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좋은 것,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와인

포르투갈 시골 일기 17 - 와인

by 마싸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Boa é a vida, mas melhor é o vinho 인생은 좋은 것,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와인.

- 포르투갈의 유명 시인 페르난두 페수아가 한 말이다. 포르투갈 역시, 이웃나라 스페인과 프랑스만큼 와인을 많이 생산하고 소비하고 사랑하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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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포르투갈 여권이 새로 바뀌기 이전의 여권엔, 페르난두 페수아의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었다. 한 나라를 상징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시인으로 본다는 얘기. 살아생전 인정 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엄청난 원고가 발견, 재평가가 이루어진 시인이라고. 페수아는 작품에서 자신의 인격을 해체시켜, 몇십 개의 인격으로 취급했다고! (여권 캐리커쳐도 3명의 페수아가 같이 모여 있는 그림이다)



그중에서도 알비토가 있는 지역인 알란테주는 포르투갈 전체 와인 시장의 50% 가까이를 생산하는 지역이다.

(알란테주 와인이 포르투갈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양volume으로 볼 때 44.7%, 금액value으로 볼 때 45.5%이다. ACNielsen 데이터, 2014.1~12까지 기준, "Discover Alentejo Wines"에서 인용. www.vinhosdoalentejo.pt)


이 지역 와인 생산의 역사 역시 꽤 오래되었고

(로마인들이 이베리아 반도에 왔을 때, 이미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정설이란다 http://www.vinhosdoalentejo.pt/en/wines/wine-history/)

가가호호 와인을 담그는 일도 흔하고, 포도 생산자와 와인 메이커들이 함께 와인협동조합을 꾸려서 담그고 판매하기도 하고 (시아버님께서도 몇 년 전까지 직접 와인을 담그셨다. 지금은 생산은 하지 않으시지만, 와인협동조합의 일원으로 계시다), 상업적 와이너리도 많다. 지역 슈퍼마켓이나 가게에 가서 다양한 와인을 고르고 마셔보고, 좋아하는 와인을 찾아내고, 또다시 새로운 와인을 마셔보는 재미도 쏠쏠하고, 시간이나 기회가 있으면 근처 와이너리도 가끔 구경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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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dade do Rocim 로심 에르다드는 알비토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와이너리로, 신랑이랑 내가 둘 다 좋아하는 와인을 만든다.

포르투갈 와인 병에 보면,

Herdade 에르다드,

Monte 몬트,

Quinta 퀸따

라는 글을 많이 볼 수 있다. 모두 와인 생산장소를 가리키는 말이다. (프랑스와인으로 치면 샤토château)

에르다드는 Adega 아데가 (와인 셀러 cellar, 와인 양조장)와 포도밭까지를 포함하는 좀 넓은 장원 개념?이고, 몬트는 농가, 농장을 가리키는 말이고, 퀸따는 몬트와 비슷한데 포르투갈 북쪽에서 좀 더 널리 쓰이는 말이란다.

셋 다 규모 차이는 있지만, 모두 와인을 만드는 곳에 흔히 쓰인다. ('와이너리' 혹은, '와이너리+포도밭')

단, 이 단어가 붙었다고 해서, 모두가 와인을 생산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냥 몬트도 있고, 와인을 만드는 몬트도 있다는 얘기!


에르다드 로심의 홍보관/사무실 및 와인 양조장 건물은 앞뒤 옆으로 펼쳐진 포도밭 가운데 위치해있다.
살짝 오르막 도보가 있어, 전망이 탁 트였는데, 정문 앞에서 보는 주위 경치가 아주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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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인에게 개방을 하는데, 방문 규모에 따라 예약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방문은 혼자 둘러보는 것이 아닌, 가이드 투어이다. 역시 방문 규모에 따라 유료인 경우도 있고, 무료인 경우도 있다. 나와 알베르토는 산책 나간 길에 들려, 가능한 시간을 물어본 후,
("다음 주 월요일에 혹시 가이드 투어 되나요?"
"그럼요, 오후 2시 이후에 아무 때나 오세요")
그 시간에 맞춰, 예약 없이 방문, 바로 가이드 투어를 할 수 있었다.
신랑이 포르투갈어 가능한 포르투갈인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게다가 동네 사람!) 포르투갈어 외 다른 언어 가이드 투어는 미리 예약이 필요할 듯. http://rocim.pt/contact/contacts/



척 친절하고 상냥한 여자분께서 가이드 투어를 해주셨다.

와인의 첫 번째 발효가 이루어지는 장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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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발효와 숙성이 이루어지는 곳을 거쳐

(사진에 보이는 커다란 토기는 탈랴Talha 라고 한다. 2천 년 전, 로마인들이 전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알란테주에서도 옛날엔 탈랴를 많이 썼단다 - 여기에다 자연발효를 시켰다고. 그러다 설비 현대화와 대량 생산화에 잠시 주춤하다가, 요즘 들어 다시 활발하게 연구와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단다. 탈랴 와인은 태생적으로 가가호호 생산-판매자들이 활발하게 쓰던 방식으로, 아무래도 '소량 생산과 개성/특징'과 좀 더 가깝지, 대량 생산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내가 이해한 바!)

실험연구실과 포도밭, 저장소까지 두루두루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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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끄트머리엔, 원하는 종류로 시음해 볼 수 있는 카페 겸 바에 들려서, 추천받거나 혹은 원하는 종류로 2~3개 골라 시음할 수 있다. (단일품종인 alicante bouschet 레드와인, 내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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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의 마지막은 다시 페수아의 글귀.

"나에게 와인을 좀 더 다오, 인생은 아무것도 아니라오"

(일반인이 이야기했더라면 그냥 핏~하며 넘어갈 만한 이야기이나, 천재 시인의 말이므로 울림이 좀 다르다)


언어와 지식 부족의 장벽으로,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지만...

가이드해주신 분께서, 다양한 품종의 포도를 블렌딩 하고, 발효과정을 다양하게 실험하면서, 새로우면서도 맛이 좋은 와인을 빚어내려는 갖가지 시도를 몇 개 예시로 설명해주셨는데, 감동 깊게 들었다.
발효라는 미세하고도 무수한 다양성의 과정을, 인간이 통제한다는 착각을 행여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아주 미세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 과정에서 혀와 후각을 떨리게 하는 결과들이 나올 수 있다는 것! - 괜히 발효주의 세계가 오묘하고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친한 친구가 막걸리 전문점을 운영한 적이 있어, 그 친구 덕에 다양한 양조장에서 생산한 막걸리와 증류주를 맛보곤 했었다. 신랑 역시, 한국 술 중엔 막걸리, 좀 덜 달고 도수가 있는 막걸리와 그 친구가 추천해 준 술을 제일 좋아한다. 그 친구가 얘기해 준 "오묘하고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발효주의 세계" 이야기도 항상 재미나게 들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

- 술 역시, 음식처럼, 제 철, 그 땅에서 자고 나란 것으로, 천천히 담금질한 것이 제일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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