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구경 - 공간과 사람이 함께 다정히 나이 들어간다

포르투갈 시골 일기 15 - 집

by 마싸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이전에도 한 번 썼듯이, 시골마을 알비토에서 친척과 친구들을 방문하면 으레 집을 구경시켜주신다. 외국인인 내 입장에서는 문 손잡이 하나도 다 신기할뿐더러 (한국에서는 잘 보기 힘든 '사람 손 모양 문 손잡이' 같은 것...), 보통은 한 집에서 몇십 년은 기본, 혹은 몇 세대를 산 경우도 있어 온갖 오래된 소품과 거기에 담긴 이야기들을 듣는 것도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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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6986.JPG 칼라네 부모님 댁 거실. 오래되어 보이는 샹들리에와 의자, 카페트, 촛대, 벽난로가 다같이 잘 어울린다.

알비토 옆 동네인 베자Beja에 사는 알베르토 형수님 칼라의 부모님 댁은, 알베르토 말에 의하면 "새 집"이다. 얼마 된 집인데, 얼마나 오랫동안 사신 건데 하고 물어보면, 글쎄, 아마 70년대 정도부터 사셨을 거야 라는 게 신랑의 대답.

"아니, 그럼 대충 잡아도 4~50년이쟎아! 그게 새 집이야?!"라는 내 말에,

그렇게 오래된 집은 아니란 얘기지 라는 것이 알쏭달쏭한 신랑의 대답.

하긴 알비토집은 19세기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집이니, 1970년대부터 시작된 집은 일단 "새 집"이라고 여길만 하다.

지하 공간이 꽤 넓고 높은 1층짜리 집엔, 방만해도 8~10개, 거실과 서재, 칼라의 작업실, 넓은 식당이 있어서 대충 둘러보는 것만 해도 30분은 걸린다. 게다가 칼라는 나에게 하나하나 다 보여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 하고, 나는 또 궁금하고 재미있으니 물어보니 시간이 더 걸린다. 결혼 전에 이 집에 살면서 있던 이야기들, 젊었을 적 이야기들, 칼라의 부모님들께서 젊으셨을 때의 이야기들, 본인이 작업하는 액세서리 이야기들, 칼라가 무척 예뻐하는 친정 애완견의 재롱에 동물들 이야기까지, 이야기가 끊기지 않는다. (와중에 "새 집"에 별로 재미가 없는 알베르토는 발길을 서두르고!)

"새 집"이 이 정도인데, "좀 된 집"인 알베르토 이모님 댁은 그야말로 이야기의 화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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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 장식과 시계, 등, 액자와 같은 소품까지, 척 봐도 세월이 느껴지는 알베르토 이모님 댁은 3층짜리 대저택이다. 알비토 지역 유지였던 귀부인이 소유했던 집인데 ("아마도 18세기 후반? 19세기? 때 집이 아니었을까?"라는 게 신랑의 추측), 많이 낡아가고 있던 이 집을 1960년인가, 70년대에 알베르토의 조부께서 사셨다고. 그리고 그 집에 지역 아이들 대상, 학교를 열어 운영하셨단다. 한동안 학교를 운영하시다가 접으신 후, 계속 사시다가 두 분이 돌아가신 후에는 알베르토의 이모님께서 물려받으셨다. 지금은 이모님과 딸 둘, 즉 알베르토의 사촌 둘이 살고 있는 집이다. 척 봐도, "옛날 옛날 최소 하인들과 요리사, 정원사가 딸린 시절" 규모여서, 3명이 사는 지금은 대부분 닫아 놓고, 실제로 쓰는 공간은 1층과 2층의 방 일부 정도이다.


여긴 알베르토가 어렸을 때 몇 년 동안 살았던 집이기도 하다. 당시 도보 3분 거리에 사시던 시부모님께서, 둘째이던 알베르토 아래로 셋째, 넷째인 누노와 알렉산더를 낳으셔서 알베르토는 몇 년 정도 할아버지 할머님과 같이 살았다고. 하긴 같은 골목에 부모님 댁, 할아버지 댁, 이모 댁들이 모여 있으니, 자는 장소만 다르지 아이들이 시간을 보내는 장소는 거기서 거기였을 것이다. (지금도 별로 다르지 않다 - 도보 5분 거리에 시댁, 셋째네 집, 다섯째네 집, 그리고 둘째인 알베르토네 집이 다 모여있고, 사돈댁들도 다 가깝다)

