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 사람도 읽는 사람도 은근과 끈기가 필요하다

- 소설 [7년의 밤]이 그렇다.

by 석하

갈 데 없어 자연히 '서점에나 가보자' 했고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 소설 제목에 책 상태도 확인 안 하고 값을 치르고 데리고 온 책이다.

집에 와서 보니 당연히 상태는 앞쪽에 있는 얼마간이 어디에 찍혀 우그러져 있었고 맨 뒷장을 펼쳐 보니 500페이지가 넘어가는 초 장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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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설 본 시리즈를 원서로 두 권까지 읽었던 5년 전을 떠올리며

'그래! 읽어 보지 뭐!' 하고 펼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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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 세 시간짜리 <쉰들러 리스트>처럼

길어도 너무 길었다.

내 인내심이 이 정도밖에 안 되었던가 한숨이 나서 읽었던 부분을 후루룩 다시 짚어 보았다.

그랬더니!! 세상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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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너무 많은 자료를 공들여 수집했나 보다.

굳이 페이지를 잡아먹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풀어놓고 있었다.

가령,

야구경기 묘사 --->> 말해 줘도 모르고 집중하기 싫다.

잠수 장비 설명 및 잠수 방법 묘사 --->> 물속 세상까지 관심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오영제, 최현수, 안승환의 배경에 묘사 --->> 간단히 할 수도 있는 걸 또 말하고 나눠 말하고.

영화 <열아홉 번째 남자> --->> 검색창에 치면 자동 완성도 안 되는 1988년에 나온 영화 대사를 줄줄줄 외우는 캐릭터라니...

이야기의 배경 묘사 --->> 딱히 인물들의 행동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소도구까지 일일이 늘어놔.

요러요러한 지루한 설명들이 마치 짜깁기 한 논문을 읽는 것 같은 뒷목 당김을 만끽하게 해주었다.


그래도!!

*<아메리칸 사이코> VS <프랑켄슈타인>

타고난 미친놈, 좀 고상하게 사이코 패스 오영제와 만들어진 괴수 최현수를 싸움 붙이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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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는 내내 두 영화 캐릭터에 대한 평가와 비슷한 두 명의 소설 주인공들이 등장해서 좀 친숙했다.

마음에 안 들면 죽이거나 해코지하는 베이트만을 매력적인 뱀처럼 느꼈던 것처럼 오영제를 읽게 되고,

대형 살인을 저지르고도 불행한 탄생과 성장 환경, 안타까운 삶의 궤적으로 이상하게 동정이 가고 품어 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 프랑켄슈타인 같은 최현수를 읽게 된다.

게다가, 오지랖 넓은 안승환을 제쳐 두고 최현수의 아들 최서원은 딱 <헬보이>다.

지옥에서 태어난 악마이면서 사람을 이해하고 돕는 헬보이.

주요 캐릭터들이 되게 친숙해 거부감이 없었다.


그리고!!

* <인셉션>

2010년에 <인셉션>이 나왔을 때 토종 미국인 친구들이 "넌 이 영화가 이해가 돼?? 어떻게??"라고 물었었다. 나는 '호접지몽'을 영어로 설명할 능력이 안 돼서

'그냥, 아시아 사람들은 다 돼'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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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접지몽'의 구조는 삼중 구조다.

1- 나비가 된 장자

2- 나비가 된 장자를 보고 있는 장자

3- 나비가 된 장자를 보고 있다가 깨어나 '뭐지?' 하는 장자.


이 책의 매력이 터지는 요소가

이 구조에다 각기 다른 장르를 구축해 하나의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것이다.

1- 오영제의 범인 찾기는 미스터리 장르

2- 최현수와 오승환의 최서원 지키기, 가정폭력을 피해 달아나려는 문하영과 오세령의 절박함은 범죄물 드라마 장르

3 - 이 캐릭터들을 지켜보는 독자에게 이야기 전체가 반전 있는 스릴러 장르.


각기 다른 장르들이 삼중창을 맞춰 끼운 것처럼 딱 맞아서 쭉--- 이어진다.

뭐, 결말까지 그렇게 간다는 건 아니다. 딱 끝이 빤히 보이는 해피엔딩 액션 장르로 마무리된다는 점이 '과연 이게 최선이었나?? 작가가 많이 이 힘들었나 보구나' 싶기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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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어 본 작가의 소설이었다.

영국 작가 M.J. 알리지의 [이니미니]를 읽을 때와 비슷한 생각을 하게 한 글이었다.

페이지를 쌓아한 신을 완성해 감으로써 온전한 장편 영화 하나를 본 것 같은 느낌을 들게 했다.

또한 중간중간 작가의 실제 성격이 반영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입에 촥 감기는 까칠하고 시니컬한 문장들은 되게 현실감이 있어서 이야기를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게 해 주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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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속도감이 엄청 있는 이야기 전개는 아니다.

그렇다고 재미가 하나도 없는 이야기도 아니다.


작가의 말처럼 매일 접하는 뉴스 보도에서 튀어나온 각종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이 사건을 재구성해나간다. 마치 사건 인물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사건의 발생 경위, 해결 과정, 마무리를 꼼꼼하게 써 놓은 여성 매거진을 관심 있게 읽었다는 느낌이 들도록 말이다.


긴 이야기가 싫은 사람,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해 작가가 잘난 척하듯 설명하는 게 싫은 사람,

수동형 문장과 문장 종결 어미의 복잡성 때문에 중간중간 뭐라고?? 를 되풀이하기 싫은 사람에게는

분명 매력 없는 책이다.


하지만!!

한국 작가 특유의 은근과 끈기, 움베르토 에코 정도의 방대한 지식과 자료, 신선한 장르적 혼합성, 현대작가가 갖춰야 할 문체의 개성을 두루 갖춘 글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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