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시골 일기 16 - 음식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생산과 보존 기술, 유통의 발달로 많은 식재료들을 계절 혹은 원산지에 관계없이 구할 수 있게 되었다만, 그래도 제일 풍부한 맛을 내는 것은 제철, 제 장소에서다. (기왕 덧붙이자면, 대량생산 유통보다는 깨끗하고 최대한 자연에서 자라 바로 수확한 것!)
신선함이나 맛도 중요하지만, 제철의 음식이 자아내는 계절감이라는 것도 음식을 즐기는 데 일조한다.
더워지기 시작할 때 '팥빙수 개시', '냉면 개시'를 보면서, "아, 여름이네. 오늘은 빙수 먹어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든가, 군밤이며 호빵 찜기에서 나는 연기가 반가워진다든가 하는 것 - 종류는 달라도, 계절과 음식을 함께 느끼는 것은 어디나 비슷하리라.
알비토에서 느끼는 제철의 맛 역시 계절과 함께 간다.
추운 겨울에는 아무래도 수프 종류!
알란테주에서 전통적으로 많이 먹는 빵죽과 빵수프를 많이 요리한다. 사실 주 재료야 딱히 계절감을 타지 않는 빵과 올리브유, 마늘, 허브 등이지만, 아무래도 든든한 것이 겨울에 좀 더 어울리는 것이 사실.
(*빵죽과 빵수프는 지난 글 참조)
https://brunch.co.kr/@njj0772/32
이런 일상 음식 외에, 겨울에는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있어 푸짐한 명절 음식을 즐길 수 있는 때이기도 하다. 포르투갈인들의 소울푸드인 바까야우Bacalhau (염장 건조 대구) 요리는 물론, 새끼돼지 통구이, 로스트비프, 로스트 포크, 칠면조 등 메인 요리와 부담스럽게 달달한 각종 디저트까지... (자제하려는) 노력을 해도, 근 2주는 계속 배가 부른 상태로 있게 된다.
그에 비해 여름 음식은 좀 더 산뜻하다.
맛이 산뜻한 것도 있고, 막상 요리해 놓으면 좀 무거운 듯해도 산뜻한 재료?를 쓰는 것도 있다.
텃밭에서 따서 바로 요리하는 민트밥, 시금치밥, 고추볶음이 후자에 해당한다. 사실 여름 전용이라기보단, 아주 한겨울만 빼고 텃밭에서 구할 수 있을 때는 언제든 신선하게 만들 수 있는 음식이다.
약간 죽처럼 끓여낸 민트밥은 버터를 넣고 만든다. 위에 올라가는 민트는 정말 톡 쏘는 그냥 민트인데, 의외로 버터밥과 잘 어울려서 놀랐다. 시금치밥은, 아침에 텃밭에서 바로 딴 시금치를 잘 다듬어, 미리 끓이기 시작한 밥에 투하, 올리브유도 듬뿍 넣으면 된다. 금세 느끼하고 고소하고 맛있는 리조또 느낌의 시금치밥 완성! 밥에 넣고 남은 시금치는 시금치 오믈렛에 활용한다.
텃밭에 자라는 포르투갈 고추는, 한국 풋고추보다 더 짧고, 말랑하고, 껍질이 좀 더 두껍고, 매운맛이 거의 없다. 이 고추를 올리브유를 듬뿍 두른 팬에서 튀기듯이 볶는다. "듬뿍"이 정말 "듬~뿌~우~욱" 이어서 놀랐으나 (하루 종일 튀김 만들어 팔 스케일로 기름을 넣어서 깜짝 놀랐으나..), 맛은 좋다. 고추는 당일 아침 텃밭에서, 계란은 바로 닭장에서!
파바쉬favas(잠두콩 혹은 누에콩) 는, 한국에서는 사실 먹어본 기억이 없는 식재료다. 넓적하고 제법 알갱이가 큰 콩으로, 사진은 시아버지께서 기르신 콩을 시어머니께서 요리하신 것. 알비토집에선 늦봄에서 초여름에 수확해 겨울 무렵까지 계속 두고 먹는다. 돼지비계와 츄리수chouriço(말린 돼지고기 소시지)를 조금 넣고, 그 기름으로 볶은 단순한 방식으로 요리하는데, 적당하게 감칠맛과 담백한 맛이 조화롭게 나고, 씹히는 콩 질감이 아주 맛나다.
밥 종류와 파바쉬보다 좀 더 본격적인 여름 제철의 맛들도 있다.
일단은 가스파초Gaspacho - 일종의 냉수프로 한국엔 스페인 식이 널리 알려진 것으로 알고 있다. 알란테주 스타일 가스파초는, 모든 재료를 갈아 만드는 스페인식과는 달리, 토마토, 피망, 오이, 빵의 주 재료를 찹찹찹 잘게 썰어 다져 넣는다. 이 다진 재료들을 큰 볼에 넣고, 올리브 오일, 마늘, 식초, 차가운 물 혹은 얼음/물을 넣어 만드는 것이 알란테주 스타일. 물을 넣기 전, 마지막으로 통째로 말린 오레가노를 잘게 부수어 넣으면 완성! 오레가노 향이 꽤 강한 편인데도 전체적으로는 조화가 된다.
