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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여행자

잘 떠나기

by 차차

"골반을 밀지도, 또한 말지도 않은 중립 상태로, 발의 넓이를 골반과 같은 너비로 해 섭니다. 갈비뼈를 닫고 정수리는 천장을 향해, 키가 더 커집니다. 어깨를 앞으로, 뒤로 돌려 겨드랑이 뒤쪽에 힘을 실어요. 벌어진 날개뼈가 당겨지는 것을 느낍니다." 필라테스 선생님의 아름다운 표현.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이자 몸맵시가 단정해지고 각 근육들은 긴장을 하며 균형을 잡는다. 이 퀄리티 높은 가르침과 쾌적한 기구 사용이 시간당 4만원이라니! 선생님의 가르침과 나의 배움 사이를 연결하는 고요하고 자연스런 나의 모국어.


뉴저지에 가면 어떤 운동을 어디에서 할지 어떻게 알아 보아야 하나, 비용은 얼마를 지불하는 것이 적절한 가, 영어로 진행되는 그 무엇이 자연스럽기 위해 나는 얼마나 고군분투 할 것인지 또 떠올리고 만다.


6년째 제주에서 살고 있는 우리 가족은 올해 여름, 뉴저지로 이주하여 일년 반동안을 살다 올 계획이다. 얼마 전, 남편이 방문할 뉴욕의 대학교에 지원을 마치자, 나는 두 고양이, 두 딸과 실수 없는 정착을 해내기 위해 많은 것을 찾아보고, 그래도 여전히 잘 모르고, 그러다 그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치우고 있다.


당장은 가족의 비자 사진을 찍고, 미국의 초등학교와 인천공항검역소에 전화를 해 딸들과 고양이의 예방접종을 마치고, 치과와 안과 검진을 한 후, 당근 마켓에 어린이 책과 철지난 아이들의 놀잇감을 올리고 팔았다. 내일은 주문한 이사박스 10개가 택배로 올 것이고, 네 식구의 겨울 옷과 난방 용품들을 살펴, 버릴 지, 보관할 지, 비행기에 넣어 실어갈 지를 결정하여 나눠 담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난 연말에 연수 시기와 장소를 정하고 나서는 뜬구름같은 설렘과 막연한 불안함으로 흥분되면서도 초조했다.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아 불편한 마음이 드는 것임을 알았지만, 무엇을 준비하기에는 너무 일러 다만 지켜보며 기다려야 했다.


3월이 시작되고, 매일 해야 할 일들이 넘쳐나니 분주한 중에 마음은 조금 느긋해 졌다. 그러면서도 뉴저지의 높은 물가와 미국 동부의 문화, 미국 내 한인 사회의 독특함 등을 찾아보다 걱정이나 긴장이 찾아오면, 남편과 '제주여행자놀이'를 시작한다.


집 근처 용마트에서 쌀이랑 같이 배달 시킨 방어 회, 200 그램 한 팩에 9천원이다. "오빠, 이거 로컬 로우 피쉬, 한 접시 6달러야. 진짜 매일 먹자." "와우, 소이소스랑 와사비, 칠리소스는 서비스, 집 앞까지 배달인데 팁도 없다니." 우리 뉴저지에서 이거 먹을려면 100불인 거 알지? 팁 25프로 별도."

이런 식으로 둘다 미국 살아 본적 없는 무지함이 수준에 맞는 대화를 이어간다.


어느날은 둘이 제주현대미술관에 가는데 오는 동안 교통 체증도, 주차 문제도 전혀 없었음을 깨닫는다.

"오빠, 차끌고 MOMA 갈려봐. 우리 조지워싱턴 다리에서 한 시간 걸렸다. 평일 주차비 70불, 맨해튼 통행료 25불. 우리 이미 100불 썼음요." "이것 봐, 여기 전시 설명 다 한글이야. 한자어 말 많지만 그래도 뜻 완전 자다 이해 되는데, 이거 영어로 써있어봐. 안 그래도 현대미술인데 너무 낯설듯. "


이런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꼭 복잡하고 고단한 어떤 곳에 살다가 고향에 잠시 휴양 온 기분이 든다. 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사람 대화 내용이 들리는 것도, 사람들의 표정이나 옷차림, 말투를 통해 생각이나 기분, 생활 방식을 쉽게 짐작하고 오해 없는 대화를 비교적 쉽게 나눌 수 있는 것도 신통하고 감사하다.


무엇보다, 제주의 땅에 구르는 돌과, 구멍에 자라난 이끼, 흙을 덮은 양치식물과 무성히 자란 야자수, 얼굴을 내미는 노루와 담비, 얼음으로 포장된 겨울의 구상나무 잎사귀, 짐승처럼 하얀 눈털을 덮은 한라산의 엎드린 등이 그리울 것 같다.


떠나기 전 미리 아껴 살피고, 앞서 그리워하기. 나

제주를 잠시 떠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준비를 나는 지금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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