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시골 일기 01 - 음식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시어머니께서 만드신 맛있는 가정식도, 곳곳의 레스토랑에서 맛보는 다양한 진미도, 모두 다 맛있지만, 알비토 집에서의 소박한 아침식사만큼 질리지 않는 것은 없다. 포르투갈을 떠나 있을 때 제일 생각나는 풍경 중 하나도 역시 아침 식탁 풍경이다 - 다들 잠이 살짝은 덜 깬 상태로, 때로는 야외 테라스, 때로는 부엌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다 보면 서서히 몸과 마음이 깨어난다. 오늘은 뭘 할까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같이 떠들썩하게 신나 하는 것도 좋다.
아침식사 메뉴는 단순한 편이다.
먼저 하루 전에 산 신선한 빵 - 알란테주 빵은 부드럽기보다는 쫄깃하고, 과하지 않게 거칠다. 밥으로 치면 현미밥. 씹을수록 고소하고 쉬이 질리지 않고 든든하다. 마을마다 빵집이 한 두 개씩 있는데, 식사빵은 보통 새벽과 오후 늦게 2번씩 구워서 판다.
그리고 버터 - 우리 가족이 좋아하는 버터는 아조레스Açores에서 만든 버터. 아조레스는 포르투갈 본토에서 거진 1,500km 떨어진 포르투갈 령으로, 총 9개의 섬이 있다고. 청정환경에서 자라는 소와 유제품이 유명하단다. 멀리 떨어진 깨끗하고 외딴섬의 이미지가 더해져서 그런가, 소들도 분명 싱싱?!, 그런 소들이 만들어 내는 우유며 버터도 똑같이 싱싱?! 하겠지 라면서 먹게 된다.
씹는 맛이 있는 빵에, 고소하고 묵직한 버터를 발라 먹으면, 이미 아침식사의 반은 되었다. 기본적이고 단순하고, 그러기에 든든하게 몸과 머리를 슬슬 깨워준다. 빵과 버터가 충실한 기본이라면, 나머지는 좀 더 다양한 먹는 즐거움을 주는데...
먼저 생치즈. 케이주 프레스쿠Queijo fresco 라고 부르는 이 치즈는, 두부 같은 하얀 덩어리로 보통 근교 농가에서 생산-판매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담백하고 고소하고 우유맛이 많이 난다. 1살 반 아들은 그냥 먹고, 어른들은 소금을 살짝 뿌려서 먹는다. 케이주 프레스쿠로 만든 치즈케이크도 있는데, 무척 부드럽고 촉촉하고 적당히 달달하다.
계란 프라이. 계란은 전날이나 그날 아침에 닭장에 가서 집어 온다. 2년 전에는 15마리의 까만 암탉들이 쉴 새 없이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먹이를 찾고, 역시나 부지런히 알을 낳았는데, 작년부터는 쾌적하고 넓은 닭장을 개보수하고 닭 수도 조금 더 늘렸다. 닭들이 꼬꼬 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이 내 눈엔 귀엽고 신선? 해 보여서 좋던데, 알베르토는 닭들이 저렇게 돌아다니면 텃밭에 들어가서 작물을 망치고 정원을 파헤쳐서 좋지 않다면서 투덜 투덜이다. 시골을 책으로 배운 나와, 생활로 아는 신랑의 관점은 상당히 다르다. 하지만 방목을 하건 닭장에 있건, 하루 전 혹은 30분 전에 낳은 달걀을 먹는 것은 감사할 만한 사치다. 닭장 안 짚 속을 뒤져서 달걀을 발견하는 것은 매번 해도 질리지 않는다. 매번 "어머! 또 하나 더 찾았어!"라면서 흥분하게 된다.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달걀을 조심조심 바구니에 담아와 깨끗이 물에 씻어 마른 수건 위에 올려놓으면, 그 반질반질한 게 어찌나 이쁜지! 한 알 한 알이 다 예쁘고 맛있게 먹힌다.
계절 과일. 알비토 집에선 여름에는 멜론과 무화과, 여름-가을에는 포도와 사과, 겨울-봄에는 오렌지가 난다.
다 시아버지와 막내 도련님께서 돌보시는 것들로, 제철 전에는 살짝 새콤, 제철에는 무척 달콤하고 과즙이 뚝뚝 흐른다. 멜론은 반을 뚝 잘라 씨를 빼낸 후 숟가락으로 과육을 파 먹는다. 반을 가르는 순간, 멜론 향이 화악하고 퍼지는데 냄새로 벌써 맛있다. 무화과는 모양과 크기가 좀 들쑥날쑥인데, 끈적끈적하고 달달한 맛은 다 똑같다. 포도는 껍질채 먹는 무척 단 포도로, 새들이 호시탐탐 노리는 과일 1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제철의 오렌지 - 그렇게 알이 굵고 과즙이 많고 달 수가 없다. 집 앞 과수원에서 오렌지를 따와 2~3개 정도 즙을 짜서 들이키면 다른 것은 필요 없다.
이렇게 아침을 먹고 나면,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것을 온전히 잘 섭취했다는 느낌이 든다. 아조레스 버터야 비행기나 배를 타고 좀 멀리서 왔다만, 빵이며 치즈, 계란, 과일, 다 지역이나 집에서 생산한 것들이다. 그리고 가공의 과정이 별로 개입되지 않은 것들이다. 내 눈과 손으로 보고 느끼고, 바로 입으로 들어가니, 일용할 하루 시작의 식사를 내어준 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감사하다는 마음이 든다. 비단 우리 시부모님이나 도련님뿐만 아니고, 닭들한테도 고맙고, 빵집 아주머니께도 고맙고, 다양하고 풍성한 과일들을 내어 준 나무들도 고맙고 - 이렇게 제법 시적인 감수성도 들고 겸허한 마음도 든다. 이렇게 좋은 음식들을 잘 먹었으니, 오늘 하루도 또 잘 시작해보자 라는 기운도 나고!
이래서 "잘" 먹어야 한다.
여담이지만, 생각해보니 한국을 떠나 있을 때 제일 생각나는 음식도, "친정 엄마의 아침밥"이다. 음식 종류는 다르지만, 소박하고 단순하고 그래서 질리지 않는 것, 건강한 것이라는 건 공통인 듯.
친정집 아침은 전형적인 한식인데 잡곡밥, 김구이, 나물 한 종류, 김치, 그리고 계란찜/두부조림/어묵 볶음 등이 바꿔가면서 올라온다. 신랑이 제일 좋아하는 한식 차림도 이 아침인데, 특별히 "구운 김에 밥 올린 다음에, 김치 한 조각 올려서 싸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단다 - 실제로도 이걸 제일 잘 먹는다.
마음에 남고, 몸이 기억하는 충만한 식사는 종류는 다를 지라도, 다 이런 것이지 않을까?
단순하고 신선하고 무언가를 많이 덧붙이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