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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 Jan 05. 2023

뜨거운 사랑

 우리 집 고양이 앙꼬가 중성화 수술을 했다.

생후 6개월, 지난달까지만 해도 아직 아기라 생각해 내키지 않아 했었던 내가 수술을 결심한 건 구우구우 낯선 소리에 잠에서 깬 어느 날부터였다. 드디어 시작인가, 괴로운 듯한 울음을 밤새 그치지 않아 이웃들까지 잠 못 들고 큰 일이라던데.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다음날 아침 당장 가까운 동물 병원에 전화했지만 수술은 검진 후 가능하다 하여 하루빨리 일을 치르고 싶은 내 맘은 더 초조해졌다. 무리해서 시간을 내어 내원 후 가장 빠른 날짜인 2주 후로 예약을 하고 와서는 매일밤 암고양이의 발정울음이 들리지 않는지 귀 기울이며 노심초사했다. 드디어 수술날 오전, 출근을 하고 조금 후에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병원에 앙꼬를 맡기고 나오며 "수술 잘 마치고 만나, 앙꼬야, 사랑해!"라고 말해버렸다고. 우연히 우리 집에 머물다 우리 가족이 된 업둥이 앙꼬의 수술과 입원으로 우리는 걱정과 응원과 사랑이 뒤섞인 그 무엇을 느끼고 있었다. 다음날, 동물병원으로 향하며 고 자그마한 털북숭이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낯선 곳에서의 하룻밤이 불안하지는 않았을까, 무엇보다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해 해야 하는 큰 수술이 아프지는 않았을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앙꼬 보호자님!" 반가운 맘으로 진료실에 들어갔지만 앙꼬는 보이지 않았다. 수의사는 수술이 잘 끝났다고 이야기했다. 곧 내게 수술한 부분을 보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상처 부분을 보여주며 관리법을 설명해주시려나 보다, 우리 앙꼬 이제 만나겠네 하며 그렇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마우스를 잡고 옆에 있던 모니터에 사진을 띄웠다.

 잘려 나온 난소 두 개와 자궁. 내가 사주하고 그가 집도한 앙꼬의 자궁 적출.

 이 문장을 쓰며 다른 말을 찾았지만, 떠오르는 온갖 끔찍한 단어 중에서 고르고 고른 가장 건조하고 중립적인 단어란 이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후회했다. 수의사가 보고 싶냐고 한 것이 이런 것인 줄 알았다면, 난 아니라고 했을 텐데. 앙꼬가 아프고 힘들어할 것이라서 이틀간 진통제가 포함된 약을 투약할 것이라 얘기하는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난 호주 원주민에 대한 책에서 읽은 비극을 떠올렸다. 인구수 조절이라는 목적으로 원주민 소녀들을 속이거나 납치해 강제로 수술을 시킨 영국인들의 이야기를. 나는 앙꼬의 아기를 보고 싶지 않거나 앙꼬를 미워해 이 수술을 감행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 가족은 모두 앙꼬를 사랑해버렸고 그 사랑을 죽는 순간까지 놓지 않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 수술을 했다. 하지만, 난 적어도 앙꼬의 성장을, 2차 성징의 징후를 두려워했고 사실 그 두려움이 혐오에 이르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앙꼬는 호기심이 많으며 몸놀림이 날렵한 고양이. 그녀가 처음 내 친구에게 발견되기 전 모습 그대로 집 밖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아가들 주변에 유리 조각이 있었다고 하니 고동색 발바닥이 다쳐 감염되었을 수 있다. 어미가 며칠 째 나타나지 않았다 하니 동기들과 아사했을 수도, 그 위기를 넘겼더라도 제주의 여름은 덥고 습하니 피부병에 걸리거나, 길에 있는 음식과 물을 먹고 몸이 많이 상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제주의 바람, 폭설과 싸워야 하는 겨울에 고양이들은 추위로 생사를 넘나들기도 한다. 수술 전에는 남편과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녀석들, 팔자 폈다고 웃기도 하였다.

 앙꼬의 몸에서 떨어져 나온 출산의 기관, 어쩌면 작은 아기고양이 여럿을 키울 수 있었을 그 공간을 적극적으로 무력화 한 나는 이제 앙꼬와 치즈에 대한 농담을 함부로 하지 못할 것 같다. 앙꼬는 우리와 살기 위해 타의로 생명 잉태의 가능성을 잃었다.

 수술 부위를 꿰매어 그 위에 붕대를 감고, 그루밍으로 인한 감염을 막기 위해 거즈로 된 옷을 입은 앙꼬, 애써 걷다 낯설고 불편해 자꾸만 옆으로 쓰러지는 그녀를 보며 나는 뜨겁게 궁금해진다. 사랑과 동거를 담보로 내가 빼앗은 것, 나는 그만큼 중요하고 특별한 것을 그녀에게 내어줄 수 있을까.

 그저 미안하고 못나고 슬픈 내 손아래, 머리를 들이밀며 여전히 나를 믿는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따뜻하고 보드라운 얼굴을 쓰다듬는다.

밤새 아프고 외롭고 두려웠을 지친 마음을 내려놓고 잠든 그녀의 몸에 가볍고 포근한 담요를 덮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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