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혼자 있는 사람입니까?
아홉살이 된 큰 딸 인이는 새롭고, 더 스릴 있는 놀이기구가 무엇 인지, 어디에 있는 지 궁금해 했다. 놀이공원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고는, 인기있는 놀이기구를 타려면 키가 5센티미터 더 커야 한다며 조바심을 냈다. 마침내, 130센티미터가 넘은 생일 즈음, 추석 연휴를 맞아 잠실에 있는 놀이공원에 가게 되었고, 인이는 투지에 불타는 눈빛으로 ‘프렌치 레볼루션’을 향해 뛰어갔다. 놀이기구를 타려면 한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안내판 앞에서, 짧은 옆 줄을 발견한 그녀. 바로 ‘싱글라이더’를 위한 곳이었다.
두 명씩 앉도록 되어 있는 기구에 한 명이 앉을 경우 남은 자리를 비워두지 않고 혼자 온 사람을 앉게 하는 방식. 일행이 홀수인 탑승객이 꽤 있는 지, 싱글라이더 줄은 금방 줄어들었고, 무엇보다 그곳에 선 사람의 수가 무척 적었다. 10분만 기다리면 놀이기구를 탈 수 있다는 직원의 말에, 인이는 선뜻 가족을 버리고 싱글라이더 줄 끝으로 냉큼 달려갔다. 기차가 빠르게 오르 내리며 위아래가 바뀌기도 하는 스릴 만점의 기구라, 처음 이용하는 입장에서 무서울 듯도 한데, 그녀는 용감했고 또 냉정했다. 목표는 다만, 꿈에 그리던 기구를 질릴 만큼 타는 것. 다행히 40대인 우리 부부와 7살 막내, 누구도 그 기구를 타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이는 마음의 부담 없이 싱글라이더가 되어 열 번도 넘게 원하는 스릴을 즐겼다.
“근데 왜 싱글라이더로 안 타고 여기서 기다려서 타는 거예요? 따로 타면 다섯 번은 더 탈 수 있는데.” 동생 온이가 타고 싶어하는 ‘신밧드의 모험’ 앞에 줄을 서서 김밥을 먹는 동안 인이가 물어왔다. 시간을 낭비하면서 굳이 함께 타는 그 마음들이 이상했나 보다. 싱글라이더 줄이 아무리 짧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 기다려 함께 타는 걸 선택하고 있었다. “인이는 엄마 아빠랑 같이 타고 싶지 않아?” 물었더니, 자기는 같이 타는 것보다 덜 기다리고 많이 타는 게 훨씬 중요하단다.
그러고 보니, 나도 혼자가 더 좋은 사람이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명언 “나이 들수록 친구는 필요 없다.”를 읽고는 고개를 끄덕이고, 대학 동기들 모임이 있을 때면 중간에 중요한 일정이 있는 척하며 빠져나와 홀로 은밀한 자유를 즐기기도 했다. 학교에 가면 조별과제로, 통학 길에는 대중교통 속에서, 집에 가면 가족들과. 누군가와 엮인 공간 속에서 늘, 고독의 시간에 목말랐다. 기말 시험이 끝난 날, 1020번 버스를 타고 부암동 백사실 계곡을 헤매는 것이 자축 세러머니였는데 그 버스 노선과 그 장소는 서울에서는 드물게 인구밀도가 낮은 곳이었다.
취직 후에는 서른 명의 작은 사람들과 좁은 교실에서 한나절을 보내야 했고 퇴근 후엔 에너지가 완전히 방전되어 일곱 시부터 곯아떨어졌다. 다행히, 그즈음부터는 가족으로부터 독립하여 혼자 살게 되었고, 아무런 방해 없이 내가 원할 때 홀로 잠 속으로 빠질 수 있는 것이 큰 행운으로 느껴졌다.
완전한 혼자가 되기. 그것은 방학 중 홀로 떠난 여행에서 실행되었다. 바캉스 기간, 매력적인 도시에는 관광객들이 활보했고, 이방인들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여행객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온전히 혼자 마주하는 새로운 풍경. 그것은 거울이 되어 나를 들여다보게 했다.