무더운 여름, 딱 냉면이 당기는 날씨인데, 냉면은 없고... 하지만 나름 새콤 짭조름한 냉수프가 있으니, 꽤 맛나게 넘어간다. 여름이니 집 뒤편 야외 테라스에 테이블을 차려, 시원한 화이트 와인과 가스파초, 햄, 치즈와 함께 푸짐하게 점심을 먹고 나면 잠이 솔솔. 그럴 땐, 테이블 옆 잔디밭에 깔개를 깔고 낮잠을 달게 즐긴다.
가스파초보단 덜 산뜻하지만, 여름에 자주 먹는 것은 사르디냐Sardinha, 정어리이다. 정어리는 알란테주에서만 즐기는 것이 아니고 제철이 되면 전국적으로 많이 먹는다. 포르투갈 기념품 중에서도 정어리를 모티브로 만든 것들이 꽤 많을 정도로, 정어리는 꽤 사랑받는 별미! 신랑 말에 따르면, 정어리 제철은 5월~8월이라고.
"기억하기 꽤 쉬워. As sardinhas são boas nos messes sem R. 달 이름에 R이 없는 달에 정어리가 좋다 라는 말이 있거든."
"아하하하, 재미있네. 그러고 보니, 5월에서 8월까진, 월 이름에 R이 안 들어가는구나."
"응, 이때 정어리가 제철이야. 더 통통하고, 알이 없지. 물론 정어리도 냉동된 것을 팔고, 다른 때에도 잡히긴 잡혀. 하지만 다들 당연히 신선한 제철 정어리를 좋아해. 정어리는 보통 근해에서 많이 잡히거든. 항구나 그 근처에서 다 팔려. 토요 시장에서 다들 정어리를 잔뜩 사 와서, 소금간만 해서 그릴에 구워. 그리고 레몬을 살짝 뿌리고. 그렇게 먹는 게 제일 맛있어. 물론 빵 사이에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기도 하고, 샐러드도 곁들이고, 구운 감자도 곁들여서 먹는 것도 맛있어. 하지만 일단 정어리 자체는 복잡하게 양념을 하지 않고, 싱싱한 채 그대로 굽는 게 제일 맛있어"
알비토 집에서도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정어리를 구워 먹는다.
야외 테라스 옆 그릴에서 정어리를 굽고, 소시지도 굽고, 고양이들은 그런 그릴 옆을 떠날 줄을 모르고!
소금 간 해서 갓 구운 정어리에 화이트 와인은 술술 잘도 넘어간다. 각자 좋아하는 방식대로 몇 개씩 먹는다 - 나는 토마토와 양파 샐러드에, 신랑은 빵에 올려 샌드위치로, 시아버지는 감자와 함께.
뭐든지 싱싱하면, 어울리는 술과 같이 먹으면, 또 같이 먹으면, 그리고 야외에서 먹으면, 더 더 맛있는 법! 정어리는 그래서 항상 맛있다.
정어리만큼이나 '여름'스러운 별미는 달팽이! 신랑 말에 의하면, 원래는 알란테주와 그 옆인 알가르브 지역에서 여름에 많이 먹는 별미인데, 요즘엔 리스본에서도 많이 볼 수 있다고.
'냉면 개시', '팥빙수 개시'처럼 '달팽이 있습니다'라는 알림 표시를 6월부터 슬슬 볼 수 있다. 촌스러운 듯 하지만, "아, 여름이구나~ 달팽이가 나오네"라는 왠지 정겨운 계절감을 주는 사인. 물론 나에겐 "여름=달팽이"를 연결시키는 계절감은 없다 - 하지만 슬슬 알아가고 있는 중. 딜리에서 루이와 이야기할 때, 루이 왈,
"나에게 이상적인 휴가는 말이야. 몬쉬크 우리 집에서 여름에 시원하게 들어앉아 차가운 맥주와 짭조름한 달팽이를 까먹으면서 TV를 보고 늘어져 있는 거야."
소재와 디테일은 다르지만, 어떤 느낌인지 왠지 와 닿는 정서.
포르투갈 남부 알란테주, 알가르브에서의 달팽이는
#여름철 #휴가 #야식 #친구들과맥주 #야외에서한잔
등등인, 왠지 정겨운 계절 소재다.
집집마다 조리 방법에 조금씩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올리브유, 마늘, 고수나 다른 허브, 와인을 함께 넣고 끓이거나 쪄서 먹는다. 이쑤시개로 콕 집어, 동그랗게 말면서 쏙 빼내 먹으면 된다. 처음엔 형태가 너무 생생해서 놀랐는데, 막상 먹는 법이나, 식감은 골뱅이랑 비슷하다. 짭조름하고 쫄깃하니 맛있다. 시원한 화이트 와인과, 생치즈/버터/토스트와 곁들이면 아주 궁합이 좋다.
해가 늦게까지 지지 않는 여름에는, 역시 야외에서 저녁을 먹는데...
보배는 주스 쪽쪽 빨면서 키카와 고양이들과 왔다 갔다, 아빠 엄마는 와인에 달팽이 쪽쪽!
해가 서서히 지면서 바람도 살살 불고, 여름에 피는 꽃 향기도 솔솔 나는,
충만한 알비토 집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