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시골 일기 18 - 음식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흔히 포르투갈 하면 떠오르는 대표 디저트는 에그 타르트.
포어로는 파스텔 드 나타pastel de nata 라 불리는 에그 타르트는, 포르투갈 및 구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마카우를 중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파스텔은 파이, 나타는 (커스터드) 크림을 의미하는데, 말 그대로 바삭바삭한 파이지 안에, 우유, 설탕, 계란 노른자를 섞은 크림을 넣어 구운 것! 재료를 보면 쉽게 짐작하겠지만, 달고 고소하고 부드러워서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맛이다. 그냥 먹어도 맛있고, 취향에 따라 계피 파우더를 뿌려 먹어도 맛있고, 따뜻할 때 먹어도 맛있고, 식었을 때 먹어도 웬만큼 맛있다. 따뜻한 커피와 먹어도 맛있고, 우유랑 먹어도 맛있다. '원조' 에그 타르트로 유명한 제과점에는 항상 줄이 길고 (원조는 '파스텔 드 나타'가 아니고, '파스텔 드 벨렘'이라고 구분을 짓기도 한다), 다른 웬만한 제과점에서 먹어도 꽤 맛있는 디저트.
에그타르트를 비롯한 포르투갈의 '달달구리' confection / sweets 역사는, 포르투갈이 해상무역을 활발히 하던 15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향료 무역과 더불어 식민지를 통한 설탕 산업도 붐을 탄 것. 그리고 이런 활발한 단과자류 (케이크, 파이, 페스트리 등) 생산의 직접적인 거점은 바로 수도원!
예를 들어, 알비토에서 40km 정도 떨어진, 우리 가족이 자주 마실 가는 도시 에보라에는, 16세기 당시 11개 수도원에서 단 과자류를 만들었단다. 에보라가 절대 큰 곳도 아닌데, 수도원만 11개라니. 포르투갈처럼
조그만 나라 치고, 수도원을 중심으로 한 단 과자류의 양과 종류는 무척 많고 다양한 셈!
왜 하필 수도원인가요?라는 질문에 전설같이 전해 내려 오는 설명은 이렇다
- 흔히 사제복이나 수녀복의 칼라나 테두리 같은 흰 부분을 빳빳하게 풀을 먹이는 데 계란 흰자를 썼고, 그러다 보니 노른자가 너무 남아돌았다고. 그래서 그 남아도는 노른자를 어떻게 처리하나 궁리하다 보니 노른자와 설탕을 왕창 쓴 다양한 디저트들이 나왔다고. 혹은, 이보단 좀 더 단순한 답을 내기도 한다
- 그거야 수도원에서는 시간이 많았으니까!라고. (*제일 아래 참조)
포르투갈 단 과자류는 계란 노른자와 설탕을 기본으로, 밀가루, 견과류, 계피, 바닐라, 코코넛, 향신료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든다. 지금까지도 오래된 옛날 당시의 조리법에 기반해서 생산되는 단 과자류가 200여 개 정도 된다고.
그럼 에그타르트 말고 뭐가 있을까?
신랑이 좋아해서 소개해 준 달달구리 중에서 몇 개 꼽아보면 다음과 같다. 주로 우리 집 근처 동네에서 먹은 것 위주로, 수도인 리스본은 물론 포르투갈의 다른 도시에서도 어렵지 않게 맛볼 수 있는 디저트들이다.
(참고로 천상 포르투갈 사람인 신랑의 디저트 취향은 처음부터 끝까지 달고 진한 맛, 나에게는 너무 부담스럽게 달고 진한 맛을 추구한다. 나는 조금 먹고 나면 "이제 바로 겨울잠을 자도 될 것 같아. 오늘 섭취한 달달함이면 40일 겨울잠 잘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케이자다 드 레케이자웅 Queijadas de Requeijão 은 치즈케이크 타르트.
레케이자웅은 리코타 치즈와 비슷한 포르투갈 치즈로 가볍고 아주 살짝 신 맛이 난다. 치즈 디저트나 스프레드 만드는 데 쓰인다고. 이 레케이자웅을 넣어서 만든 타르트가 케이자다이다. 투박하고 퍽퍽할 것 같이 생겼는데, 한 입 베어 물면 촉촉하게 넘어간다. 크림치즈를 주재료로 만든 치즈케이크와도, 치즈 수플레와도 맛과 식감이 다르다. 묵직하게 시작하는데 가볍게 넘어가는 맛! 디저트 취향이 다른 신랑과 내가 둘 다 좋아하는 품목.
파웅 드 랄라pão de rala는 계란, 설탕, 레몬, 아몬드로 만든 부드러운 단 케이크. 질라gila가 안에 들어있다. 질라는 호박류 채소인데, 속을 달달하게 쨈-버무림 중간 형태로 만들어 필링으로 많이 쓴다. 질라를 넣은 도넛도 있고, 케이크 종류도, 파이도 있다. 질라는 향과 식감이 살짝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호박죽 느낌?! 이 나서 나쁘지 않았는데, 대체적으로 너무 달아서 많이는 못 먹는다.
