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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싸 Aug 22. 2019

미역국은 사랑입니다

포르투갈인 신랑의 최애 한식

며칠 전, 뭐를 먹고 체했는지 신랑이 꼬박 이틀을 앓아누웠다.

이틀 동안 설사와 구토를 번갈아 하며, 침대에 누워 골골 앓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셋째 날 조금 기운을 차렸을 때는 너무 반가웠다. 뭐 먹고 싶은 것 없어, 포르투갈 환자 회복식인 치킨 수프를 좀 해 줄까 하고 물어보니, 별 생각이 없단다. 그래도 기력 회복을 하려면 조금씩 먹어야지라고 했더니, 잠시 생각하다가 하는 말이

"그럼, 미역국! 미역국 해 줘!"


반가우면서도 조금 놀랐다.

3년 전 한국 여자와 결혼하기 전엔, 한국 음식은커녕 아시아 음식도 제대로 먹어본 일이 없는 포르투갈인 신랑이, 골골 앓은 후 처음으로 먹고 싶단 음식이 미역국이라니.

신랑은 평생 빵을 주식으로 먹고 살아온 포르투갈 사람인데 말이다.


하긴 미역국은, 밥에 김치를 얹어 구운 김에 싸 먹는 것과 더불어, 신랑의 최애 한식이긴 하다. 처음엔 '밥과 국'이라는 짝을 낯설어했는데, 미역국만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무척 맛있게 잘 먹는다. 원래 생선이나 해산물 같은 '바다 냄새'나는 재료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이런 '재료적인' 측면과 더불어, 특별한 정서적 양념도 있긴 하다.

신랑이 처음 미역국을 맛본 것은, 결혼에 반대하던 친정 부모님께서 처음으로 자고 가라며 방을 내준 다음날 아침 식사 때였다. 평생 아침은 빵과 커피로 먹던 사람이라, 아침부터 미역국, 잡곡밥, 김과 김치 등등의 상차림이 괜찮을는지 좀 신경이 쓰였는데 곁눈질로 보니 웬걸.

너무 잘 먹는 것이 아닌가!

심지어 미역국은 한 대접 더 달라고까지 하길래,

장난스럽게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라고 했더니, 진심으로 맛있단다.

"솔직히 낯설긴 해. 나는 아침에 이렇게 많이 잘 차려진 음식이 익숙하지 않거든. 빵 한두 조각과 커피가 보통이지. 이 아침은 분명 종류나 양이 그보단 많은데,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는 않네. 그리고 이 해초 수프는 정말 맛있다!"

라는 것이 신랑의 솔직한 감상.

계속 긴장상태에 있다가, 처음으로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일종의 신호가 그 아침식사였을 것이다.

어디 멋진 식당에서 먹는 세련된 점심이나 저녁보다, 아침은 좀 더 편안한 식사일 수밖에 없다. 다들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덜 꾸민 좀 더 편안한 상태에서 함께 식사를 하게 되니, 그만큼의 친밀감도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런 분위기에서 같이 먹는 밥은 더 맛있을 수밖에.  


그 이후로도 신랑은 종종 미역국과 '밥-김-김치'를 잘 찾고, 지금도 잘 먹는다. 그리고 이젠 아프고 일어난 후에도, 포르투갈식 수프보단 미역국이 당길 정도가 되었다.

짐작컨대, 이는 음식에 대한 취향의 변화만큼이나, 우리가 좀 더 가족이 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내 몸이 약해져 있을 때는 양분도 양분이지만, 음식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와 사랑을 느끼고 싶은 것이 당연한 법.

내가 굳이 포르투갈 회복식을 만들려면 못 만들리란 법은 없지만 (사실 자신은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고 안쓰러울 때 내가 자연스럽게 먹여주고 싶은 음식은 국과 밥이고, 신랑도 이를 충분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연 3일을 계속 미역국과 미역죽, 닭죽, 다시 미역국, 미역죽을 먹었겠지!


서로 다른 문화와 음식을 경험해온 신랑과 결혼생활을 하면서, 유명 맛집이나 고급 레스토랑도 좋지만, 우리가 매일 먹는 주식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의 밥이나 미역국처럼, 포르투갈의 시골 빵이나 마늘 수프처럼 심심한 듯, 쉽게 입에서 살살 녹거나 화려한 맛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지 사람들'은', 혹은 현지 사람들'' 아는 맛.  

아주 일상적이고 기본적이기 때문에 쉽고 값싸게 먹을 수 있지만, 현지에서만, 바로 그 자리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기도 하다. 비싼 산해진미나 특산품은 오히려 사 오거나 수입할 수 있지만, 매일 구워내는 빵, 아니면 매일 짓는 기름진 밥이나 집에서 끓인 미역국은 정말 딱 그곳들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것이지 않는가.

그리고 이런 음식은, 집. 밥. 이어야 한다. 포르투갈의 중식당이나 일식당에서 나오는 왠지 퍼석퍼석한 쌀밥은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한국의 식당에서도  "아, 밥이 뭔가 이게 아닌데. 이런 식감이 아닌데..." 싶다가, 친정어머니가 해주시는 집밥을 먹으면 확실히 다르다. 콩, 찰현미, 보리 등을 섞은 고소한 잡곡밥이나, 아니면 윤기가 좔좔 흐르는 기름진 흰쌀밥을 먹으면 자연스럽게 입 안에 침이 고인다. 미역국도 마찬가지. 내 취향에 따라 홍합이나 조개를 넣어 끓이고, 마지막에 방앗간에서 짠 한결 고소한 참기름을 톡 떨어뜨린 미역국!


쉽고 단순하지만 식당에서는 맛볼 수 없는 맛. 질리지 않는 맛. 생각하다 보면 입에 침이 고이는 맛.

지금도 역시 그렇다- 오늘 저녁은 미역국을 끓여야겠다.

신랑 취향으로 쇠고기를 넣어 끓이고, 김치를 얹은 쌀밥을 구운 김에 돌돌 말아 준비해야지. 여기에 포르투갈의 맛은, 신랑 고향에서 난 와인을 곁들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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