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모임

포르투갈 시골 일기 42 - 친구, 식사

by 마싸

알비토Alvito는 포르투갈 남동부 알란테주 지역에 있는 인구 2천 명의 작은 마을이다.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낮고 농축산업과 와인 생산이 활발한 곳이다. 차로 달리다 보면, 인가 대신 소와 양들, 올리브 나무, 코르크나무가 끝도 없이 보인다. 수도인 리스본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작고 평화로운 포르투갈 시골 마을인 알비토는 신랑인 알베르토의 고향이다. 동티모르, 한국, 포르투갈을 오고 가는 우리 가족의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자, 충만하고 천천한 삶이 흐르는 곳!



2019.8


오늘은 신랑 친구의 가족들이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 날.

포르투갈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모임을 하게 되면, 모든 일들이 그렇듯이, 좋은 점과 안 좋은 점이 나름 있다.

안 좋은 점은, 무언가 체계가 없다는 것 - 예를 들어 오늘 점심만 해도 그렇다.

친한 친구들 셋이 가족들과 같이 점심 먹자!라고 이야기가 나왔다.

내 친구들 같았으면,

"그럼 우리 그날 메뉴는 뭐 하자, 뭐 시켜먹자, 그럼 누가 음료 사 오고, 누가 과일 사 오기로 할까, 또 각자 뭐뭐를 준비하자, 아니면 장은 누가 보고, 나중에 n/1로 정산하자"

등등 개요, 역할 분담, 일정이 쫙~ 나올 텐데...

신랑과 신랑 친구들은 느긋하기 그지없다.

토요일 점심 (대충 12시~2시 사이라는 얘기), 우리 집에서 점심 먹자, 메뉴는 알란테주식 빵 대구 수프로 하자, 장소는 우리가 제공했으니, 요리는 곤잘로가 하는 것으로.

정도만 정하고 끝.


"그럼 점심에 쓸 재료는 어떻게 해? 빵을 하나 더 주문할까?"

"글쎄, 곤잘로가 한다고 했으니 알아서 가져오지 않을까?"

"대구도 알아서 가져오는 거지?"

"응, 아마도. 자기 집에서 요리해서 가져올 수도 있어."

"아마도???"

"응, 아마도. 혹시 우리 집에서 요리할 수도 있으니, 미리 냄비가 제대로 준비되어 있는지만 확인해놓지 뭐."

"아니, 왜 사전에 그런 걸 미리 안 정하는 거야, 대체?! 곤잘로가 요리를 자기네 집에서 해서 가져오겠다, 아니다 여기 와서 하겠다를 미리 정하면 안 되는 거야?"

"아, 뭐... 자기 집에서 할 수도 있고, 안되면 우리 집에서 하는 거지"


대충 이렇달까...


아니, 자기들끼리 단체 채팅방도 있구먼!

별로 어려운 것도 아닌데, 좀 미리 정리하면 어디가 덧나나 싶게 답답하다.

(나는 정리와 사전 계획에 좀 민감한 편. 신랑은 심하게 느긋하다. 내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신랑의 입장은 나와 정반대리라 :)

그러나 좋은 점은, 누굴 초대한다고 해서, 막 신경 쓰고 미리 뭘 준비하고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초대하는 사람, 초대받는 사람, 모두가 굉장히 느슨하달까.

그리고 좀 늦어지지만, 어떻게든 풍성한 점심을 먹게 된다.

다들 와인과 치즈, 햄 등을 알아서 넉넉하게 들고 오니, 먹을 것이 모자랄 일은 없다. 본 메뉴가 나오기 전, 테이블에 와인과 치즈, 빵, 햄을 차려놓으면 알아서 먹으면서 수다를 떨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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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기로 한 곤잘로는 좀 늦게 왔지만 (알비토 시간관념으로는 별로 늦은 것도 아니지만...), 아무도 개의치 않는다. 주방에서 바로 와인을 따서 친구들과 수다를 한 30분 떨다가, 비로소 천천히 요리를 시작.

하지만 아주 맛있게 빵 대구 수프를 만들어 냈다. 2시 30분 즈음에는 완료!

썩 나쁘지 않다.

장소와 그릇을 제공하기로 한 나와 신랑이 한 일은,

같이 와인 먹고 수다 떨고, 뭐는 어디에 있으니 알아서 써라 정도를 알려준 일?!

종합해보면 우리 중 아무도 손님 초대나 방문에 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니, 썩 괜찮은 셈.


오늘 점심을 같이 한 사람들은 신랑의 오랜 고향 친구들이다.

곤잘로 커플은 아주 최근 남자아이를 낳았고, (1.5개월의 정말 아가아가)

우고 커플은 우리처럼 남자-여자 남매를 낳았다. (보배, 루이지냐보다 한 살 정도씩 많다)

신랑, 곤잘로, 우고, 셋 다 젊은 청년 때부터 친구들이다. 셋이서 여행도 다니고, 밤새 같이 놀고 술도 마시고 한 사이인데, 이젠 셋다 아이 아빠가 되었다. 괜히 내가 감개무량하다.


하지만 감개무량한 감상에 젖기엔 현실이 너무 시끄럽다...

우고의 첫째인 프란체스코만 어린이고

(5살 반으로, 인간 언어로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되며, 배변과 식사 등의 활동을 혼자서 독립적으로 할 수 있다),

나머지 보배, 마리아, 루이지냐, 안토니오는 다 아기

(인간 언어로 의사소통이 부분적으로 가능하거나 완전 불가능. 배변과 식사가 독립적으로 불가능)인 관계로, 정신이 없긴 하다.

게다가 곤잘로네가 데려온 애완견 2마리도 같이 뛰어다닌다.

어린이 1, 아가 4, 개 2이니, 이건 뭐...

그래도 알아서들 잔디밭에서 기고, 눕고, 뒤집고, 뛰고 걷고, 쉬/응가하면서 잘들 논다.

(프란체스코를 빼고는 사실 사람이라기보단, 똥강아지 레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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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편하게들 놀 수 있으니 그건 좋다, 시골집에서의 가족 모임은.

어른들은 한편에서 먹고 마시고 수다 떨고,

아가들과 어린이와 개들은 잔디밭에서, 물탱크에서, 과수원에서 알아서들 놀고

(물론 보호자들이 번갈아가면서 안전 감시!),

이래저래 정신없고 시끌벅적하고 느긋한 친구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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