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불편한 편의점
작가: 김호연
장르: 장편소설
이 책은 2023년 연말 (23.12.31)에 완독 했습니다. 2-3년 간 성장형 인간으로 둔갑하면서 자기 계발 종류의 책만 읽다가 정말 오랜만에 소설을 읽어보았습니다. 어떤 소설을 읽어야 할지 감이 없어서 국내소설 베스트셀러에서 평점이 가장 좋은 소설 세 권을 골라서 차례로 읽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총 267쪽으로 장편소설이지만 읽기 버겁지 않은 편입니다. 총 8편의 이야기로, 매 편에서는 각자 다른 '주인공'의 스토리가 펼쳐집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펼쳐지지만 서로 얽매이는 연결고리들을 작가 김호연 님께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잘 심어놓으셨고, 또 잘 풀어주셨습니다.
재치 있게 심어두신 '의문점'들로 하여 이 책을 이틀 만에 다 읽게 되었습니다. 추리소설이 아니지만,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것 마냥 흥미진진하였고, 잔잔한 일상적인 에피소드 뒤에는 항상 따듯하고 꾀나 의외의 반전이 숨겨져 있어서 그 재미 또한 쏠쏠했습니다.
'불편한 편의점'은 김호연 작가님의 다섯 번째 소설로, 청파동 골목에 있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이루어진 이야기들입니다. 서울역 노숙인 '독고'가 메인 인물로 등장하며, 노숙인인데 노숙인 아닌듯한 미스터리 한 독고의 진짜 신분을 파헤치는 과정이 소설의 가장 큰 '주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각 편의 이야기에서는 제각각 나름 쉽지 않은 인생을 살고 있는 '주인공'들이 각자의 시선으로 독고를 관찰하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해, 반전, 이해들로 하여 독자인 저 또한 함께 공감하고 함께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책 제목은 '불편한 편의점', 지리적으로도 불편하고, 상품종류도 적고, 서비스가 훌륭한 것도 아닌 뭔가 불편함이 많은 편의점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결론 뭔지 모르게 자꾸 가고 싶은 편의점이 되어버렸답니다.
제가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각 편에서 가장 인상 깊은 원문과 그에 대한 소감을 아래 정리해 보겠습니다. (초록색은 저의 개인적인 기록입니다. 살짝의 스포가 될 수도 있으니 참고만 하십시오)
추리소설이 아니지만 단숨에 다 읽고 싶은 소설, 불편하지만 자꾸 가고 싶은 편의점, 새해에 따듯하고 위안이 되는 소설을 찾았다면 추천하는 책 -- <불편한 편의점>을 기록해 봅니다.
> 산해진미 도시락
. 자신은 연금으로 살고 이 매장으로 편의점 식구들 생계가 해결된다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 편의점의 사장 염여사님은 편의점 매출이 녹록지 않음에도, 편의점이 문을 닫으면 일하는 식구들이 힘들어진다는 생각에 끝까지 '버티는' 모습이 사장의 큰 그릇을 보여줘서 감동받았다. '입'으로 직원을 위함이 아닌 '진심'으로 위하는 그 모습과 임하는 태도에 '좋은 결말'을 얻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
. 생각해 보니 아무런 사회와의 끈도 없다고 느끼던 자발적 아싸인 자신이 무언가 연결점을 찾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독고 씨에게 도움을 받은 셈이었다.
▶ 독고에게 편의점 알바교육을 책임감 있게 제대로 가르친 덕분에 독고의 빠른 적응이 있었고, 독고는 잘 가르치는 시현(알바)에게 유뷰브 영상 올릴 것을 제안한다. 그것을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끝내는 용기 내어 시도했고 생각보다 좋은 반응을 얻었고 스카우트까지 받았다. 이런 소소한 상조상봉으로 이루어진 서로의 성장이 저는 너무 보기 좋습니다.
> 삼각김밥의 용도
. "아들한테... 그동안 못 들어줬다고, 이제 들어줄 테니 말... 해 달라고... 편지 써요. 그리고... 거기에 삼각김밥... 올려놔요."
