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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인이고 싶다

늙음이라는 자유

by 차차
불을 들여다보고 구름을 바라보게.
예감들이 떠오르고 자네 영혼 속에서 목소리들이 말하기 시작하거든 곧바로 자신을 그 목소리에 맡기고 묻지는 마.
그것이 선생님이나 아버지 혹은 그 어떤 하느님의 마음에 들까 하고 말이야.
그런 물음이 자신을 망치는 거야.

-헤르만 헤세, <데미안>중에서


늙음은 자유로움을 향해 있다. 가지고 싶은 욕심과 더 가지지 못한 좌절감, 사랑하고 싶은 욕망과 배신에 대한 두려움, 앎을 향한 욕구와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 아름다움을 향한 허영심과 닿지 못하는 좌절감, 생의 끝에 찾아올 죽음에 대한 불안-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의 ‘자유로움‘.

노인의 마음은 너그럽다. 다만 내 몫으로 주어진 물질로, 가장 가깝고 좋은 친구인 오직 나와, 여전히 무지하고 좀 못난 내 모습 그대로도, 겪고 배우고 용기를 내어 사랑하며 살아왔다는 안도와 만족과 자랑스러움이 있다.


문득 돌아본 삶 속에 아쉬움과 분노가 찌꺼기처럼 씹힐 때에도 내 삶의 길이 나의 선택과 의지였음을 되새겨, 자의식의 불꽃으로 삶을 데우고 녹이며 결국 스스로를 다독이고 세상을 이해해내는 관용이 있다.

살아 있기에, 여전히 더 갖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부끄러워지고 애쓰게 되고 불안한 순간들이 찾아올 것이다. 그럴 때에 노인은 손주를 안는 팔처럼 부드럽게 그것들을 맞이하고 능숙하게 품는다. 곧 다가올 죽음을 바라보고 있기에, 오직 생 안에서만 겪을 수 있는 이 고난들을 소중히 여기고 반기고 들여다보다 살아있음을 가여워 하며 미소 짓는다.

걷느라 지치고, 날아오르다 외로웠던 지난 순간의 유의미를 노인은 이해한다. 필요한 만큼의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자유롭게 마음의 하늘을 누린다. 날고 싶은 만큼 날고, 걷고 싶은 만큼 걷고, 더는 배우지 않아도 되기에 오히려 원하는 만큼 기쁘게 배우고, 그렇게 오직 나로서 존재하며 이대로 다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감사한다.


노인은 낡고 고장난 몸이 언젠가 태워지고 날아가 다시 흙이 될 수 있음에 안도하며, 그렇게 풀이 되고 꽃이 되고 고양이가, 돼지가 되어 결국엔 나와 내 자식의 몸이 된 과거와 미래의 모든 생을 아낀다. 그래서 그 무엇도, 고통마저도 두렵지 않은 마음으로 죽음을 기다린다.


이런 나이듦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언젠가 죽음이 주는 축복으로 반짝일 내 노년의 시간을 위해 나는 오늘도 한껏 허영을 부리며 읽고 생각하고 듣고 말하고 쓴다. 열심히 일을 해 돈을 벌어 질 좋고 맛있는 음식을 혀와 몸에게 준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몸과 표정을 위해 걷고 거울을 보고 화장품을 바른다. 오직 내게 의미 있는 사랑을 꿈꾸고, 기회를 엿보다 실천하고, 딸들의 놀이에 불온함이 보일 때 그 마음을 안다고 미소지으며 그것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렇게 성실히 준비하고, 설레며 기다리다가, 마침내 죽게 될 그 시간을 기대한다.


그러다 사실 죽음은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오는 것이 아님을 떠올리거나, 이미 내가 죽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충분히 나이든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며, 그만 준비하고 이 순간 노인처럼 살기로 한다.

부드럽고, 너그럽고, 능숙하게. 고난과 고통과 두려움을 당연히 받아들이며 그것에 익숙한 채로. 다만 두려움만을 두려워하려 애쓰며.


결국엔 닿게 될 죽음을 늘 준비하고 기대하는 태도로 그렇게 이미 늙은 채로, 잘 살기- 매일 열어보고 소중히 닦는, 자유를 향한 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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