아로즈 도스Arroz Doce는 쌀 푸딩이다. 쌀, 설탕, 우유, 계란에 레몬, 바닐라를 첨가하고, 위에 계핏가루를 뿌리는 경우가 많다. 식감은 죽인데, 맛은 프렌치토스트?! 랄까. 다 아는 익숙한 재료들인데, 맛과 식감이 내가 익숙한 것과 달라 재미있다. 다른 '계란 노른자 계열' 디저트보다는 덜 달다. 집에서 쉽게 많이 만들어 먹는 디저트이다.
아몬드 파이도 추천한다. 실온에서 일주일도 넘게 보관이 가능한데 (가을 날씨 기준), 항상 똑같은 맛으로 맛있다. 호두 파이랑 비슷한데, 더 맛있다. 신랑은 견과류를 좋아하고, 나는 견과류 별로인데, 둘 다 좋아하는 디저트! 참, 아몬드는 포르투갈 남부에서 특히 많이 난다.
트루샤쉬 드 오부쉬Trouxas de ovos는 패스... 한 입 먹고 입안이 설탕으로 타는 줄 알았다. 무척 단 것은 물론, 계란의 묵직한 맛까지... 계란 노른자와 설탕만으로 만드는 것이란다. 알베르토는 "추억의 맛, 그리웠어~" 하면서 잘도 넘기던데, 나는 보는 것만으로도 혈관에 설탕이 흐르는 줄 알았다. 개인적으로는 절대 비추이나, 계란 설탕 맛의 정수를 용기 있게?! 경험하고 싶은 사람은 시도해 보시길.
엠파다 드 갈리냐Empada de Galinha, 닭고기 파이는 단 과자류가 아닌, 짠맛/식사 계열.
다진 닭고기를 주재료로 넣어 구운 파이인데, 따뜻하게 먹어도 맛있고, 식어도 맛있고,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 주문을 외우면서) 마요네즈를 발라 먹어도 맛있다. 체중계를 생각하지 않고 먹으면 앉은자리에서 3개까지 먹을 수 있을 듯. 와인과 같이 먹으면 또 더 맛있다.
볼라 드 베를링Bola de Berlim 은 도넛이다.
해변쪽으로 보이는 사람들 중, 하얀 캡 모자를 쓰신 남자분이, 볼라 드 베를링bola de Berlim을 파시는 분.
볼라 드 베를링은 튀긴 도넛으로, 겉에는 설탕 듬뿍, 안에는 달달구리 계란-버터-우유 베이스의 크림이 들어간 포르투갈에서 많이 먹는 도넛이다.
특별히 맛있다, 일품이다 라기 보단, 모르는 사람이 먹어도 왠지 친숙한, 싫어할 수 없는,
촌스러운데 가끔 당기는 맛.
알베르토 말에 의하면, 어렸을 때 해변에 놀러 오면 항상 아이스크림 아니면 볼라 드 베를링을 파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 두개씩 군것질을 했다고.
그런 이야기 때문인지,
박스를 매고 다니면서 부르는 사람들에게 파는 방식이 왠지 친숙해서인지,
게다가 아저씨가 크게 "볼라 드 베를리~이~잉~" 라고 외치면서 다니는 게 말만 다르지 "찹쌀떠억~ 메밀무욱~" 과 비슷하게 들려서 그런지, 왠지 정겹다.
물론 일반 제과점에도 볼라 드 베를링을 판다만, 해변가에서 "아저씨! 여기 볼라 드 베를링 2개, 아이스크림 2개요!"라고 해서 사 먹는 건 맛이 다르다. 절대적인 맛은 제과점이 더 좋을 수 있다만, 장소와 분위기, 그리고 추억이 환기하는 느낌 역시 맛을 좌우하니 말이다.
* 수도원과 포르투갈 디저트 관련
Fabrico Próprio: The Design of Portuguese Semi-Industrial Confectionery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믿음과 칩거의 장소는 종종 진정한 창조의 실험실이기도 했다. 이 곳에서 종교인들은 오래된 조리법을 바꾸기도 하고, 세계 곳곳에서 온 새로운 재료들을 실험하는 데 전념했다"라고.
https://www.eater.com/2017/6/28/15876268/portuguese-pastries-sweets-convents-monasteries 참조
... Why were nuns and monks such major players in pastry? Legend has it that they starched their laundry with egg whites and had to come up with a use for all the excess yolks. But the truth is, they simply had the time. Rita João and Pedro Ferreira, authors of the Portuguese pastry encyclopedia Fabrico Próprio: The Design of Portuguese Semi-Industrial Confectionery, write, “These places of faith and seclusion were often true laboratories of creation, where the religious dedicated themselves to rescuing old recipes, or to testing new ingredients from all over the world.”
아마 둘 다이지 않을까? 유럽, 특히 포르투갈 같은 가톨릭 국가에서 중세-근대의 수도원은 비단 종교뿐만 아니라, 학문, 사회, 문화적으로 활발한 역할을 했으리라. 더불어 수도원 자체의 재산 축적과 경제 활동도 가능했으니, 이러한 환경에서 일반 민중들보다는 좀 더 여유 있는 일상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기도와 수도를 하되, 학문을 연구하고, 맥주를 생산하고, 달달구리도 만들고... 더구나 수도원장을 필두로 위계적으로 짜여있는 조직이니 일테면 팀워크를 발휘하여 생산력을 높이고 체계적으로 정리-전수할 수 있는 환경도 가능하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