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우러난 진정성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던 데카르트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존재 의미를 부여한다고 생각했다. 생각하는 사람을 만든 오귀스트 로뎅은 "진정 치열하고, 진실해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에게 진실한 것은 결국 모든 사람들에게 진실한 것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로뎅은 저 말을 통해서 예술가에게 있어 진정성에 대해 말하였었다. 그렇다면 그 진정성이란 무엇일까? 진정성이란 본인이 직접 경험한 것에 대해 통찰하고 그 통찰을 통해 우러나온 무엇을 말한다. 그렇다면 예술과 상업의 중간지점에 있는 디자이너에게 있어 진정성이란 무엇일까? 오늘 이야기할 Palatino는 오랜 기간 진정성의 힘으로 폰트를 만들어왔던 헤르만 차프(Hermann Zapf: 1918~2015)가 만든 필생의 역작이다.
헤르만 차프는 격동기였던 1918년에 독일 뉘른베르크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1918년과 1919년 사이 유럽에는 제1차 세계대전 때의 사망자 수 보다 더 높은 사망자가 나왔던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죽은 사람이 1,500만 명 정도였는데 비해, 이 당시 유행하였던 스페인 독감으로 5,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헤르만 차프의 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형제 중 2명이 이 시기에 독감으로 사망했다. 그다지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던 헤르만 차프는 8살이 되었던 1925년에 매일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는 허버트 후버 학교에 보내진다.
우연일지 천운일지 그 학교에서 그는 나중에 자신에게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주었던 과학을 만나며 관심을 가지게 된다. 당시 그가 가장 좋아했던 책은 연간 과학저널인 ‘Das Neue Universum(새로운 우주)’이라는 책이었는데 이 책은 그가 크리에이터로써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소양을 갖추게 되는데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의 과학에 대한 관심은 이후에 형, 동생과 비밀 메시지를 주고받는 암호문과 알파벳을 발명하는 데도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서체 디자이너로써 소양을 자신도 모르게 습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과학과 기술에 관심이 많아 기술이나 과학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던 그였지만 여러 이유로 그가 원하는 기술대학에 진학할 수 없었다. 1933년 그의 아버지는 실직하게 되었고, 가족의 재정이 다시 어려워지자 학교를 그만두게 된 것이다. 학교를 그만두고 그가 선택한 길은 생업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처음 일을 시작한 곳은 'Karl Ulrich & Co'라는 지역의 작은 인쇄소였다. 꿈을 포기하고 인쇄소의 기술자로 일하던 그는 머지않아 유명한 캘리그라퍼인 루돌프 코흐(Rudolf Koch: 1876~1934)의 전시를 가게 된다. 이 전시 관람을 계기로 깊은 인상을 받았던 헤르만 차프는 드디어 캘리그래피와 레터링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다. 캘리그래피에 관련된 책을 사고, 사설 강의 코스를 들으며 스스로의 실력을 열심히 키워나갔던 그는 어느 날부터 캘리그래피의 거장이라 칭송받기 시작한다.
헤르만 차프는 자신의 캘리그래피 실력을 더 높이기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건너가 프린팅과 핸드 프레스, 펀치 커팅과 같이 더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그 분야의 거장들과 만나게 되었고 자신이 우러렀던 루돌프 코흐의 아들인 파울 코흐와 같이 일하며 본격적인 서체 제작과 인쇄 관련 기술을 배우게 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과정은 결국 헤르만 차프를 독일 스템플(Stemple)사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드디어 첫 번째 서체 작업에 착수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가 선보인 첫 서체는 독일의 인쇄 활자체인 'Gilgengart'였다. 그러나, 1941년 이후 독일 특유의 블랙레터(Blackletter)가 인기를 잃어감에 따라, 그는 다시 한 번 난관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 난관은 그에게 다양한 서체에 대한 영감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다지 인기가 없었던 'Gilgengart'의 실패는 그에게 더 많은 열정을 불어넣게 되었고 더 다양한 서체들을 만들게 하였다. 또한 자신의 생각을 담은 책도 출판하고 종종 캘리그래피에 대해 작은 강연도 하는 등 안정된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헤르만 차프는 1941년 다시 한 번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된다. 2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군대에 가야 했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군인으로서 뚜렷한 재능을 발휘하지 못했던 그는 결국 후방에서 사무관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러면서 지도 만드는 훈련을 받게 되었는데 이후 프랑스로 옮겨가 스페인 지도를 만들고 편지의 글씨를 쓰기도 하며 그의 캘리그래피에 대한 섬세함을 더욱 키우고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캘리그래피를 가르치던 헤르만 차프는 1947년 스템플사의 다시 근무를 하며 그의 책 'Feder und Stichel(Pen and Graver: 펜과 조각가)'를 집필하게 된다. 그 후 오펜바흐에서 그래픽 디자인 학생들을 가르치며, 북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도 쌓게 된다. 이 시기 헤르만 차프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서체로 꼽히는 서체들을 디자인했는데 그 대표적인 서체가 Palatino(1948)와 Optima(1952)다. 그중 팔라티노는 16세기의 이탈리아 캘리그라퍼인 지오바니 팔라티노(Giovanni battista Palatino)의 이름에서 따왔다. 독특하게도 헤르만 차프는 Palatino를 만들며 본문용 서체 Aldus와 Michelangelo, Sistina라는 폰트를 같이 만들었는데 각각 독립된 디테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함께 사용되었을 때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20세기 세리프의 대표적인 서체로 손꼽히는 Palatino는 가독성이 굉장히 뛰어나다. 본문용 서체가 갖추어야 할 적절한 굵기와 아름다운 비율로 만들어진 소문자의 높이, 디테일하게 다듬어진 서체의 형태로 인해 다른 서체에 비해 본문에서 더 잘 읽히는 것이다. 또한 Palationo는 가독성을 뛰어넘는 특별함이 존재한다. 오랜 기간 캘리그라퍼로서 실력을 쌓은 헤르만 자프의 실력이 십분발휘되어 펜글씨가 가지는 자연스러운 획의 방향과 굵기, 끝맺음의 높은 완성도가 알파벳 글자 하나하나에 살아있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돌에 새겨진 글자와 같이 단단한 균형미와 위엄이 서려있다.
