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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 Jul 03. 2022

일기 04.

2022.07.03 일요일


회사 근무 중 모니터로 우연히 후원 광고를 봤다. 갓난아기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아이는 곧이라도 울듯, 울음을 참는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어떠한 상황임을 알고 저런 표정을 짓는 걸까?

갓난쟁이라서 울 수밖에 없는 아이의 표정을 내가 그릇된 연민으로 고상한 척하며 걱정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다만 그 아이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상황을 직감하고 우는 거라면, 

그건 좀 더 끔찍한데..라고 생각했다.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은 슬프기 때문이다. 

일찍 철이 들기 위한 전제 조건은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게 '눈치'다. 

(적어도 나의 견해는 그렇다.) 

그렇게 주변 어른들의, 자신이 처한 상황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그래야만 처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

눈치를 보며 선택한 행동들은 모두 억제가 기반되어 있다. 

사랑받기 위한 행동, 이해받기 위한 행동, 연민받기 위한 행동, 그들을 화나지 않게 하기 위한 행동 등.

자신의 의지와 감정은 철저히 억제되고 배제된 채로 행동한다. 

생각이 깊어 감탄을 자아내는 아이들을 보면, 나는 왠지 슬퍼진다. 

억제되어 있는 그 아이들의 어딘가가 궁금해진다.

내가 우연히 본 그 후원광고 속의 아이도 그런 것은 아닐지, 그러기엔 너무 어린데, 하며 

괜스레 우울해졌다. 

아직 나는 한 아이의 엄마가 아니지만, 나중에 엄마가 된다면 

"철 좀 들어라"라는 말만큼은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아이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철이 들지 않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결핍된 사정이 있으리라. 

혹은 이미 알고 있음에도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개인의 사정을 함부로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세상엔 많은 사연이 있다. 나이에 관계없이 그 사연들은 나름대로의 숙성이 되어 있다.

모두가 함부로 타인의 숙성된 사연을 쉽사리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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