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차 Jan 05. 2023

새해 복 많은 나무

 오늘, 우리 부부는 만 나이로 평균 40세, 아이들은  이제 7살, 9살 소녀가 되었다.

 소녀들은 새해 아침 눈을 뜨자마자 자모양 스티커가 세로로 길게 붙은 벽에 서며 서로의 키를 재어 보았다. 조금 큰 듯 그대로 인 듯, 큰 변화 없는 자신들의 신장에 대해 조금 실망한 듯, 그래도 기대가 남은 듯 얼굴을 마주 보며 미소 짓는다. 아침식사를 마친 후 남편과 마실 차를 우리는 데 아이들이 코코아가 마시고 싶다고 한다.

“인제 한 살 더 먹었으니 너희끼리 해볼래?”

두 어린이는 설레는 눈짓을 주고받는다. 우유를 컵에 따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가루를 넣어 젓자 포근한 냄새를 풍기는 코코아 완성! 뿌듯함으로 환해진 표정이 마냥 예쁘다.

“직접 만든 코코아, 너무 맛있겠다! “ 하니 입술을 코코아로 적신 채 활짝 웃으며 답한다.

”이렇게 맛있게 할 수 있으니 인제 엄마 아빠 것도 만들어 줄 수 있겠다! “

자유로운 행복. 그래, 무엇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건네 것을 나눌 수도 있게 되었다는 의미야.


 나의 학령기는 지루했다. 친구들은 내 멋대로의 예상과 기대에 장단을 맞춰주지 않았고, 엄마의 애정과 조언은 내게, 엄격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작은 부분을 샅샅이 찾아내 들볶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만의 집에 남자친구를 맘껏 들이고 고양이를 키우며 온전히 내 것인 방종을 누리는 삶이 꿈이었는데 어른이 되어 독립하기까지의 그 몇 년이 너무나 까마득하게 느껴져 그저 권태로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책상 앞에 앉아 시간을 떼우는 일, 틈틈이 선생님과 엄마의 눈을 속여가며 남자친구를 만나 애정행각을 벌이는 일 따위였다. 돈을 벌거나 사랑을 하기에 재능도, 자격도 없던 시절. 다른 이의 시간과 노력을 빌어 원치 않는 것들로 채워간 그 시간은 내게 영양은 적고 칼로리만 높은 음식처럼 허하면서 더부룩했다.

  그 후 나의 20대는 몸과 마음을 써 노동을 하고, 책상 앞, 도서관, 바다 너머에서 하고 싶은 공부와 하게 될 줄 몰랐던 공부를 해내며 마침내 함께 가정을 꾸릴 친구를 찾는 것으로 채워졌다. 나는 내가 많이 부끄러워 외롭고 슬펐지만 또한 자랑스럽고 대견해 기뻤다. 나에 대해 알아 갈수록 더욱 실망했고 그럼에도 그런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30대엔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직장동료를 만나 그들 눈에 비친 내 모습을 살피며, 넓은 세상의 한 부분이 되는 내 모습을 찾았다.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이 어떻든 그대로 충분하다는 것을 배웠다.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는 것을, 다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가정에서, 학교에서 내 모습 그대로 쓸모가 있고 나로서 주변을 환히 비출 수 있다는 것은 큰 위로이자 자신감이 되었다.

 이제 마흔, 스스로 무언가를 해내고 또 무엇이든 해보려는 튼튼한 뿌리. 내가 잘하기로 마음먹은 것과 잘할 필요 없는 것을 구분하며 낄낄 빠빠의 센스를 가진 가지. 그리고 나를 필요로 하는 것에 정성을 다하는 마음가짐이 불혹의 꽃을 피우길.


 매일 아침 몸과 마음을 일으켜 학교에 가고, 하루 세끼 내키지 않는 야채를 먹으며, 아홉 시 전에 씻고 누워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일. 언젠가 롤러코스터를 보호자 없이 탈 수 있는 130센티미터가 되기를 기다리는 일로 내 딸들의 마음은 지루할지 모르겠다. 그럴 때에 내 곁에 있는, 혹은 곁에 있는 줄 몰랐던 이들을 발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며 마침내 나로서 충분함을 발견할 수 있는 너희가 되면 좋겠다. 쓰러지지 않고 위로 높게 자라려면 먼저 옆으로 둥글게 넓어져야 함을 알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나누며 많이 자라지 않아도 충분한 내가 되도록. 작은 몸으로도 튼튼히 서 있는 뿌리 깊은 불혹의 나무로 너희 곁에 서 있고 싶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