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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가 두려워서

by 차차

연애는 쉽게 끝났다. 내 눈길이 머무는 아름다운 것들을 지나치는 그의 취향. 남들이 심어준 가벼운 생각에서 태어나 함부로 뱉어지는 그의 말에 모든 것이 못 미더웠다. 더운 눈빛과 화려한 사랑의 표현도 모두 지루했다. 간혹 지성도, 안목도 괜찮은 사람을 만나기도 했으나, 으레 진짜 내가 아닌 내 모습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불안해졌다. 거짓말이 차라리 들켜버렸으면 하는 아슬아슬 마음으로, 나는 느닷없이 이별을 고했다. 언젠가 다가올 연애의 결말을 기다리기가 초조해 섣불리 마침표를 찍었다. 귀갓길엔 아쉬움보다 큰 후련함으로 숨을 내쉬었다.


그렇게 반복된 만남과 연애가 시큰둥해질 무렵, 남편을 만났다. 그의 일터는 내가 사는 곳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었다. 웬만한 열정 없이는 자주 만나기 힘들 듯 하니, 만나기 전부터 사람과 관계에 대한 기대가 적었다.


우리는 첫눈에 반하지 않았지만, 주말이면 어김없임 만났다. 매일 만날 수 있었다면,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술 한잔할 거리에 서로가 있었다면, 우리 관계는 곧 권태로워졌을지 모른다. 고단한 하루 끝에 가끔은 말없이 혼자 쉬고 싶다는 생각이 찾아와 애정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됐을지 모른다.


다행히도, 오직 나를 만나기 위해 매 주말 서울에 찾아와 휴식의 시간을 기꺼이 태우는 그의 처지를 나는 사랑했다.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심리적 거리를 좁혀주는 드라마틱한 장치가 되었다. 지루함의 끝에 이별을 고할 필요가 없이, 우리의 연애는 주말이 지나면 끝이 났고, 그리움이 찾아올 며칠 후가 되면, 그는 예외 없이 돌아왔다. 워라벨(work-life balance의 한국어식 줄임말)에 준하는 러라벨(love-life balance)이 가능한 연애였다.


짐작하다 시피, 결혼 후 우리의 러라벨은 무너졌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 서로에게 적응하느라 우리는 진땀을 뺐고, 마침내 나는 책 속에 나만의 집을 지어냈다. 외딴 곳, 고요한 곳, 홀로일 수 있는 곳.


그러다 출산이라는 위기가 찾아왔으니, 이번에는 출근도 하지 않는, 지저분하고 시끄러우며 눈치도, 염치도 없는 타인을 하루 종일 친절로 대해야 했다. 이런 고행이라니.


관계를 끊어 권태를 예방하던 나의 삶은 막다른 골목을 만났다. 혼인 서약과 부모의 의무라는 댐 뒤로 하루에도 여러 번 밀려오는 지루함의 홍수. 매일 비슷한 하루 속에서 끊임없이 자아와 결혼 생활과 아이를 지켜내는 일이 버거웠다. 끝을 모르는 이 견딤 속에 삶은 의미를 잃고 있었다.


어느 날, 주제 사라마구의 책 <죽음의 중지>를 읽게 되었다. 세상에 ‘죽음’이 사라지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존재의 의미를 잃고 방황한다. 종말이 있음에 시작이 있고, 죽음이 창조의 동력이 된다는 소설의 메타포가 마음에 와닿았다.


이후, 여생이 막막하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 나는 시한부의 삶을 가정하며, 애틋하고 소중한 마음으로 하루를 사는 연습을 했다. 여행지에서 도착해 돌아갈 날을 카운트 다운하며 매일 부지런히 나와 세계를 새로이 발견하듯, 삶의 날들을 분절하여 짧고 뜨겁게 살아 본다.


크고 먼 목표 대신에, 오늘 하루 풍경을 살피고, 신선하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세상의 화려한 것들보다 내 마음에 집중한다. 내일 죽어도 아쉽지 않은 마음으로 계절과 날씨를 가득 느끼며 산책을 한다. 돌아온 집은 삶의 에너지가 가득 찬 공간이 되고, 나는 살아있음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곧 아이들이 귀가하면 서로를 마주해, 반가워하고, 즐거워하고, 때론 슬퍼하고 분노하는 살아있는 마음을 나눈다.

살아있음이 죽음을 향해가는 권태로운 시간이 아닌, 특권이 되게 하는 마음. 누리는 마음을 갖기 위해 나는 적은 시간을 갖는다. 가진 것이 적어, 작은 것을 크게 느끼는 마음처럼, 나는 단 하루의 보잘 것 없는 시간만을 살며 내 삶과 관계를 더없이 귀한 것으로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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