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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 Mar 14. 2022

약탈자의 봄



모든 것은 변한다지만 그럼 우리 둘만 그대로 있자, 우리만 알고 있자, 우리가 변하지 않는다는 거.

비밀이 아니면 소란스러워지는 소문처럼,

깨질까 봐 두려운 약속을 속삭이며 봄은 약속된 시간으로 오고 있었다.

여기쯤 나와있기로 했어, 봄이.


비밀이란 것들이 결국 제일 소란스러워지는 세상에서 우리는 참 많은 것들을 비밀로 약속했다.

그런데 있지, 그때는 말이야. 세상이 소란스러워서 많은 비밀을 약속할 수밖에 없었어.

소란은 소란으로 덮어야 하는 거잖아, 그렇잖아? 그래서 우리는 약속한 거잖아.

침묵 속에서는 남들과 같을 수 없으니까, 남들과 다른 모습인 걸 들키기 싫어서 폭로될 비밀들을

우리 둘의 약속으로 굳건히 맹세한 거잖아.

근데 나는 사실 그때 봤어, 혼자 있던 네가 혼자만의 표정을 짓고 있던 걸.

네 이름이 세상 밖 소리로 흘러나오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그런 표정은 가진 적 없는 것처럼 구는 거.

그때 알았어. 사실 슬픈 아이라는 걸.


그래서 계절을 잡아둘 수 있는 아이처럼 군 거지? 나와는 같이 알고 우리는 세상에 비밀로 했잖아.

결국 약속도 비밀도 끝으로 치닫는 파멸 속에서 가장 빛나는 것을.

소란스러운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었다.

무덤처럼 파헤쳐지는 소란과 그 속에 반짝반짝 빛이 나는 입술들을, 언제고 분명 만진 적이 있다.

내가 말했던가, 나는 불안할 때 괜히 입술에 손을 가져다 댄다고?


입술을 만져 손에 묻은 붉은색 자국들은 봄이 지나가며 남긴 꽃 자국 같으다.

으깨진 꽃도 탄생은 꽃이었잖니, 그걸 꼭 말로 해야만 아는 거니?

차갑게 피었다고 해서 꽃이 꽃이 아닌 게 되진 않잖니?


-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고, 반드시 대가는 있는 거라고. 우리 엄마가 늘 말했어. 꽃이었던 것을 짓밟고 그 존재를 뺏지 말라고.


존재를 뺏지 않아도 소란에 부서지고, 무덤처럼 파헤쳐지는 우리의 굳건한 맹세를 소리 내어본다.

불도 켜지지 않은 방 한편, 침묵이 소란을 재운다.

굳건한 맹세가 굉음을 내며 불꽃놀이처럼 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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