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트계의 목화씨.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은 ‘옛 것에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뜻도 있지만 ‘옛 것을 익히고 나서야 비로소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폰트의 역사를 한마디로 압축하자면 끝없이 온고지신이 이루어지는 생업의 현장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예술로써 디자인의 한 분야를 차지하는 글꼴(폰트)이지만 사실 대다수의 폰트는 조금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과정을 통해 발전해 왔고 글꼴이 가진 형태로써의 아름다움은 먼저 고유의 인쇄 기능을 생각하며 만들어진 후에 다듬는 일이 많았다.
폰트를 다루어 디자인을 하는 타이포그래피의 역사도 끝없이 옛 것을 새롭게 다듬는 작업을 통해 발전해 왔다. 타이포그래피는 얀 치홀트(Jan Tschichold, 1902~1974)가 주창한 ‘신(新) 타이포그래피’ 이후에나 구도와 배치 그리고 배열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였으며 ‘신(新) 타이포그래피’역시 그 이론의 기초에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글자에 담긴 정보를 전달할 수 있을까?’가 내포되어 있었다.
1440년 경. 독일의 금(金) 세공업자였던 구텐베르크(요하네스 겐스플라이슈 추르 라덴 춤 구텐베르크: Johannes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 1398 ~ 1468)의 활판 인쇄술은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인쇄물의 기초가 되었을 만큼 굉장히 합리적이며 대량생산에 알맞은 방식이었다. 인쇄는 유럽 문학의 발전 속도와 더불어 더 싼 가격에 더 많은 이들에게 책과 신문, 정보를 담은 포스터를 만들어 공급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인쇄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발전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었다. 이유는 당시 인쇄기계와 활판의 가격이 무척 비쌌고 그것을 다루는 기술자들 역시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원고에 따라서 골라 뽑힌 활자가 원고의 지시대로 순서, 행수, 자간, 행간, 위치 따위가 맞추어져 짜여지는 조판의 방식이 자동화가 되지 않았던 구텐베르크의 인쇄기는 모든 조판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져 대량생산이라고는 하지만 굉장히 인내를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앞서 수백 년 동안 잡지, 신문, 서적 등의 각종 출판물 보급은 유럽의 문맹자들을 급속히 줄어들게 만들었고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은 유통의 속도를 높여 보급률을 폭발적으로 늘리게 되었다. 인쇄방식 역시 고속 인쇄기가 등장하게 되었고, 제지(종이)의 발전은 출판물의 고급화를 가져왔다. 하지만 오직 조판 기술만이 약 400년간 구텐베르크의 방식을 따르며 더디게 발전해 왔다.
그러한 조판기술에 있어 획기적인 발전은 1886년 오트마 메르겐탈러(Ottmar Mergenthaler)가 고안한 라이노타입(Linotype) 자동주조 식자기를 통해 비로소 이루어졌다. 이 기계는 단순한 키 버튼 조작 하나로 미리 정해진 길이의 글줄 전체가 조판되었기 때문에 기존에 일일이 활자를 끼워 넣어야 했던 조판 방식보다 훨씬 빠른 조판을 가능케 했다.
또한 1887년 톨베르트 란스턴(Tolbert Lanston)이 발명한 모노타입(Monotype) 방식은 글줄 전체를 바꾸는 것이 아닌 한 글자만 빠르게 수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존의 반자동 형식의 조판을 완전 자동식으로 발전시켜 인쇄와 출판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인쇄의 발전은 1939년 2차 세계대전 당시 펭귄북스의 폭발적인 서적 보급으로 이어졌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부터 펭귄북스의 주요 서적들은 전쟁과 관련된 정치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고 전쟁이 발발하자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가 줄어들었다. 별 다른 오락거리를 찾을 수 없던 대중들은 값싸게 읽을 수 있는 펭귄북스의 책을 찾게 되었다. 기존의 인쇄는 고급지를 사용하여 양장 재본하는 방식을 선호하였지만 펭귄북스는 싼 가격(6펜스)에보급되는 서적의 기초가 되었던 ‘페이퍼백(Paperback: 종이표지에다 본문도 중질지 이하의 용지를 쓰는 보급판. 한국에서는 문고본이라 불림)’을 선보이며 대중의 기호를 맞추게 되었다. 결국 양적(量的) 팽창은 콘텐츠의 질적(質的) 고급화로 이어졌다.
2차 세계 대전 말쯤 펭귄북스는 문고본을 조금 더 고급스럽게 발전시킨 ‘펭귄 클래식’ 시리즈를 만들게 되었는데 당시 타이포그래피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내고 있었던 얀 치홀트를 아트디렉터로 영입하여 펭귄북스의 많은 책들이 보기 좋게 리뉴얼하였다.
초기의 펭귄북스의 서적들은 균일한 포맷에 산세리프 폰트를 주로 사용하였지만 펭귄클래식 시리즈는 조금 더 다양한 서체를 사용하였다. 또한 얀 치홀트는 이론가로서 초기에 저작하였던 「근원적 타이포그래피」와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발표하였던 디자인 이론과 말년에 고전주의자로서 농익은 디자인 통찰력을 펭귄북스에 적용하였다. 그는 “수동적 가죽 장정이 아닌 능동적 도서(Active Literature)”야말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특징이라고 단언하며 현대적인 서적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펭귄북스에서 얀 치홀트의 업적은 ‘펭귄사를 위한 식자 규정(Penguin Composition Rules)’이라는 타이포그래피 시스템을 구축하며 더욱 빛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핵심이 녹아있었다.
