄에서 묵었던 호텔에서는 하나같이 친절했는데 취리히나 제네바나 호텔의 서비스는 꽝에 가까웠다.

몇년 전 또래 친구들과 독일 프랑스 렌트카 여행을 꿈꾸며 프랑크 푸르트를 찾았다가 본인의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에 잔고가 200만원 이상 되는 대학생이 아무도 없어서 현지에서 몇일을 날리고 울며 겨자먹기로 추운 겨울 더 추운 동유럽 여행을 강제로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렌트카를 빌리기 전까지 모든 숙소를 취소 가능요금으로 다 걸어두고 렌트카를 빌리는 순간 차에 타서 바로 취소 불가 요금으로 바꿨다. 나이아가라 폭포보단 못했지만 라인 폭포만이 주는 우아한 아름다움이 있었다. 충분히 숙면을 취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이 밀려와 몇장의 사진을 찍고선 나는 주차장 주위에 담배냄새를 피해 한적한 벤치에 몸을 누였다. 여행 중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것 자체만으로 감사하고 색다른 충전이 되는 일이다. 한참 잠에서 깨어나오지 못해 리기산으로 가는 길에 나는 잠이 들었는데 취리히 시내를 지나는 동선이라 취리히에 내려 지난 번에 찾았던 취리히의 홀리카우버거 가게에 들르기로 했다. 주차를 하려는데 영어가 한문장도 있지 않아 자비없는 취리히의 주차 싸인을 뜨거운 햇볕 아래서 구글에 하나하나 쳐야하나 한참을 보고 있는데 한가로이 길을 지나가는 남자가 있어 재빨리 길을 건너 물었다. 코너옆으로 가면 경찰서가 있는데 거기서 주차티켓을 사면 된다고 하였다. 친절하게도 자신이 친구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나마 같이 가주겠다고 하여 길을 안내해주고선 한국에서 왔다하니 북한은 아니겠지란 말을 한다. 제일 많이 듣는 진부한 질문에도 길을 알려주는 마음씨에 감사해 폭풍 리액션으로 화답했다. 전쟁이 날 것 같냐 물어서 나는 그럴리 없다 단언했다. 하지만 요즘 돌아가는 태새를 보면 전쟁이 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긴 한다.

 경찰서에 직접 물어보니 기계에 돈을 넣고 영수증을 뽑아 차에 올려두면 된다고 했다. 유로가 들어가 미리 뽑아 챙겨둔 유로와 지난번에 쓰다 남은 유로 동전으로 1시간만 주차를 하고 취리히 시내를 구경했다. 10대들이 주를 이루었던 홀리카우버거였지만 버거의 퀄리티는 남녀노소를 다 사로잡을만큼 늘 만족스럽다.

리기산으로 오르기위해 베기스에서 차를 대고 기차를 탔다. 인원이 넷이면 어딜가나 가격이 곱절은 든다. 산들의 여왕이라는 닉네임답게 리기산은 두번째 찾았을때에도 다른 느낌을 뿜고 있었다. 5월초 막 눈이 녹지 않았을때의 뽀얀 산들이 신선놀음을 하는 듯 했다면 한 여름에 찾은 리기산은 푸르디 푸른 산들이 끝없이 펼쳐져 보다 따뜻하게 반겨주는 것 같았다.

리기산에서 3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이날 숙소는 지겨운 인터라켄 대신 지난번에 들르지 못한 그린델발트였다. 그것도 산 중턱의 그린델발트 호텔이라 가는 길이 굉장히 험했지만 특별한 경험을 하였다. 하지만 너무 산 중턱에 있어서 잃어 버린 짐을 이 호텔로 오라고 했었는데 하루만 묵어 짐이 제때 도착하지 못해 아직 파리에 묶여있다고 했다. 통화는 잘 되지 않았고 하루면 온다는 짐은 결국 스위스가 아닌 이태리 피렌체에서 마지막날 밤 늦은 저녁 겨우 도착했다. 평화로운 숙소와 정말 갓 구운 정성 가득한 조식까지 절경을 눈에 담고 놀이터 마니아를 자청하는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놀이터에서 미끄럼틀도 탔다.

