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에 살고 와인에 살고

포르투갈 시골 일기 19 - 와인

by 마싸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포르투갈 역시 이웃나라 프랑스와 스페인과 더불어 오랫동안 와인을 생산하고 사랑해 온 나라로, 한국에는 주로 달달한 주정강화 와인인 포트와인이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 현지인들은 다양한 풍미의 레드와 화이트 와인을 보다 많이 즐기고 또 생산하는데, 그중에서도 포르투갈 전체 와인 시장의 50% 가까이 생산하는 지역 알란테주에서는 오랫동안 가가호호 와인을 담그는 일도 흔했다.

우리 집은 이 알란테주 지역 시골 마을에 있고, 다른 포르투갈 가정처럼 우리 집 역시 점심과 저녁때 와인이 빠지지 않는다. 시댁에도 조그만 와인 양조장이 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시아버지께서 직접 소규모로 와인을 담그셨다고. 지금은 더 이상 직접 생산은 하시지 않으시고, 이 지역 와인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다. 신랑도 이전엔 포도를 납품하곤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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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양조장. 지금은 쓰지 않고 창고가 되었다. 하지만 설비, 병, 잔 등은 그대로! 벽에는 와인을 담그고, 즐기던 사진이 붙어 있다.



비디게이라-쿠바-알비토 와인협동조합 Adega Cooperativa de Vidiguiera, Cuba e Alvito은 3개 인접 마을의 포도 생산 농부와 와인 메이커들이 함께 만들어 활동하는 협동조합으로 1960년대에 설립되었다. 3개 마을의 인구를 다 합쳐도 만 명이 조금 넘는 시골마을의 협동조합이라 규모는 크지 않지만 (300명 정도의 조합원이 활동하고 있다), 규모가 전부는 아니다. 협동조합이니 당연히 특정 기업이나 특정인의 이익을 목표로 하지 않고, 조합원들의 수평적인 의사결정과 지속 가능한 활동을 전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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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안내소와 바로 뒤, 생산공장. "우와, 내가 십 년 전 쯤에 포도 납품할때보다 더 커졌네~" 라며, 오랜만에 온 신랑의 감탄사.



또한 조합원 간의 친목도모 활동도 활발한데, 이 지역 전통음악 합창단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깐트 알란테자누 Cante Alentejano (알란테주 노래)는,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알란테주 지역의 전통 민속 음악인데, 무반주 합창으로 농사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 부르던 노래에서 시작되었다고. 와인도 함께 만들고, 노래도 함께 부르고, 그야말로 ‘충만하게 즐기는 삶’이라고 할 만하다!

20171110_160435.jpg 협동조합 합창단. 그야말로 노래와 와인이 함께하는 삶!



협동조합 와인 중 대표작은, 이 지역 출신 포르투갈 항해가인 바스쿠 다 가마를 모티브로 한 와인 시리즈로 “비디게이라, 와인이 하나의 여행이 될 때" (Vidiguieira, Quando o vinho é uma viagem) 가 모토이다. 학교에서 한 번쯤 이름을 들어보았을 바스쿠 다 가마는, 흔히 대항해시대라고 일컬어지는 15세기경, 70년 동안 3번에 걸쳐 인도를 오갔던 항해가이다.

와인별로 "항해의 전조", "출발", "그리움", "영감" 등등, 꽤 시적으로 이름을 붙였다.

요즘으로 치면 스토리텔링에 성공한 케이스랄까?!

"오늘 저녁엔 비디게이라 와인 중에서 그리움 편을 마셔보자"라며, 와인을 마시면 왠지 좀 더 시적으로 다가올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도 있다 - 몇 백 년 전, 바다로 나갔던 사람들도 떠나기 전날 밤, 언제 다시 볼지 모르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와인을 나누었겠지, 그리고 멀리 떠나 있을 때는 고향에서 가져온 와인을 마시면서 그리움을 달랬겠지 하는 상상도 해 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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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동조합 뒤편, 전시장+안내소+바의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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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전시장. 다품종 블렌딩, 단일품종 / 레드, 화이트 / 와인, 리큐르 등 종류별로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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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바로 옆의 바. 종류별로 시음할 수 있다.



한국만큼 춥지는 않지만 이곳 역시 겨울이 있는데, 시골이라 그런지 더 싸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벽난로를 피우고 불꽃을 보면서 와인 한 병을 신랑과 같이 나누어 마시면 대화가 이어져도, 끊겨도, 어느 쪽이건 좋다. 멀리서 가끔 들리는 양 떼 방울 소리와 개 짖는 소리, 벽난로의 장작 타는 소리, 그리고 나무 냄새와 와인이 어우러지면 하루를 충만하게 잘 보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와인에 곁들여 제철인 밤이나 향이 좋은 버섯을 벽난로에 구워 먹어도 좋고, 와인과 찰떡궁합인 지역 생산 치즈나, 지역 특산물인 흑돼지 햄을 먹어도 좋다. 어디를 가건, 그 지역에서 나고 만든 것을 제철에 먹는 것만큼 몸과 마음과 혀에 좋은 것은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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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에 오실 일이 있다면 남부 지역 와이너리를 꼭 방문해보시길!

계절에 따라 벽난로는 없을 수 있겠지만 와이너리 별로 각자의 스토리와 풍미가 다른 와인을 맛보고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니, 꼭 추천한다. 포르투갈 남부는 특히 시골의 정취가 많이 남아있어, 와인과 풍경과 소박한 사람들을 다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 2019.1 샘터 매거진에 실은 글에 사진을 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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