▶ 전형적인 '아줌마' 캐릭터로 각인된 선숙 씨는 독고를 티 나게 싫어했음에도, 독고는 그런 선숙에게 위로와 길을 건네줬다. 매일 게임밖에 모르는 아들과의 관계가 바닥끝까지 와버린 선숙에게 가장 합당한 방법을 제시해 주었고 그 방법으로 인해 선숙은 아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했다. 평생 '내 뜻대로' 살던 아주머니가 싫다 못해 경멸했던 독고의 조언을 끝내 받아들여 실행해 나가는 과정이 '현실적인 모성애'의 반영이 아닐까 생각했다.
> 원 플러스 원
. "엄마가 아빠 힘들게 돈 버니까 돈 아껴 써야 한다고, 편의점에 가면 원 플러스 원만 사라고 그래다는 거예요..."
▶ 직장에서든 가정에서든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경만, 어느 날 독고는 그에게 '로아커'라는 초콜릿을 집에 사가라고 제안한다. 이유는 경만의 쌍둥이 딸이 이 초콜릿을 엄청 좋아하는데 그동안 원 플러스 원 행사가 끝났다고 이 초콜릿을 더 이상 못 사 먹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원 플러스 원만 사 먹으라 했다고...ㅜㅜ
> 불편한 편의점
. 행복은 뭔가 얻으려고 가는 길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길 자체가 행복이라고. 그리고 네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힘든 싸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친절해야 한다고.
▶ 절필을 준비하고 있는 인경은 귀인의 도움을 받아 편의점 반대편에 있는 공짜 작업실을 얻게 되었고 거기서 3개월 시간을 갖게 된다. 몇 년간 좋은 작품을 완성하지 못한 그는 여기서도 시간이 지나도 영감이 없다가, 독고와 대화하면서 '편의점'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경은 끝내 생각의 속도를 손가락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글을 잘 쓸 수 있게 되었다.
> 네 캔에 만 원
. 민식은 휴대폰을 꺼내 아까 엄마와 찍은 사진을 바탕화면에 띄워놓았다.
▶ 편의점 사장님 염여사의 아들인 민식은 엄마가 운영하고 있는 편의점에는 자신의 지분이 있다고 믿었고, 편의점을 팔아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사업에 투자할 것을 항상 엄마에게 강요했다. 그로 인해 둘의 관계는 계속 좋지 않았다. 민식은 새로운 사업을 위해 편의점에 들렀다가 독고를 상대하게 되었고 결론적으로 엄마와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엄마와 다시 잘 지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란 참, 어렵다.
> 폐기 상품이지만 아직 괜찮아
. 가족들에게 무심코 던졌던 폭력적인 말들이 고스란히 자신의 뒤통수에 울릴 때마다 자업자득이란 말을 되새김질할 수밖에 없었다.
▶ 독고를 뒤조사하던 곽이 오히려 독고의 도움으로 되려 편의점 야간알바를 하게 되었다. 한때는 형사로 일하던 곽이었지만 '가족을 위해' 뇌물을 먹고 흥신소를 차려 불명예스럽게 살고 있었다. 늙은 곽은 능력이 퇴화되었고, 먹고살기 어려워졌다. 그런 곽에게 독고가 도움을 주었고, 독고는 그에게 마지막 '의뢰'를 맡겼다.
> ALWAYS
. 이 주유소에서 나는 기름만 넣은 것이 아니라 아예 차를 고쳤다. 고쳤으면 떠나야지. 다시 길을 가야지. 그녀가 그렇게 내게 말하는 듯했다.
▶ 독고는 드디어 '자신'을 찾았다. 그런 그에게 염여사는 위와 같이 얘기한다. 독고는 편의점 야간알바였고, 독고 덕분에 편의점 매출이 올랐고 분위기도 좋게 변했다. 하지만 염여사는 기꺼이 그를 좋게 보내줬다. 독고뿐만 아니라 시현이(스카우트당한 어린 알바)도 좋게 보내줬다. 한때는 편의점 식구들이 직장을 잃을까 봐 편의점을 '버텼'지만, 떠나는 식구들을 또 굳이 붙잡지도 않았다. 참으로 멋진 어른이다.
. 결국 삶은 관계였고 관계는 소통이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내 옆의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데 있음을 이제 깨달았다.
▶ 드디어 '자신'을 찾은 독고는 과거의 자신은 참으로 소통에 능하지 않은 '멋지지' 않은 사람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편의점에서 많은 이들을 '도와준' 독고는 다행히 본인도 이 편의점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혔다고 한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