그린델발트에서 피렌체로 하루안에 넘어가는 빡쎈 동선중에서 구글맵이 알려주는 곳대로 갔더니 산 꼭대기를 몇개나 넘었다. 그것도 해발 2000m의 산들의 장관이 눈앞에 계속 펼쳐졌다. 그 꼬불거리는 길 위의 차안에서 나는 도착할 기미를 안보이는 에어프랑스의 lugage 센터에 전화를 하고 있었다. 여행에 상당한 차질이 있어 (내 아이라이너와 모든 엄마의 옷들과 가족들의 신발이 그 잃어버린 짐에 들어가 있었다.) 불안한 마음에 상담원 3명과 통화를 했는데 셋다 오케이만 외치고 다른 소리를 한다. 오전 7시만 되면 일어나 서비스센터에 전화를 하고 짐이 어디쯤 왔는지 틈만 나면 확인을 하였다. 가는 길에 폭스타운에 들렀는데 바로 옆 맥도날드에서 배를 채우고 이태리로 넘어오자 쓰리심이 터지지 않아 걸으면서 유심을 갈아끼우다 하수구에 빠져서 맥도날드 매니저가 직접 도와줬다. 하지만 그 이후로 유심은 모나코에서 잠시 터지고 쭉 터지지 않았다. 한국에서 대행하는 업체는 책임이 없다는 말만 했다. 폭스타운은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이 무색하게 살게 정말 없었다. 더몰을 안가려고 했었는데 물건들이 너무 오래되었고 싼 느낌도 들지 않아 폭스타운을 들린 후에 더몰은 무조건 가야겠다 결심했다.

역시 늦은 밤이 되어 도착한 피렌체에선 짐이 오지 않았고 또 다른 내일을 기약해야 했다. 아침 일찍 더 몰 문이 열자마자 구찌에 줄을 서 뜨거운 태양볕 아래에서 명품 쇼핑을 빠르게 마쳤다. 정말 한국에 비해서 싸니까 안사면 바보가 되는 가격이었다. 왜 이태리 사람들이 일상에서 명품을 그리 많이 하고 다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냥 조금만 제대로 준 옷이나 가방 가격이 제일 비싸고 고급진 명품 브랜드 가격이니 자연스레 수긍이 되었다. 더몰은 중국인들보다 한국인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일요일라 피렌체에 차를 들고 가는 게 가능했다. 그래서 길가에 무료로 차를 세워두고 분위기 좋은 노천 식당에서 이태리스러운 파스타와 샐러드로 나무 그늘아래서 분위기를 가득 즐겼다.

동생과 아빠를 축구장에 보내고 엄마와 나는 피렌체 시내 구경에 앞서 파스타로 느끼해진 속을 달래려 맛집처럼 보이는 아이스크림집을 찾았고 유심칩을 다시 구매하기 위해 큰 길가로 걸어갔다. 굉장히 붐비는 관광지가 피렌체임을 깨닫게 해주듯 전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피렌체의 매력에 빠져 있었다. 렌트카 여행을 하다보면 남들이 많이 아는 잘 알려진 명소를 찾을때 오히려 더 어색해진다. 워낙 숨어있는 절경에 감탄을 하면서 굳이 여행지를 찍어 찾지 않아도 가는 길의 여정 하나하나가 다 명소인데 그렇게 아는 사람들만, 현지인 속에서 여행을 하다가 세계인들을 한데 만나는 명소에서 마치 다른 여행을 하고 있는 듯 그 공간에 있는게 이상하게까지 느껴질 때가 있었다. 정말 운전하는 것만 피곤하지 않다면 렌트카 여행은 매 순간이 선물로 다가오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그렇게 지도 하나 없이 걷다보니 피렌체 두오모 성당이 나왔다. 준세이가 그렇게 약속을 하던 두오모에서 나는 생각에 잠겼다. 나의 준세이를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나, 그런 사랑이 나에게 가능할까? 절절하게 가슴아픈 사랑은 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태리에서 eataly를 찾는 것은 마치 익숙한 스타벅스를 해외에서 찾는 느낌과 닮아있다. 피렌체의 eataly에서 디카페인 커피를 시키고 앉아 아무 생각없이 와이파이를 켰는데 3시라고 생각했던 축구경기가 9시라 동생이 폭풍 메세지가 와있었다. 그리고 용케도 eataly로 잘 찾아와주었다.