얀 치홀트가 주창한 타이포그래피의 파격적인 이론은 ‘그려진 글자가 아닌 활자’, ‘손 조판이 아닌 기계 조판’, ‘드로잉이 아닌 사진’, ‘목판이 아닌 사진제판’, ‘수제 종이가 아닌 기계 생산 종이’, ‘수동 인쇄기가 아닌 동력 인쇄기’, ‘개인화가 아닌 표준화’, ‘비싼 한정판이 아닌 값싼 대중판’, ‘수동적 가죽 장정이 아닌 능동적 도서’로 압축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는지 몰라도 현재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들이다.
얀 치홀트가 펭귄북스의 고문으로 남아있으며 이루어낸 또 다른 업적이 바로 올드 스타일 세리프 폰트의 정수를 녹여낸 ‘사봉(Sabon)’ 글꼴의 디자인일 것이다. 사봉은 1960년 독일의 인쇄업자 위원회의 새로운 본문용 서체 개발에 대한 의뢰로 출발했다. 이 프로젝트는 얀 치홀트가 평생에 걸친 연구와 실무 경험을 통해 쌓인 글꼴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안목을 풀어내는 작업이었다. 아마도 이미 환갑을 넘긴 얀 치홀트에게는 자신의 일생을 응축하여 새로운 생명으로 탄생시키는 것과 같은 의미를 지녔을 것이다. 새로운 서체는 당시 사용되던 세 가지 금속 활자 조판 기술, 즉 수작업 조판과 라이노타입, 모노타입의 기계 조판에 사용될 때에 그 모양이 서로 다르지 않게 인쇄되고, 가독성을 높여 모든 인쇄 목적에 사용할 수 있으며, 당시 가장 대중에게 사랑받았으며 가장 보편적인 본문용 서체였던 끌로드 가라몽(Claude Garamond 1480~1561)의 ‘모노타입 가라몬드(Monotype Garamond)’보다 5% 정도 폭을 좁혀 경제적인 서체여야 했다.
1967년 라이노타입과 모노타입 및 스템펠타입 파운드리(Stempel type foundries)를 통해 공동으로 출시된 사봉 폰트는 기존의 끌로드 가라몽이 만든 가라몬드 서체뿐만 아니라 가라몽의 제자였던 로베르트 그랑존(Robert Granjon1513~1590)에 의해 다듬어진 가라몬드 이탤릭(기울어진) 서체까지 참고하였으며 볼드(두꺼운) 서체까지 같이 만들어져 독일 인쇄업자 위원회의 의뢰를 초월하는 완성도를 가졌다. 가라몬드폰트의 우아함을 유지하면서 소문자의 크기와 글자의 조화로운 굵기는 더욱 가독성을 높여 굉장히 우수한 본문용 서체였다. 사봉은 “가라몬드 서체의 환골탈태(換骨奪胎)”라 할 만큼 놀라운 작업 결과물이었다. 서체의 독특함과 효율성이 아닌 알파벳 자소들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과 조화로움을 위주로 작업한 ‘사봉’은 당시 유행하였던 스위스 스타일의 규격화된 산세리프 서체들 사이에서 더욱 아름답게 보였다.
사봉은 뜻밖에 독일이 아닌 미국에서 더 많이 보급되었는데 그 이유는 미국의 그래픽 디자이너였던 ‘브래드버리 톰슨(Bradbury Thompson 1911~1995)’이 디자인한 워시번 대학의 성경 때문이었다. 성경은 대량으로 인쇄되어 오랫동안 사용되어 지기 때문에 대중에게 익숙함을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워시번 대학의 성경을 시작으로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University)의 공식 로고와 패션지 보그(VOGUE), 남성지인 에스콰이어(Esquire)의 헤드라인 서체로 사용되며 대중들에게 더욱 사랑받게 되었다.
현재 사봉 폰트는 서체 디자이너인 장 프랑수아 포르셰(Jean François Porchez 1964~)에 의해 더욱 다듬어져 ‘Sabon Next’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패밀리 폰트가 나와있으며 어도비(Adobe)사에 의해 다양한 버전으로 배포되고 있다. 또한 2013년에는 온라인과 E-book에 더욱 알맞게 스티브 맷슨에 의해 다듬어져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가라몬드에 기초한 서체가 왜 가라몬드가 아닌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되었을까? 사봉은 한 때 클로드 가랑몽의 제자였으며 16세기에 가라몬드활자의 자모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들여왔다고 전해지는 자크 사봉 (Jaques Sabon 1535~1580 or 1590)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이다. 독일인이었던 얀 치홀트가 사봉을 만들 때 바탕에 둔 가라몬드의 견본이 바로 자크 사봉이 프랑크푸르트에서 운영하던 활자 주조소가 보유하고 있던, 1592년 활자 견본이었다고 한다. 문익점이 몰래 한국에 들여왔던 목화씨가 당시 한국 전통의상의 대중적인 발전을 만들어냈듯 자크 사봉의 가라몬드는 결국 얀 치홀트의 사봉이라는 서체로 거듭 태어나며 찬란한 발전을 만들어 낸 것이다.
폰트를 사용하는 타이포그래피에 있어 온고지신이란 오래된 것을 다듬어 고리타분한 것을 재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가치 있는 것을 발굴하고 아름답게 다듬어 걸작(마스터피스:Masterpiece)을 만들어 내는 것을 말한다. 여러 분야에 장인이 만들어낸 걸작이 존재한다. 만약 서체에 있어서 장인의 숨결이 살아있는 걸작을 만나고 싶다면 얀 치홀트가 만든 사봉을 추천한다.
위 내용은 '아레나 옴므' 매거진. 2015년 3월에 연재된 '글자를 위한 글'입니다.
글 : 오영식(토탈임팩트), 김광혁(VMK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