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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미 Oct 02. 2015

제목 없음.

 첫 번째. 꿈을 먹고 자란 나무.


난 늘 언니와 함께 있었다.

언니가 가끔 내게 반찬을 내밀 때면, 나는 가족 중 가장 열심히 그 반찬을 먹었다.

그건 나를 위한 반찬이었으니까.

언니가 차마 집에서 직접 해주지 못한 반찬을 내게 전해주고자 한 그 마음.

그 마음이 슬펐다.

직접 해주지 못해 아쉬운 마음을 반찬 통에 눌러 담아 건네주는 그 마음이, 나는 슬프다.

그것은 분명 나를 먹이고 싶은, 나를 위한 언니의 반찬이었다.



나는 뜬금없이 메모를 하곤 한다.

당장 노트북으로 옮기기 힘들 때면, 바쁘게 손가락을 움직여 핸드폰 메모장에 즉각 즉각 글을 저장해놓았다.

대부분이 언니에 관한 것이었다.

작은 음악가였던 언니, 언니에게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언니는 음악을 할 때 비로소 완성된 사람처럼 보였다.

언니가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부를 때면, 그 공간은 그제야 비로소 채워졌다.

언니의 목소리로, 언니의 영혼으로, 언니의 열정으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7살이나 어린 여자 아이의 동경으로.


어렸을 적, 언니는 내 세계였다.

언니 자체가 내가 사는 세계였다.

그게 전부였다.

내 세계에는 아무도 드나들지 않았다.

엄마도, 아빠도, 모두 내 세계에 드나들지 않았다.

아니, 드문 드문 내 세계를 뒤흔드는 압박만이 있었을 뿐, 그 누구도 내 세계에 들어와 나와 함께 살지 못했다.

어째서 언니만 그것이 가능했을까?

우리는 쌍둥이도 아니고, 연년생도 아니었으며, 7년이라는 긴 터울을 두고 태어난 그저 평범한 자매였음에도. 쌍둥이같이 사소한 습관도 똑같고, 똑같이 아팠고, 똑같이 생각했다.

감정의 공유가 가능한 자매인 것이다.

지금에 와서 옛날을 추억해보면 가슴 찡한 추억들이 많다.

그때에는 언니와 함께한 좋은 추억이었으나, 지금에 와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것은 반짝이게 슬프다.

언니는 언니의 생활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면 줄곧 그것을 나와 함께 공유하려 했다.

언니는 들뜬 목소리로 내게 말하곤 했다.

오늘 어디를 다녀왔는데 정말 좋았다, 다음에 언니랑 같이 가자.


 매점에 이런 신기한 라면이 새로 들어왔다, 다음에 사올게.

 등등.


언니는 언니의 일상생활을 내게 그대로 가져다 주었다.


내가 7년 후 언니의 나이가 되어 생활을 해보니 언니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언니를 위해 매점에서 봉지 라면을 사서 가방에 넣었을까?

넉넉하지 않은 용돈을 쪼개어,

몇 백 원, 몇 천원이 아까운 용돈을 나눠 7살이나 어린.

언니가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다."라고 하면 그 말을 그대로 믿어버릴 꼬마에게 언니는  아낌없이 나눠주었다.

많은 것들을.


우리 둘은 크고 나서도 언니와 나는 공유하는 것이 많았다.

나는 언니 덕분에 좀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고, 우리가 보고 느끼고 겪는 세계는 꽤나 빨리 맞춰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내게 말했다.


“언니가 돈 많이 벌어서 다 해줄게. 그냥다 해줄게. 언니가 정말 돈 많이 벌어서 너는 다 해줄게.”


그렇다, 나는 어쩌면 우리 집 사람들의 꿈을 먹으며 자란 “나무”였던 것 같다.

엄마와 언니, 간간이 속마음을 내 비추던 아빠.

이 세 사람의 꿈은 오직 나를 향해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내게 열중했다. 아니, 열중했고 열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엄마는 내가 글 쓰는 것에 소질이 있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끊임없이 좋은 글귀와 신문 기사들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엄마는 쑥스러운 듯 내게 그 글귀들을 건네주며,

“네가 글 쓸 때, 도움이 될까 해서.”

라며 조용히 책상에, 엄마의 꿈과 열정들을 놓고 갔다.

간혹 수첩에 꾹꾹 눌러 쓴 글귀들을 보고 있노라면 엄마의 감정이 그대로 묻어있는  듯했다.

생각해보니, 엄마가 자필로 쓴 글들은 모두 ‘꾹꾹’ 눌러 쓴 듯한 느낌이 있었다.

엄마는 항상 한 글자, 한 글자에 힘을 주어 글을 써내려 갔다.

글을 쓰는 엄마의 감정은, 대체 무엇을 그렇게 참고 누르고 싶었던 걸까?

학교나, 공적인 자리에 나의 엄마로서 글을 써내야 할 때면 엄마는 몇 번이고 연습을 한 뒤에야 글을 써주었다. 한 문장 한 문장 틀린 맞춤법은 없는지 내게 물으며, 문장의 흐름을 더듬는 엄마의 모습을 볼 때면 엄마의 애잔한 삶이 느껴지곤 했다.


모든 분야에 재주가 많은 우리 엄마는 재주가 많은 만큼 슬픈 운명을 타고 난  듯하다.

엄마의 이야기를 자세히 다룰 수 없는 까닭은, 아직 내가 엄마의 애잔한 삶을 다루기에 많이 미성숙하기 때문이다.

그저 마음으로 짐작하고 새겨놓을 뿐, 그것을 글로 옮기고자 하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다.

다만 가끔씩 보이는 어느 한 부분의 씁쓸한, 그런, 엄마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옮겨 적어놓을 뿐.

내가 가장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은, 직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언니와 나를 공부시키던 모습.

그리고 어둠 속에서 등을 돌린 채 벽을 바라보던 엄마의 누운 모습이다.

엄마는 내게서, 자주 등을 돌린 채 누워있었다.

엄마의 등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쓸쓸했다.

돌아서는 여자의 뒷모습이 그렇게 쓸쓸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엄마의 뒷모습을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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