거실, 응접실, 서재, 손님방, 부엌, (옛날) 하인 방들이 있는 1층, 침실들이 있는 2층과 3층 다락 및 창고, 그리고 아주 넓은 안뜰 정원과 텃밭, 그 정원을 지나면 나오는 별채까지 딸린 아주 큰 집으로, 어린 소년이었던 알베르토에게는 무척 흥미진진한 놀이 장소이자 탐험 장소였을 것이다 - 실제로도 그랬단다. 할아버지를 따라 정원에서 텃밭 가꾸기를 배우고, 다락부터 1층까지 오르락내리락하고, 술래잡기도 했을 거고, 다락에 난 창으로 보이는 알비토 지붕들 풍경을 보다가 비둘기들을 쫓기도 하고, 부엌에서 형제들과 간식 훔쳐먹기도 하고, 어떨 땐 큰 수프 그릇에다가 수영복을 던져 넣어서 혼나기도 하고... 집에서만 놀아도 절대 지루하지 않았을 것 같다. 게다가 형제들이며, 사촌들, 또래 동네 친구들이 항상 있었을 테니, 더더욱 지루할 틈이 없었을 것이다. 이 집에 가면 신랑은 할 이야기들이 항상 많다. 곳곳에 어린 시절의 추억과 이야기들이 가득이고, 듣기에도 재미있다. 이 오래되고 넓은 집에서 혼자, 혹은 놀이친구들과 같이 놀았을 소년 시절의 신랑을 상상하다 보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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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알베르토의 사촌이 쓰는 침실과, 안뜰의 자전거 작업장.
20171105_160132.jpg 정원을 지나면 나오는 별채 공간. 대규모 식당이자 홀이 있다.



이모님 댁 집에 비하면 작은 집이지만, 알베르토가 어렸을 때 신랑과 형제들을 돌봐주시곤 하셨던 유모님의 집도 레몬 나무들과 텃밭이 무척 잘 가꿔진 아늑한 집이다.

정확힌 몰라도 90에 가까우신 80대 이실 거야 라고 신랑이 말한, 유모님 댁에 우리 가족이 다 같이 인사를 드리러 방문했는데, 아마 거의 평생을 사신 집이라고! 낡아서 좀 초라하다, 지저분하다는 느낌은 일도 없이, 당신 자신처럼 어찌나 깔끔하게 잘 가꾸어 놓으셨는지. 안뜰의 레몬나무, 오렌지 나무와 텃밭 채소들은 싱싱하고, 본채와 조그만 별채까지 아기자기하고 깔끔하게 잘도 정리하고 가꾸어 놓으셨다. 가끔 와서 묵고 가는 자녀와 손자 손녀의 공간까지도 무척 아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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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와 별채의 부엌. 별채는 잘 쓰지 않으신다는데도, 무척 깔끔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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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손 모양의 손잡이가 달린 문 - 보배가 큰 흥미를 보였다. 과 조그만 작업실 공간.



깔끔한 노부인인 유모님 댁이 집주인처럼 깔끔하고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집이라면, 알베르토 친구인 떼쥬의 집 역시 주인을 닮았다. 떼쥬는 자유로운 영혼의 싱글남인데, 무척 재미있는 사람이다.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취미인 텃밭 가꾸기, 그림 그리기 (특히 알비토 풍경과 고양이 그리기를 좋아한다), 독서를 즐긴다. 나이가 지긋하신 노모와 함께 살고 있고, 친 남동생의 가족이 바로 정원을 사이에 두고 살고 있다.

정원과 텃밭엔 레몬이나 오렌지처럼 이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식물도 있고, 잘 보지 못하는 별별 신기한 꽃과 식물들도 가득하다. 거실과 복도에는 떼쥬가 수집한 그림과 직접 그린 그림들이 걸려있고, 서재에는 당연히 책이 가득!


20171113_174822.jpg 밤에 찍은 떼쥬네 정원. 뭐가 다양하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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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3_180236.jpg 떼쥬의 개성과 취미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거실과 서재.


알비토와 이 근처 일대의 친척과 친구들 집을 방문하는 것은 그래서 매번 재미있다.

최소 한 세대 혹은 그 이전으로 올라가는 역사가 오롯이 담긴 공간과 소품들을 보는 즐거움, 거기에 얽힌 이야기를 듣는 즐거움은 기본이다. 그리고 이 지역 집들이 대개 그런가, 조그맣더라도 텃밭이 없는 집이 없는데, 텃밭의 나무와 식물, 꽃들 보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맑은 시골 공기 아래 싱싱하게 저마다의 빛깔을 뽐내는 다양한 식물들을 보고, 냄새 맡는 게 얼마나 신선한 자극인지. 개, 고양이, 닭, 새 등 집집마다 다른 애완동물과 인사 트는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공간과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이 함께 다정하게 시간을 보내고 나이 들어가는 흔적들을 보는 것도 좋다 - 이모님의 집은 이모님과 가족의 이야기와 흔적들이 있고, 유모님의 집은 유모님을 닮았고, 떼쥬의 집은 떼쥬의 개성이 보인다.

"어머, 이 가구는 어디 거예요? 멋지네", "TV 바꿨구나, 좋다", "요즘 000가 유행이라고 하던데 그 인테리어 한 거죠? 멋지다"라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도 나쁘지 않고, 신제품/신인테리어 구경도 나름 재미있다. 그리고 짧게 살든, 길게 살든 공간은 살고 있는 사람의 개성을 어떻게든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선, 여기에서처럼 몇십 년 "터를 잡고 살아간다"는 것이 아직까진 쉽지 않고, 그러기에 가능한 '공간과 사람이 함께 주고받는 상호작용과 다정함'이 덜 하다는 생각을 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 다르긴 할 것이지만, 내가 평생 살 공간, 나 다음엔 내 가족이나 자녀가 살아갈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면, 아무래도 집을 대하는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좀 다르지 않을까?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흔적들도 다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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