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시골 일기 08 - 일상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처음 알비토집에 들어섰을 때 놀랐던 기억이 난다.
무척 오래되었네, 그런데도 이렇게 멀쩡하고 훌륭하게 잘 쓰고 있네 라는 데에 놀라고, 그리고 집 구석구석 가족의 흔적과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감동을 받았다.
대문을 지나 목초지와 나무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주욱 걸으면 나오는 하얀색 알비토집은 알베르토의 고조할아버지께서 터를 닦아 짓고 (19C 중후반), 그 이후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대까지 주욱 내려오다가, 할아버지께서 신랑에게 바로 물려주신 집이다. 알비토 중심가에서 차로 3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작은 단층집으로, 목초지와 과수원으로 둘러싸여 있고 집 바로 옆에 물탱크를 끼고 있다.
35도는 쉽게 넘어가는 포르투갈 남부의 건조하고 뜨거운 여름 날씨에 잘 적응된 집으로, 벽이 매우 두껍고, 물탱크가 일종의 자연 쿨러 역할도 한다. 물탱크의 물은 약 300m 정도 떨어진 깊은 우물에서 끌어온 물이 계속 조금씩 흐르는 식으로 깨끗함을 유지하는데, 여름엔 훌륭한 수영장이 된다.
물탱크 앞은 잔디밭과 야외 테라스.
보배가 걸음마 연습하고, 우리 가족과 동물 가족들이 다 같이 놀고 낮잠 자고,
아침도 먹고, 그릴에 생선과 소시지를 구워서 점심을 먹기도 하는 곳.
아침에는 햇볕이 잘 들고, 점심 이후에는 알아서 나무 그늘이 잘 생기는 곳이다.
집에 들어서면 벽난로가 왼쪽에 있고, 오른쪽으로 거실, 식사 공간, 주방, 욕실과 침실들이 주욱 나온다.
거실에 있는 큰 궤짝은 알베르토 할아버지께서 물려받으신 것이라고 하고, 가구들도 척 봐도 이케아 제품은 아니다. 집이 생길 때부터 있던 것과 그전부터 있었던 것들이 대부분! 이 일대의 풍차 방앗간이 문을 닫을 때 들고 왔다는 대형 맷돌도 있고, "아마 19세기 말 정도에 쓰던 것이지 않을까?"라고 신랑이 긴가민가해 한 옛날식 스토브도 있다. 벽에 걸린 그림과 사진도 19세기 ~ 20세기 초부터 시작한다. 알비토의 100년 전 모습을 그린 그림과 사진도 있고, 19세기 포르투갈의 유명 풍자가의 그림도 있다.
"와~ 이 집에 있는 거, 다 진품명품 나가야 되는 거 아냐?" 했더니,
"음... 아마 어느 정도는 흥미로운 게 있을 거야"
라면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기는 신랑이다.
(포르투갈에도 우리나라의 "TV쇼 진품명품"같은 쇼가 있다고.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찍기도 한단다)
100년 넘어 보이는 궤짝 안에는 도대체 뭐가 들었어라고 물어보니, 직접 열어보란다.
옛날 사진과 엽서, 어렸을 때 신랑이 열심히 모았다는 동전, 책과 잡지들이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다.
신랑이 1~2살 때, 시어머님께서 쓰신 "육아수첩"도 발견!
태어났을 땐 3kg 780g, 돌 무렵엔 13kg이었네! 보배 무거운 게, 다 아빠 닮은 거구나.
첫 친구들은 누구누구, 조아웅은 "자"라고 불렀다고. 아하하하, 귀엽네.
이렇게 한 페이지씩 넘기며, 옛날 사진 보면서 같이 웃으니 새삼스럽다.
신랑은 사진 넘겨보면서,
이건 이 집에서 4살 때인가 찍은 거야.
아, 그리고 저건 사촌 안토니오가 어렸을 때네. 잔디밭쪽 현관문이야. 그때 말이야... 하면서 이 집에 얽힌 추억들을 새록새록 꺼내 놓는다.
거실 장식장을 열어보면, 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신랑이 여행 다니면서 아프리카와 동티모르에서 가져온 공예품도 있지만,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께 물려받으신 그릇과 옛날 실험 도구 키트 같은 것도 있고,
20세기 초쯤에 썼을 것 같은 카메라도 있고,
무척 오래된 앨범도 있다!
이 앨범은 도대체 누구 앨범이야하고 열어봤더니, 1900년대 초 사진과 엽서가 나온다. 신랑이 엽서를 들고 읽더니 싱긋 웃는다.
"이거 1910년 당시 벨기에 리에주에서 공부하시던 우리 증조할아버지께서, 당신의 대모님께 쓴 엽서네"란다.
"와, 정말 놀랍다"
"뭐가?"
"이 집에 당신 가족의 기억과 흔적이 아직까지 이렇게 남아 있고, 100년 지나서 후손들이 이걸 이렇게 보고 있다는 게. 1910년에는 어땠을까? 1차 세계대전 전이었을 거 아냐. 여기서 리에주까지 갈려면 뭘 타고 갔으려나? 얼마나 걸렸을까?
당신 증조부께서는 100년 후에, 당신 증손자가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온 여자랑 결혼해서 고손자를 낳을 거라는 걸 상상도 못 하셨겠지. 그때는 한국이란 나라도 당연히 모르셨을 테고... 신기하다. 시간 여행하는 느낌이야."
"아하하하~ 그러게."
하면서 신랑이랑 같이 살짝 감개무량했다.
신랑이 한국 우리 친정집에 왔을 때, 부모님 댁은 무척 미니멀리스트 느낌이야 라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알비토 집에 와보니, 신랑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살짝 상상이 간다. 신랑에게, 신랑 가족에게 집은 한 가족의 연대기를 담고 있는 곳이다. 오랫동안 한 마을에서 가족들이 터를 잡고 대를 이어 살아왔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그 기억과 흔적들이 남아있는 곳.
한국 친정집은 전형적인 도시 아파트이다. 그리고 우리 집 역시, 전형적인? 도시인의 생활패턴으로 살아왔다. 아버지의 사업 따라 거주지를 옮기고, 전셋값 때문에 많이도 옮기고, 지금은 아파트 청약 당첨을 기다렸다가 옮긴 곳. 10년 정도 된 아파트이고, 얼마 정도 더 살 수 있을지는 아파트 상태와 집값 변동과 기타 환경 변화 등등에 따라 달려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가, 내게 있어 한국에서 집으로 느껴지는 곳은, 어떤 공간이라기보단 "엄마 아빠가 계신 곳"이다. 따뜻하고 그리운 곳이긴 하지만, 알비토 집에서처럼 공간이 가지는 기억과 차곡차곡 쌓인 시간의 무게감은 없다.
언젠가 알베르토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집 잘 쓰고, 고칠 부분 잘 고쳐서 나중에 보배한테 물려주고 싶어"라고 한 적이 있다. 알비토집에 녹아든 지금은, 그 말이 단순히 부동산 상속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안다. 보배가 지금의 우리 나이가 되어, 자기가 꾸린 가족이 있다면 그 가족과 함께 와서 머물렀으면 좋겠다. 걸음마할 때의 사진, 산책하는 사진을 가족들에게 보여주면서 옛날 얘기해주고, 같이 산책하면서 알비토집에서의 추억을 이야기해주면 좋겠다. 자기가 선택한 삶의 방식에 따라 오래 머물 수도 있고, 짧게 머물 수도 있을 테지만, "마음의 고향이자 정다운 집"으로 기억될 수 있는 장소가 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