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차 Jan 05. 2023

나의 작은 문학사

청소년기, 해보고 싶은 것들은 많았지만 하고 싶은 것은 없었다.

그 때 내가 꿀 수 있는 꿈이란 막연했고, 아직 때가 닥치지 않았기에 저질러지지 않아 다행인 것들이었다.


혹평과 매니악한 사랑을 동시에 얻는 소설의 작가가 되는 것.

그리고 스물일곱에 요절해서, 내가 비록 희대의 천재는 못됐으나 그래도 비극적 운명을 타고난 특별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것.

그러니까 재주는 글쓰는 것 뿐인데 좋은 작품을 쓸 자신은 없어 매력적인 작품이라도 되길 차선으로 선택한 주제에 두고두고 잊히지 않으려고 작가의 생애에 조미료를 치는 동시에 추가로 뭘 입증할 책임없이 사라지고 싶은 게 내 꿈이었다.


고여있기도, 휩쓸리기도 하며 20대가 되었고 다만 물결의 힘에 업혀 흘러온 것임을 알게 될 때쯤 이 모든 것이 지겨워졌다.

전공, 친구, 시간을 보내는 방법.  

많은 것을 바꾸면서도 부끄러움이나 슬픔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지키고 싶었던 한 가지를 손에 꼭 쥐고 있어서였다.

문학을 흠모하는 태도.

대학이란 장서들이 빼곡한 도서관과 공강시간에 독서할 공간이 넘치는 캠퍼스, 그리고 복수전공이라는 이름하에 더 매력적인, 문학의 스승과 동지를 만날 수 있는 곳이었으니, 이는 마치 일찍이 나만이 재능을 알아 본 예술하는 남자친구가 어느날 마스터피스를 만들어 세상의 인정을 받고 엄마도 잘됐다 집과 혼수를 모두 해줄테니 그 사람이랑 결혼해라 하는 상황이랄까.

독서하고 글 쓸 수 있는 멍석 위에서 배우고 나눌 여유 속을 허우적거리며 황홀한 시간을 보내다 요절할 틈도 없이 난 스물일곱이 되었다.


출근을 하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어른들과는 상황에 알맞은 대화법을 듣고 배우고 말하며, 늙어가고 있음을 알았지만 그래도 많은 시간 즐거웠다.

국어는 일주일에 5차시, 매일 가르치는 선생님의 행복에 아이들도 그 시간을 즐겼고, 좋아했던 작가나 시를 교과서에서 보게 되면 수업준비를 하는 며칠동안이 설렜다.

나처럼 문학을 사랑하는 교사들과 어린이 책을 함께 읽고 서평을 쓰고 나누는 두시간의 만남이 일주일을 빛나게 했다.

이성적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고 중용의 삶을 살고자 했던 남자친구가 실은 '한시대를 살아가는 시인의 마음'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커밍아웃했을 때 그에게 다시 한번 반했고, 지금은 남편이 되어 나의 시시콜콜한 문학사랑을 들어주고 공감하고 응원해준다.


지금의 난 해보고 싶은 게 별로 없다.

아마도 요절의 분기점을 지나, 하고 싶은 것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박완서작가는 아이들이 장성한 40대, 자전적 소설 '나목'으로 등단했다. 큰 신문사도 아니고 동서문학상, 그 직후엔 여성지에서 요청한 글들을 주로 썼다고 한다. 가족을 이루고 아이를 여럿 낳아 갖가지 사연으로 키워낸 후의 그녀에게 문학이란 욕심나고 인정받고 싶은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읽고 쓸 수 있어 그저 기껍고 행복한 것.


사실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좋은 글을 쓰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데, 본업이 따로 있는데, 아직 내 손이 필요한 어린 아이도 둘이나 있는데, 가족들 얼굴에 먹칠하지 않아야 하는데, 문체는 가볍고 주제는 묵직하면 좋겠는데.

자격 없음에 갇혀 지내온 시간이 아깝다기보다는, 이만하고 빠져나와도 되지 않을까 싶다,

이제 '박완서 분기점'인 40대가 다가온다.

오랫동안 흠모해온 문학에게 이제는 말 걸고 싶다.


난 큰 재능도 용기도 없지만 이제 욕심도 적어졌어요. 나의 문학을 가져도 될까요?

우리 가볍게 산책하며 얘기 나눠봅시다.

작가의 이전글 새해 복 많은 나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