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시골 일기 12 - 음식, 농사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10월 중순이 지나가기 시작하면, 알비토 일대는 올리브 수확으로 바빠진다.
우리 집도 소규모이긴 하지만, 올리브 나무들이 제법 있고 목초지에는 야생 올리브 나무들이 많다. 옆집, 맞은편 집, 그 옆집은, 우리 집에 비하면 엄청난 수의 올리브 나무들이 잔뜩!
알이 굵은 올리브는 시부모님께서 직접 따셔서, 절임을 만드시는 용이다.
커피 그라인더 같은 기계에 올리브 알들을 넣고, 손으로 핸들을 돌리면 올리브 표면에 미세한 홈이 난다. 이 올리브 알들을 그냥 물에 푹 담가두는데, 이는 올리브 특유의 쓰고 떫은맛을 빼기 위해서라고. 중간중간 맛을 보고 물을 갈아주는데 이 과정을 끝내면 떫고 쓴 맛은 빠지고 올리브 특유의 향과 맛이 남는다. 이 과정을 포어로는 adocar아두싸르 라고 한다고. 직역하자면, 달게 한다, 무르게 한다, 부드럽게 한다라는 뜻이다. 이후엔 개인마다 집집마다 취향에 따라 양념을 하는데, 시댁에선 월계수 잎과 오레가노, 소금으로 양념을 한다. 올리브 오일과 마늘을 넣고 절이기도 하고, 매운 재료를 쓰기도 하고, 제각각 다른 허브를 넣기도 하고... 올리브 품종별로, 익은 정도 별로, 또 개인별 취향껏 양념하는 방법 별로 맛은 천차만별! 이런 올리브 절임은 집에서, 식당에서, 바에서 보통 식전에 혹은 가볍게 집어 먹을 수 있게 낸다. 시댁 올리브 절임은 아주 간단하고, 간단하기에 올리브 본연의 맛에 충실한 맛이다.
이 지역의 올리브 나무는 워낙 개체수가 많기 때문에 따로 일손을 구하지 않으면 추수철에 추수하는 것이 힘들다. 알베르토 말로는 옛날엔 (7~80년대 까지) 주로 집시들이 많이 고용되었단다. 당시 집시들은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올리브 추수나 토마토, 오렌지 추수처럼 계절 일감이 있으면 단기간 일을 하고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곤 하다가 떠났다고. 또 마을 사람들이 쓰던 옷가지나 물건을 얻어 가기도 했단다. 지금은 집시 대신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지역에서 온 노동자들과, 이 지역 토박이들 중 계절 일감을 주로 맡아하는 사람들이 주로 일한다. 이런 계절노동자들이 많다고는 해도 추수철에는 손이 모자라서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고용하기가 힘들다. 우리 집도 시아버님께서 가까스로 한 팀을 섭외 성공!
해 뜰 무렵부터 시작해서 오후까지 일 해주시는데, 우리 집은 올리브 나무가 별로 많지 않아서 3일 정도면 끝난다.
나무와 나무 사이에 커다란 그물을 놓고, 기다랗고 가느다란 막대기로 올리브가 열려 있는 잔가지들을 사정없이 털어준다. 내 눈엔 그냥 사정없이 터는 것으로 보이는데, 신랑 말로는 요령이 있고 터는 작업이 상당히 힘들다고. 그물에는 올리브 알들과 잎들과 잔가지들이 같이 떨어지는데, 큰 가지와 잎 무더기들은 걷어내고, 올리브 알과 잎사귀들만 남긴다. 털어야 할 나무들이 끝도 안 보이네.. 그래서 그런가, 다 같이 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하시더라. 한 명이 선창을 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후렴조로 같이 합창하는 노래인데, 가사는 못 알아들어도 "아, 이것은 노동요!" 구나 싶다. 역시 어느 문화권이나 사람들이 힘든 일을 함께 하면서, 고생을 잊고 기운 내려고 하는 방식은 비슷하다.
한가득 모은 올리브는 매일 커다란 트럭 뒤에 싣고, 가장 가까운 올리브 오일 공장으로 향한다. 보통 오일 짜는 올리브들은 알이 작은 올리브라고. 품종별로 가격이 다르고, 보통은 연식 있는 올리브 나무에서 난 올리브일수록 가격을 더 쳐준단다. 연식 있는 올리브일수록, 향미도 더 있고, 맛도 풍부하다고. 신랑 말로는 포르투갈은 아직도 이런 재래식 방법으로 기르고 추수하는 경우가 많단다. 게다가 연식 있고 굵고 가지가 많고 따라서 산출이 많은 올리브여야, 가지를 터는 방식으로 추수할 수 있다고.
