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과 같은 상표들을 등록한 원고(영국 도자기회사, 포트메리온그룹)가 그림 2와 같은 디자인 제품을 사용한 우리나라 기업인 피고에 대하여 상표권 등의 침해소송을 제기하였다. 1심법원(서울중앙지방법원 2009. 11. 5. 선고 2007가합83132 판결) 및 2심법원(서울고등법원 2010. 6. 23. 선고 2009나117425 판결)에서는 피고가 원고의 상표권 등을 침해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판결의 요지는 대강 다음과 같다.
“피고 표장들은 디자인으로 사용되었을 뿐 상표적으로 사용된 것은 아니므로, 피고 표장들이 원고 등록상표 1, 2의 상표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
또한 피고 표장들의 구성 부분 중 나뭇잎 띠 문양이 원고 등록상표 3과 유사하기는 하나, 피고 표장들을 전체적으로 관찰하면, 나뭇잎 띠 문양의 원형 테두리 안에 각종 색채로 도안화한 꽃 문양이 추가되어 있고 나뭇잎 띠 문양만이 지배적 인상을 주는 것도 아니어서, 꽃 문양 없이 나뭇잎 띠 문양의 원형 테두리로만 구성된 원고 등록상표 3과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다.
또한 원고 등록상표 4와 피고 표장들은 나뭇잎 띠 문양의 원형 테두리 안에 꽃 문양이 있는 점에서 유사하고, 특히 원고 등록상표 4와 피고 표장 1은 중앙의 꽃 문양의 형태도 상당히 유사하기는 하나, 앞서 본 바와 같이 피고 표장들은 디자인으로 사용되었을 뿐 상표로서 사용된 것은 아니므로, 피고 표장들이 원고 등록상표 4의 상표권을 침해하였다고 볼 수 없다.”
요지는 결국 피고 제품의 문양은 디자인으로서 상표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므로 원고 제품과 문양이 유사하다고 해도 상표권침해는 아니다는 것이다. 이와 아울러, 1심 및 2심에서는 저작권침해여부, 부정경쟁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도 판단하였는데, 모두 저작권 침해도 아니고, 부정경쟁행위에 해당되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원고는 이에 불복하여 대법원에 상고하였는데, 대법원판결(대법원 2013. 3. 28. 선고 2010다58261 판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디자인과 상표는 배타적·선택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디자인이 될 수 있는 형상이나 모양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상표적 기능을 하는 경우에는 상표 사용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 바( 대법원 2009. 5. 14. 선고 2009후665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살펴보면, 도자기 그릇에 표현된 디자인은 단순히 디자인으로서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고 다른 상품과 구별하는 식별표지로서도 사용되는 것으로 보이고, 피고 제품들은 ‘포트메리온 st 접시’ 또는 ‘명품’ 등으로 광고되어 원고의 포트메리온 제품인 것처럼 판매되어 왔으므로, 피고 표장 1~4는 순전히 디자인이나 장식용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상품의 출처표시를 위하여 사용된 것으로서 상표로서도 사용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럼에도 원심은 접시 등 제품에 표현된 도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디자인에 불과하다는 전제에서 상표의 유사 여부에 대하여 나아가 판단하지 아니한 채 피고 표장 1~4는 상표로서 사용된 것이 아니므로 원고 등록상표에 대한 상표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상표로서의 사용에 대한 법리를 오해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다.”
그리하여 대법원에서는 피고의 제품들은 원고의 상표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하였다. 디자인이 기능과 미를 창조하는 조형적 활동이라면, 상표는 출처표시적 기능을 본질로 하는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피고의 디자인을 본 수요자들이 “어, 이 제품, ‘포트메리온’ 제품이네” 혹은 “이 제품, ‘포트메리온’ 제품인가?” 식으로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미 이 디자인이 출처표시적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즉 상표로서 사용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위의 대법원 판결에서 잘 지적하였듯이, 디자인과 상표는 상호 배타적인 관계가 아니다. 디자인이 얼마든지 상표로서 기능, 즉 출처표시적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코카콜라 병은 널리 알려진 디자인이다.
그런데 이 독특한 병모양은 코카콜라의 상표이기도 하다. 입체적인 형상이 상표인 것이다. 이 병모양을 보면 코카콜라사 제품이라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코카콜라사 이외에는 아무도 이 코카콜라 병 모양을 유사하게 디자인하여 사용할 수 없다. 사실, 디자인은 독점권이 10년 내지 20년밖에 되지 않는다. (나라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는 디자인 출원일부터 20년간 보호된다) 그런데 상표는 10년마다 갱신등록을 하면 무한정 독점권을 가질 수 있다. 코카콜라사는 이 병 모양에 대한 디자인권은 이미 소멸되어 없어졌지만 상표권을 가지고 있으므로, 아무도 이 병 모양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다.(이와 같이 좋은 디자인이 크게 히트하여 상표로서 역할을 한다면, 지속적으로 독점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입체적 형상 디자인이 상표로서 역할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평면적인 그래픽디자인이 상표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이들 디자인은 디즈니사의 상표들이다. 이러한 디자인 역시 디자인권은 이미 존속기간이 만료되어 소멸되었지만, 상표권은 계속하여 유지되는 것이다.
위에서 LG와 SK 마크가 상표란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있는데, 나머지 디자인 모두 상표라고 하면 좀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이들 모두 상표들이다. 그것도 다 등록된 상표들이다. 그림이나 동영상도 상표가 될 수 있고, 특이한 알약의 형상이나 포장지 디자인도 상표가 될 수 있다. 심지어 운동화 밑창의 일부분도 상표가 되는 것이다. 하단 우측의 꼬불꼬불한 운동화 밑창은 리복의 등록상표이다. 독특하고 실용적인 디자인인데 이것이 이 회사의 제품임을 나타내는 상표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상표가 단순히 마크나 기호 혹은 심벌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상표의 대상이 엄청나게 확장되어 있다. 우리나라 상표법을 보면 상표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1. "상표"란 자기의 상품과 타인의 상품을 식별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표장(標章)을 말한다.
2. "표장"이란 기호, 문자, 도형, 소리, 냄새, 입체적 형상, 홀로그램·동작 또는 색채 등으로서 그 구성이나 표현방식에 상관없이 상품의 출처(出處)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모든 표시를 말한다.
소리, 냄새도 상표가 될 수 있고, 심지어 동작도 상표가 될 수 있다. 상품의 출처를 나타내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표시가 상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컨대, 특이한 건물디자인도 상표가 될 수 있다. 예컨대 어떤 주유소 구조물이 그 회사만의 독특한 색채와 구조로 되어 다른 회사 주유소와 식별될 수 있다면, 이 구조물 디자인은 상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상표등록해 두면, 다른 주유소들은 그 디자인을 비슷하게 하여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건축디자인은 디자인등록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물을 디자인으로 보호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오히려 상표로서 보호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자면, 디자인을 디자인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상표로도 기능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하여, 디자인을 상표화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뛰어난 디자인이라도 20년이 지나면 권리가 소멸되어 버리지만, 상표등록을 하면 그 디자인에 대해 계속하여 독점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이 디자인이 브랜드가 됨으로써 디자인의 가치는 한층 더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