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의 풍성한 식탁 - 빵 수프와 빵 죽

포르투갈 시골 일기 13 - 음식

by 마싸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알비토가 있는 알란테주 지역은 포르투갈 남부 지역으로, 농업과 목축업 위주인 지역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땅이 척박하고 물이 귀해서 재배 품종이 다양하거나 생산량이 많지는 않았다고. 알란테주 토박이인 알베르토와 가족들, 그 친구들은 물론, 내가 만난 포르투갈 사람들 대부분이

"알란테주는 전통적으로 포르투갈에서 가장 가난했던 지역"

이라고들 얘기한다.

그래서 그런지 '전형적인 알란테주 음식'도 무척 단순하다는 것이 알베르토의 설명. 예를 들어, 산업과 상업이 비교적 일찍부터 발달한 '좀 더 잘 사는' 북쪽 (포르투Porto 일대)에선 상대적으로 고기를 많이 쓴다. 그리고 남쪽과 대서양 해안지역은 생선과 해산물이 풍부하다. 그럼 '뭐가 딱히 별로 없는' 알란테주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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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올리브, 허브!


빵은 가난한 사람들도 비교적 쉽게 싸게 구할 수 있는 식재료인데, 알란테주에서는 정말 알뜰살뜰 빵을 활용한다. 또 올리브와 허브는 척박한 땅에서도 햇빛을 받으면 튼튼하게 자라는 고마운 존재다.

이 단순한 식재료, 즉 며칠 지나 굳어진 빵, 물, 올리브 오일, 허브에 마늘을 더하면, 여럿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수프가 만들어진다! 이름하야, 아소르다 드 알류Açorda de Alho (마늘 빵 수프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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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은 보통 주먹 2~3배 만한 크기의 한 덩어리를 사는데, 우리 집이나 시댁 같은 경우 한 끼에 1/2~ 2/3 정도 먹는다. 먹고 남은 빵은 다음 끼니때도 먹는데, 보통 하루가 지나면 굳어지기 시작해서 잘 먹지 않는다. 이 굳어지기 시작한 자투리 빵을 잘라서 커다란 볼 아래에 깐다.

그리고 여기에 끓인 물을 붓는다. 포르투갈 집집마다 항상 있는 식재료, 바까야우Bacalhau가 있으면 한 토막을 넣어 끓여도 되지만 그냥 맹물도 ok! 여기에 소금, 으깬 마늘, 들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허브 (쇠비름, 오레가노나 고수 등, 취향껏 선택)를 넣어 섞는다. 계란이 있다면 수란을 한 두 개 올린다. 취향에 따라 치즈를 넣어도 되고, 포르투갈 염장 햄이나 소시지를 곁들여도 된다. (치즈와 프로준투, 소시지 등은 보통 알비토 집에 항상 있는 편!)

(*바까야우Bacalhau 는 소금에 절여 말린 대구와, 그것으로 만든 요리를 뜻한다. 명실공히 포르투갈의 소울푸드이자 국민 식재료라고 일컬어도 손색이 없다. 포르투갈과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국가/지역에서 흔히 먹고, 포르투갈에만 천 가지가 넘는 레시피가 있다고 하며, 집집마다 고유의 레시피가 있다고들 한다)


20161008_132244.jpg 주방에 항상 걸려있는 소시지. 고기 종류, 사용 부위 별로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보통 상당히 짭짤하기에 와인과 같이 먹으면 별미!
20180620_100451.jpg 시장에서 파는 바까야우. 짭쪼름한 생선 냄새가 상당히 강하다. 일반 마트에서도 많이 파는데, 근처에 가면 바로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처음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는 건가 싶었는데, 먹으면 먹을수록 매력이 있다. 심지어 가끔씩 먹고 싶단 생각도 든다. 느끼하지도 않고, 속도 편하고, 고소하고, 빵-올리브-허브가 어우러진 향과 맛도 훌륭하고, 적당한 감칠맛도 있고, 뜨거운 물에 살짝 풀어지기 시작하는 딱딱한 빵의 식감도 좋고... 알란테주 부심과 알란테주에 대한 애정이 상당한 신랑은 물론, 내 주위의 포르투갈 친구들도 이 단순한 음식을 좋아한다. 별미도 아니고, 특별할 것도 없고, 심심한 듯 정말 단순하지만,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음식.

게다가 무척 풍성하다 - 남은 빵 자투리를 몽땅 털어 넣어 큰 빵 한 덩어리 분량 정도로 맞추면, 4~5인 가족은 실컷 배불리 먹을 수 있다.

이 수프를 알란테주 지역에서는 아소르다Açorda라고 한다. 빵 수프인 셈.

같은 요리인데, 리스본이나 다른 지역에서는 '알란테주 수프'라고 한다는 게 신랑의 말. 그만큼 알란테주에서 많이 먹는 음식이라는 얘기.


빵 수프만 있는 게 아니고, 빵 죽?! 도 있다. 미가쉬Migas라 불리는 이 요리는, 아소르다와 마찬가지로, 보통 2~3일 정도 된 딱딱한 빵을 커다란 볼 아래 깔고, 끓인 물이나 육수를 부어 주는 것 까지는 비슷하다. 그러나 액체를 수프처럼 많이 붓는 게 아니고, 일종의 빵 죽?처럼 만든다. 스튜, 육수, 물, 계란 등과 딱딱해지기 시작하는 빵을 섞어 죽이나 풀처럼 약간 퍽퍽하게 만들어 먹는데, 당연히 올리브 오일을 듬뿍 넣어 적당히 부드럽고 향이 좋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굳어지기 시작한 빵, 올리브 오일, 계란, 토마토를 섞은 미가쉬 드 토마트Migas de tomate 이다. 새콤하고 고소한 맛이 씹을수록 일품이고,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하고 편하다. 만들기도 쉽고, 재료도 간단하고, 남은 빵도 깔끔하고 훌륭하게 처치할 수 있고, 맛도 있고 - 여러 모로 안 좋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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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3_133805.jpg 위 2개 사진은 바까야우 미가쉬, 제일 아래는 토마토 미가쉬이다.


그런데 포르투갈의 많은 식당을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이 음식들을 식당에서 본 적은 없다. 알베르토 말에 의하면, 옛날에는 식당에서 찾아볼 수 없었는데 요즘 들어, 리스본같은 대도시 중심으로 '지역별미' 메뉴를 내는 데가 늘면서 가끔씩 팔기도 한다고. "당연히 집에서 먹는 그 맛은 아니야"라는 것이 신랑의 말.

식당에서 팔기에는 너무 소박하고 '별 것 없는' 음식이어서 그런지, 정식 메뉴로 만들어서 팔기에는 굳은 빵을 항상 구비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둘 다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긴 식당에서 먹으면, 신랑 말대로 그 맛이 안 날 것도 같으다. 아소르다나 미가쉬는 집에 있는 남은 빵에, 그날 그날 당기는 허브를 뜯어서 넣고, 집에 있는 향 좋은 올리브유를 써서 푸짐하게 큰 그릇 한가득 해서, 다같이 나눠 먹어야 좀 더 맛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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