최근 알란테주 남부에 스페인 식품 회사가 땅을 사서, 아예 처음부터 대규모 플랜테이션 방식으로 올리브 농장과 착유 공장을 같이 지었단다. 여기에 가 보면, 아직 묘목과 성목 중간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올리브 나무들이 빼곡히 일정하게 열을 지어 늘어서 있다. 당연히 이렇게 심고 관리하면 병충해 방제 작업과 (쉽게 말해 농약 치는 일), 기계 추수가 가능하다. 작은 올리브 나무 위로 천천히 지나가면서 올리브 열매들을 흡입하는 기계로 추수하기 때문에 사람이 추수하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면적당 생산량과 가성비는 올라갈 것이고, '규모의 경제'가 실현될 것이다. 또 맛이 항상 균질화될 것이다. 그리고 기계 작업을 가능케 하기 위해 나무의 크기도 비슷하게 관리할 것이다.
신랑은 이런 '대규모 방식'을 싫어한다.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올리브유는 fake로 느껴진단다.
"올리브는 말이야, 와인과 같은 거야. 조금씩 다른 게 정상이야. 우리 집이랑 근처만 해도 오래된 올리브 나무가 정말 많거든. 종류별로 또 같은 종이래도 위치별로 조금씩 맛이 달라. 햇빛 받는 정도와 기후, 토질에서도 영향을 받아. 그래서 당연히 연별로도 차이가 나. 그런데 대량 생산하는 올리브유는 블렌딩을 통해 맛을 똑같이 맞추거든. 자연스럽지 않아. 물론 대량으로 생산하고 팔려면 그렇게 해야만 하겠지."
"김치 같은 건가? 김치도 공장에서 만들고, 식품회사에서 만들어서 팔거든. 그리고 대개 맛이 아주 나쁘지도 않고, 아주 좋지도 않아. 물론 회사별로 좀 차이는 나지만, 김치 하면 기대할 수 있는 그 맛이야. 더도 덜도 아닌. 그런데 집에서 담그는 김치는 다 달라. 배추를 어떤 걸 쓰냐, 고춧가루와 젓갈은 뭘 얼마큼 쓰느냐, 또 부재료를 뭘 넣느냐 등등, 변수가 무척 많으니깐."
"비슷한 거 같아. 대량생산과 다양성이 같이 간다는 것은 사실 어불성설일지도 몰라."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아니지 백문이 불여일미라고 해야 하나, '페이크 아닌 레알 올리브유'를 맛본 적이 있다. 올여름에 사촌 안토니오가,
"고향에 계신 아버지의 지인이 생산하는 올리브유야, 정말 좋아"라며 권한 적이 있다. 어떻게 먹으면 되냐고 했더니, 그냥 평범한 식사빵을 찍어 먹어 보란다. 그대로 해서 입안에 넣었더니, 입 안 가득 올리브 향이 좌악 퍼지는데 그렇게 향긋하고 맛있을 수가 없다. "너무 향긋하다. 이거 빵 계속 들어가겠다!" 했더니, "다르지?" 하면서 웃는다. (위 사진의 오른쪽 아래, 빵 옆에 있는 종지에 담긴 것이 그 올리브유다. 색깔도 진하다)
워낙 올리브가 많고 다양하고, 또 올리브유며 올리브 절임을 무척 즐기는 포르투갈에서는 (요리하는데 기본적으로 들이붓는! 올리브유의 양을 보면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한국 부모님 댁에서 3~4개월 쓸 올리브유를 포르투갈에서는 2주면 다 쓸 듯!) 올리브 오일 공장에서도 오일을 만들지만, 가정에서나 협동조합 단위 소규모로 오일을 짜기도 한다. 요즘에는 일반 슈퍼마켓, 유기농 상점, 소형 상점에도 이런 올리브 오일을 많이 들여놓는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신랑은 코웃음 치면서,
"구르메니 유기농이니 비싸게 팔고 그러지만 다 별 거 아니고, 시골서는 옛날서부터 그렇게 만들고 먹었던 거라니깐!"이라고 하고, 나도 여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처럼 시골을 책으로 배운 사람은, '대량생산과는 조금 다른 다양한 맛들'에 대한 경험도, 면역도 없다. 자연스럽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원래 자연이 베풀어 주는 것들은 다 이렇게 다양하고 풍부하고 적당하구나! 하면서 말이다.
좀 더 많이, 좀 더 빨리 얻으려고 인간이 취한 선택지들은, 그래서 다분히 근시안적이 될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의도대로 되는 것 같아도, 결국엔 고유의 특성이 엷어지고, 그러다 보면 공허해지고 싫증난 사람들은 또 똑같은 것을 되풀이하거나 비싼 품을 들여 다시 회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