또한 본문용 서체로만 사용하기에 아까울 정도로 글자를 크게 키워 제목용 서체로 적용하여도 그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또한 Palatino는 만들어진 이후에 가장 많은 표절을 당했던 서체 중 하나다. 절제된 아름다움과 함께 모던한 형태 디테일 등 시대를 뛰어넘는 서체의 완성도와 밸런스가 기본에 충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어울리게 그의 서체 디자인 역시 근대의 모든 역사를 담고 있다. 거장이라 불렸던 캘리그래피로 시작해 핫 메탈(Hot metal composition)이라 불리는 금속 활판인쇄부터 포토 타입 세팅(Phototype setting)이라 불리는 조판 인쇄 그리고 디지털 폰트에 이르기까지모든 기술의 장벽을 넘나들며 작업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1960년대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헤르만 차프는 조금 더 진보적인 서체 디자인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렇지만, 서체 디자인의 역사와 전통이 깊고 보수적인 취향을 가진 독일에서는 그의 디자인이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미국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1977년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에서 타이포그래피 컴퓨터 프로그램 수업의 교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디자인 역사에 엄청난 공헌을 하게 된다. 기술과 과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던 헤르만 차프는 IBM과 제록스, 로체스터 등의 회사에서 컴퓨터 전문가들과 협업하며 기존의 완성도 높은 수작업 폰트들과 인쇄용 폰트들을 디지털폰트로 만들어 컴퓨터에 적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들에 대해 조언하며 디지털 프린팅에 대한 발전을 앞당긴 것이다. 현재 디자이너들이 책을 만들 때 사용하는 어도비(Adobe)사의 인디자인(Indesign)이라는 인쇄출판용 프로그램 역시 헤르만 차프가 직접 만들고 특허로 등록하였던 ‘HZ-program’이라는 조판시스템을 적용한 것이다. 기술과 예술 두 가지 측면에 있어 모자람이 없는 쾌거였던 것이다.
Palatino, Optima와 더불어 헤르만 차프의 가장 유명한 서체는 'Zapfino'라는 폰트이다. 데이빗 씨겔(David Siegel), 애플(Apple), 라이노타입(Linotype)이 함께 작업하였는데 그의 캘리그래피 미학적인 관점을 잘 살린 손글씨 서체로 중간에 함께 작업했던 데이빗 씨겔이 손을 놓아버리는 바람에 1998년 라이노 타입을 통해 발매가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서체이다.
4가지 종류의 알파벳과 여러 가지 문양(ornament), 꽃 혹은 식물 문양(flourishes)과 딩벳(특수기호)을 포함한 굉장히 자유롭고 아름다운 서체이다. 이후에 조금 더 다듬어진 Zafino는 애플사의 오픈 타입과 만나 자동으로 연결되는 알파벳을 형성하고 더 세밀한 서체 적용이 가능해져서 헤르만 차프 본래의 캘리그래피 성격을 잘 나타내도록 발전하였다.
헤르만 차프는 이 글을 쓰기 위해 한창 자료조사를 하고 있던 2015년 6월 4일 9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에도 메르스 독감으로 인해 그가 태어났던 1919년처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다. 누구보다 치열하고 누구보다 진실했으며 누구보다 부지런했던 그의 삶은 거대한 업적으로 남아 아직도 우리가 보고 있는 많은 책들과 광고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다가오는 6월 4일 그의 사망 1주기를 맞이하며 진정으로 진정성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줬던 그의 작업과 디자이너의 업적에 감사와 경의를 표하며 글을 마친다.
위 내용은 '아레나 옴므' 매거진. 2015년 6월에 연재된 '글자를 위한 글'입니다.
글 : 오영식(토탈임팩트), 김광혁(VMK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