너 뭐가 맘에 드니, 너 어디 가고 싶니, 너 뭐 먹고 싶니, 너 무슨 생각하니. 오랫동안 혼자 있으면 누군가가 그립고 무언가가 아쉬울 줄 알았는데, 안 그랬다. 같은 곳으로 두 번을 더 여행 한 건, 궁금해서였을 것이다. 계속 이곳이 좋을지, 계속 혼자인 것이 정말 괜찮은지.
“언니의 그곳인데, 내가 함께 가도 괜찮겠어?” 졸업 후에도 같은 일을 하며 마음을 나누던 동기가 여름 방학을 앞두고 슬며시 물어 온 것은 세 번째 여행에서였다. 조심스레 제안하는 뉘앙스가 고마워, 선뜻 그러자 했다. 나로써는 모험이었다. 은밀하게 짜릿한 비밀 연애 상대를 공개하는 기분이었다.
취향이나 욕망이 다르기도, 겹치기도 해, 우리는 따로 또 같이 다녔다. 함께 있을 때, 아, 지금은 혼자면 더 좋았겠다 싶은 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완벽한 공간과 시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너무 좋다.” 마주 보며 같은 말을 해버릴 수 있는 것. 까르르 웃음에 순간이 더욱 찬란해 지는 것. 지금의 서로를 기억하는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근사한 일이었다.
일정이 다른 친구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고 홀로 남은 일주일 동안, 나는 유난히 쓸쓸했다. 싱글라이더인 나를 사랑했으나, 이제는 비어있는 옆자리가 자꾸 눈에 띄었다. ‘적령기 안에 결혼해야지’와 ‘내가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사이를 갈팡질팡 하던 20대 후반, 나는 여행에서 돌아와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기로 결심 했다.
결혼한 지 10년이 되는 해, 마침내 유럽에 대한 로망이 없는 남편, 손이 아직 많이 가는 딸 둘과 함께 다시 파리로 떠났다. 여전히 같은 모습의 오래된 도시인데도 이들과 함께하니 완전히 다른 장소처럼 느껴졌다. 파리답지 않다고 생각했던 디즈니랜드에 처음으로 가보았다. 큰 아이는 아빠와 함께 자유 낙하 놀이기구인 ‘타워오브테러’를 타러 가고, 나와 둘째 아이는 파리에만 있다는 ‘라따뚜이’ 어트랙션으로 향했다.
줄이 너무 길어 빼꼼 살펴보니, 자리가 여섯 개인 이 기구는 싱글라이더 회전이 빠른 편이다. 쥐 모양의 차량 여러 대가 병렬로 움직이는 구조라 다른 차량에 타도 서로를 마주칠 수 있었다. 한 시간이나 서서 기다리기에 다리가 아플 듯 하여 아이에게 제안하니, 엄마랑 따로 타도 괜찮단다. 내가 쥐가 된 듯 거대하게 지어진, 구스토의 레스토랑으로 들어가면 식품창고와 주방, 홀을 종횡무진하는 레미와 친구들의 모험이 펼쳐진다. 살짝 미끄러지는 스릴과 시원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샴페인 세러머니를 지나, 작은 전구를 밝히고 샴페인 뚜껑을 의자 삼은 레미의 레스토랑. 옆 차에 타고 있는 딸의 행복한 표정을 멀찍이 바라보며 그래, 우리 따로 또 같이. 자유롭고 따뜻하게.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해본다.
20년 전 처음 마주한 에펠탑, 감격에 젖어 가까이 다가갈 수록 보이는 것은 매끈하게 연마된 굵은 철제 기둥과 그 사이의 푸른 하늘 뿐이었다. 그 재료와 구조를 보듯, 혼자 일 때 나는 마음 속 깊은 곳의 작은 조각과 그것이 빚어낸 감정들을 가만히 살펴 볼 수 있었다.
이제, 딸들이 좋아하는 놀이터의 벤치에 앉아 바라본 에펠탑. 그 아래 펼쳐진 샴드말 공원의 초록빛과 주변을 둘러싼 오래된 궁전, 넓은 대로변 위에 반짝이며 지나가는 자동차들과 그들의 뒤통수로 흘러가는 구름.
홀로 서 있는 나도, 누군가와 어깨동무를 한 나도 너무 그립거나, 혹은 너무 낯설지 않게. 그렇게 따로 또 같이 떠났다가 돌아오는 우리는 모두 싱글라이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