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궁금해! 06
2016년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 전엔, 한국은 "Korean War, IT, K-pop" 정도만 알았던 포르투갈인 신랑이 한국에 와서 궁금해하는 별별 것들. 그리고 거기에 답하다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는 한국 이야기.
해외에 처음 나가서 길게 살았던 것은 대학교 마지막 학년 - 교환학생으로 1년을 파리에서 보냈다.
우중충하고 으슬으슬한 날씨가 계속되곤 하던 겨울 끄트머리에 가장 많이 생각났던 것은 짬뽕이었다. 뜨끈하고 빨갛고 얼큰한 국물에 통통한 홍합이며 쫄깃한 오징어가 아름답게 올라가 있고, 후우~하고 입김을 불어가면서 해물들을 뒤적이면 탱탱한 면발이 올라오는 짬뽕을 얼마나 열심히 머릿속에서 그렸는지... 어떨 때는 정말 짬뽕 냄새를 바로 앞에서 맡고 있는 것처럼 입에서 침이 고일 때도 있었다.
'지금 짬뽕이 눈 앞에 나타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국에서라면 전화 한 통화면 될 텐데. 20분이면 그렇게 아름답고 맛있는 짬뽕이 문 앞에 뿅~하고 나타날 텐데...'
라면서 얼마나 한국이 그리웠는지, 짬뽕 하나도 못 시켜먹는?! 이놈의 파리가 얼마나 서러웠는지 모른다. 2000년대 초의 파리, 내가 살았던 곳에서는 (개선문 근처 동네였다), 배달 가능한 음식은 피자 H 하나뿐이었던 데다가, 밤 8시까지만 배달이 되었다. 게다가 8층 다락방이었던 우리 집까지는 가져다주지도 않고, 1층 공용현관 앞에까지 받으러 나가야 했으니, 배달음식에 대한 향수는 무척 컸다.
나가서 살아보니, 온갖 종류의 다양한 음식들을 최대한 따근 하고 갓 나온 상태에서 집 현관 앞까지 배달시켜 먹을 수 있는 것은 절대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배달 음식 문화가 딱히 없는 포르투갈에서 온 신랑의 눈에는, 이런 배달이 완전 신세계!
동네 중국집에서 탕수육, 야끼우동, 짬뽕을 시켜 먹었는데, 단 20분 만에, 그것도 완전 따끈한 상태로, 문 앞까지 배달해 준다는 데에 놀라고,
서비스로 군만두까지 준 것에 두 번 놀라고 ("배달해주는 것도 고마운데, 공짜로 뭘 더 주다니!"),
그릇이 일회용이 아니라, 나중에 다시 가지러 온다는 사실에 세 번 놀라고,
보통 자정까지도 배달이 된다는 사실에 네 번 놀랐다!
"중국 음식뿐만이 아니야!"라며, 집에 들어온 지역 내 배달업체 모음 홍보 리플릿을 쫘악 펼쳐 보였다
- 보쌈, 초밥, 튀긴 치킨, 찜닭, 피자, 찌개와 탕, 해물찜, 죽, 떡볶이, 패스트푸드점 메뉴 등등. 게다가 요즘에는 앱으로 웬만한 식당의 메뉴들을 다 배달시킬 수가 있다고 해주었더니, 그야말로 놀람과 감탄!
이렇게 편할 수가 있다니, 게다가 배달 음식들이 웬만큼 다 맛있다니! 라면서 계속 엄지 척~
나 역시 한국의 배달 인프라가 좋고, 나가 있으면 생각날 때가 많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 식욕이 예전 같지 않아서 그런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배달 없는 곳에서 살아서 그런가, 옛날만큼은 생각나질 않는다. 있으면 좋고, 가끔씩 이용하는 데, 없다고 하면 또 없는 대로 살 만한 서비스랄까?
그래서 그런가, 옛날엔 마냥 좋고 그립기만 하던 배달음식들이 가끔은 다른 시각으로 봐지기도 한다.
밤에 TV를 보다가 출출할 때, 아니면 딱히 출출하지 않지만 뭔가 먹고 싶어 질 때 (몇 년 새, 한국 TV에 음식과 관련된 프로그램이 정~~~ 말 많아졌다고 느낀다),
없으면 그냥 침만 삼키면서 넘어갈 텐데, 배달이 있으니 손쉽게 음식을 시킬 수 있게 된다. 시켜서 먹으면 또 무척 맛있다 - 밤에 먹으면 더 맛있다. 하지만 먹고 나면 또 항상 후회하게 된다. 주로 밤에 먹게 되어서 그런가 속도 더부룩하고, 소화능력이 점점 더 떨어져서 그런가. 아침이면 얼굴도 붓는다.
나의 강한 의지만 있다면야, 야식 유혹쯤이야 얼마든지 자유자재로 이겨낼 수 있어! 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리고 한국의 편리한 대도시 배달 인프라는 이런 욕구를 아주 잘 충족시켜준다. 아주 편리하게, 다양하게, 간단하게 전화 한 통화로, 클릭 한 번으로 배달이 되니, 욕구의 제어가 어렵다. 배달이 없거나, 어렵거나, 덜 하면, 그냥 포기할 텐데, 뭐가 많고 다양하고 맛있고 편리하니깐 배달을 이용하게 된다.
개인의 의지가 강하다면야, 배달 인프라가 아무리 잘 되어 있더라도 안 시킬 사람은 안 시킬 것이나, 사람이란 게 또 그렇지가 않다. 내 욕망이나 의지가 오롯이 나만의 것이기는 쉽지 않은 법 - 특히 대도시의 수많은 소비거리는 나도 모르게, 내 욕망과 편의를 조종한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얻은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좋은 게 있으면 안 좋은 것도 있는 법!
- 편리하고 맛있는 배달 음식이 있으면, 쉽게 늘어나는 살과 후회, 소화불량도 같이 따라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