여름의 피렌체는 굉장히 더웠다. 사람 기운이 쏙 빠지게 하는 더위였다. 피렌체 가죽 시장에선 정말 기대도 없었지만 그 기대에 부응하는 별로인 제품들이 있었고 심지어 그 날 더몰을 갔다와서 더 그렇게 보였다. 메이드인 이태리라고 하는데 왜 이리도 메이드인 차이나 같은지, 하지만 피렌체는 골목마다 정교하게 디피된 오랜 역사를 가진 샵들이 많았다. 그리고 피렌체의 유명 젤라또 가게들 중 대부분이 한국에도 있어서 반갑기도 했고 한국이 얼마나 살기가 좋은 나라인가를 실감했다.

호텔에서 잠시 쉬며 lugage가 아직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절망속에 일정은 계속되어야한다고 생각하여 샤워를 하고 다시 스테이크집으로 향했다. 태양이 절묘하게 피렌체를 비추고 있었다. 세상에 너무나 아름다워보이는 시간대였는데 그곳이 피렌체라 로맨틱해보이기까지 했다.

처음엔 한국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스테이크집에 미리 전화를 걸어 웨이팅 시간을 물어봤더니 한참을 웨이팅해야한다고 해서 폭풍 리서치로 현지인들이 자주 찾는 스테이크집 <il latini>에 예약을 걸어두고 찾았다. 스테이크를 kg로 먹어본적이 없어 2kg를 시켰는데 너무 과하게 많이 시켜서 스테이크를 먹다가 물려서 다 못먹고 싸와서 다음날 점심에 동생이 뜯어서 먹었다. 스테이크 가게 아저씨와 아빠는 짧은 영어로 친구가 되었고 그 아저씨의 호의와 서비스에 나는 팁을 두둑히 주었다.


 힐튼 피렌체에서 머물렀는데 아빠랑 동생은 다시 축구경기를 보러 갔고 나는 엄마와 피렌체 시내를 둘러 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너무 어두워져 가게 문을 연 곳이 없었다. 그냥 멍하니 버스 정류장에서 사람 구경을 하며 한시간이 넘게 앉아있다 공항 버스를 탔다. 축구를 보고 온 동생과 아빠보다 호텔엔 십분 먼저 도착했는데 아주 혹시나 기대 없이 이 밤에 도착했을리 만무할 lugage가 도착했냐고 물었는데 10분전에 도착했다고 했다. 눈물날뻔 했다. 그리고 이렇게 허무하게 늦게 도착한 짐때문에 어의가 없었다. 한 며칠 짐때문에 에어프랑스 서비스센터 통화연결음이 귓속에 맴돌만큼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는데 말이다. 더몰에서 산 지갑은 세일가격에 하나만 있는 리미티드 아이템이라 지체없이 바로 구매했고 키코에서도 평소에 사고 싶었던 립스틱 하나와 브러쉬를 샀다. 정말 70%까지 세일을 하니 립 팔레트가 3천원씩 했다. 하지만 평소에 립스틱도 아니고 팔레트는 나도 귀찮아서 쓰지 않는데 선물을 주면 더 귀찮을까 살까 말까 고민만 하다 사지 않았다.


이태리는 묘하다. 정이 들 진 않는데 이상한 매력은 있다. 그리 친절하고 섬세한 매력도 없고 깨끗하지도 않는데 오래 자주 찾게 된다. 한국인과 닮아 있다고 느낄 때 그래서 더 지긋지긋하지만 나도 모르게 찾게 된다. 여행은 즐겁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더 의미있다. 그리고 렌트카 여행이라 매 순간이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아름다움의 연속이었다. 아빠는 운전을 동생은 네비게이션을 엄마는 짐과 밥을 나는 가이드를, 모든 가족의 일원이 여행에서 자기 역할을 했다. 여행이 일상의 축소판이라면 우리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될 제 역할을 하는 소중한 존재였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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