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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타령1

브리짓 존스의 이야기

by 차차

‘I like you very much just as you are. 오장육부가 녹아내리는 마크 다아시의 대사. 매우 현실적인 로코물이지만, 그의 존재로 이 영화의 장르는 본격 판타지가 됨.’


네이버에 등록된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네티즌 후기 내용이다. 나 또한 이 후기에 공감 하트를 누른 수백 명 중의 하나가 된다. 알코올 중독인 독신녀 브리짓은 일할 때도, 말할 때도 실수투성이, 만회해보려 할 때마다 더 큰 사고를 치게 되고 자괴감에 밤마다 이불을 찬다. 그런 브리짓을 묵묵히 바라보다 뜻밖에 로맨틱한 고백을 건네고 결정적인 순간에 실질적 도움도 주는 마크.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뿐 아니라, 내 문제도 해결해주는 능력있는 그, 게다가 영화배우 콜린 퍼스의 장신과 잘생김을 입은 캐릭터라니. 마크 다아시는 과연 많은 여자들의 이상형일 자격이 있다.


영화가 끝나고 OTT 프로그램에서 바로 제안해 주는 다음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열정과 애정’을 이어서 본다. 브리짓의 허당미는 속편에서도 열일 하고 그런 브리짓을 여전히 마크는 있는 그대로 받아 준다. 문제는 마크의 능력이 가진 이면- 그를 찾는 사람이 많고 바쁘다-과 한결같은 묵직함이 가진 이면-상대의 표현을 읽고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순발력의 부재-가 가져온 서운함이다. 1편의 주제가 ‘이런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였다면, 2편의 주제는 ‘나는 그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가’라 할 수 있다.

풋풋하던 시절, 얼마 사귀지 않은 남자친구와 헤어지고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의 애정과 기대, 그의 말과 행동, 그리고 이별의 과정에 대한 수다. ‘남자친구가 감히 나한테 그런 말을, 혹은 행동을 해서 헤어졌다.’는 요지의 내 말을 듣던 친구가 조심스럽게, “그런데 네가 전에도 헤어진 사람에 대해 ‘감히’라는 말을 하는 걸 들었는데 연인 관계에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나는 좀 놀랍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친구의 말이 맞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고 남자친구 앞에 서서 네 애정이 내 성에 차는 지 지켜보겠다, 평가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디든 부족함이 있는 개인으로서 네게 없는 부분이 내게 있음에 감사하며 이해하고 보듬고 때로 참을성 있게 가르치는 관용, 혹은 이를 향한 최소한의 의지조차 내겐 없었다. 나야말로 누구에게건 좋은 연인이 아니었다.


지금 내 남편은 내게 없거나 부족한 것을 기대하거나 요구하지 않는다. 연애 초기에 부끄럽게도 내가 그에게 큰 상처를 준 적이 있었다. 잠깐의 휴식기 후에 헤어지게 될 거라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나를 그는 따뜻하게 용서해주고, 용기를 내어 관계를 발전시켰다. 강하고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그의 사랑 방식이며, 십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그의 애정은 변하지 않았다.


반면 나는 그에게 없는 것을 여전히 찾고 요구한다. 더 다정하고 더 눈치 빠르고 더 재미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그를 채근한다. 이러다가는 여자 셋(내게는 딸이 둘 있다.)이 나이든 그를 빼놓고 함께 놀고 여행을 다닐 거라고, 그 때가서 외로워하며 후회하게 될 거라고 협박도 한다. 한편으로는 알고 있다. 나 또한 다정하고 눈치 빠르고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며, 이런 내 곁에 한결같이 있어준 사람이 그라서 나의 짝이 되었음을.

속편의 브리짓 존스는 자기 연민에 빠져 홧김에 마크와 헤어지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은 후에 후회하며 다시 그의 곁에 돌아간다. 그런 그를 너그럽게 받아 주는 그의 이름 마크 다아시, 역시 나의 이상형.


나는 아주 오래 전, 남편과의 관계에서 이미 위기와 후회를 겪었기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더 많이 기대하고 요구하려는 나의 욕심을 마주할 때마다 스스로를 타이르고 설득한다.


콜린 퍼스처럼 190cm의 장신은 아니지만, 잘생긴 영국 배우는 아니지만, 나는 이미 나의 이상형을 만나 그와 함께 살고 있다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주는 그 남자, 내 곁에 있는 바로 그 사람.


P.S 그래서 브리짓은 마크와 아름다운 결혼 생활을 했나? 3편인 ‘브리짓 존스의 베이비’의 스포일러 격이 되는 이야기라 자세히 밝힐 순 없지만, 어쨌든 마크처럼 매력적이고 한결같고 지적인 사람과도 결혼 생활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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