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스디페렌테'(다른 삶) 03
모리스 디페렌테 Moris Diferente. 동티모르의 2개 공용어 중 하나인 테툰어로 '다른 삶'이란 뜻이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발리섬 아래쪽, 호주의 위쪽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근 5백 년에 가까운 식민지에서 21세기 초 독립한 나라로, 한국에는 상록수 부대 파견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내가 2013년부터 일하고 생활한 곳이자, 가족을 꾸린 곳이기도 하고, 서로 다른 삶들에 대해 무척 많이 생각하게 되는 곳이다. 낯선 땅, 다른 삶, 이상이 현실에 부딪치는 순간순간의 일들을 여기 기록한다.
딱히 식당이 다양하게 없고
(2018년 1월 기준, 로스팔로스에서 회식할 수 있을만한 식당은 2개 정도 - 로베르토 까를로스 호텔과 ADM),
매번 케이터링 하는 페니 아주머니네 음식도 질릴 때면
(행사나 교육 건으로 식사를 준비해야 할 때, 학교 앞 페니 아주머니께 일인당 얼마 식으로 계산을 해드리면, 밥과 반찬을 준비해주신다. 맛있는데, 조미료를 많이 쓰심.... 그래서 맛있나?!)
직원 회식을 직접 다 같이 준비한다.
즉슨, 다 같이 요리해서 먹는 것!
수도인 딜리만 해도, 슈퍼에 수입 돼지고기, 쇠고기가 항상 나와있지만, 로스팔로스는 브라질산 냉동닭만 판다. 그런데 이 브라질산 냉동닭은, 지역주민들이 "몸에 좋지 않다"며 많이 꺼리는 편.
싼 가격 때문에 냉동닭을 사 먹을 때도 많지만, 가족들 잔치나 손님 접대는 웬만하면 기르는 닭을 직접 잡아서 먹는 것이 매우 당연하다.
(2017년 12월 기준, 로스팔로스 토종 '산'닭은 $ 8~10으로 꽤 작은 편이다. 살을 발라 놓으면 600g이 채 될까 하는 정도의 크기. 브라질산 수입 냉동닭은 800g이 $3 초반대이다. 꽤 가격 차이가 나는 셈! 브라질의 대규모 상업 양계의 온갖 문제점-생명권, 노동권, 위생, 온갖 화학약품 사용 등등-에 대해선 아주 피상적으로만 주워 들었을 뿐이지만, 이런 가격 차이를 보면 온갖 문제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단 생각이 든다. 아무리 기술 발전과 집약 산업화로 생산 비용을 줄여, 가격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쳐도, 지구 반대편의 브라질에서 생산한 800g짜리 냉동닭이 이곳 동티모르까지 와서, 현지 산 닭의 1/3 가격으로 팔린다는 사실은 의심스럽다. 도대체 현지에서 얼마나 싸게 생산을 해야, 여기까지의 운송비를 고려해도 이윤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싸게 생산을 하기 위해 얼마나 환경과, 인간과, 닭들을 쥐어 짤 것인가?)
우리 직원 회식 역시, 당연히 토종 '산'닭!
- 즉슨, 살아있는 신선한 닭을 들고 와서 잡기, 다듬기, 요리까지 다 한다는 얘기. 현지 직원분들 말로는, 닭 잡고 다듬는 것쯤이야, 10살 정도 면 다들 한다는데... 생활 생존능력이 현저히 낮은 한국인 직원 셋은, 생각만으로 벌써 긴장모드다.
회식 및 메뉴가 결정 나면, 아침 출근길에 현지 직원분들께서 마을서 신선하게 살아있는 닭 몇 마리를 들고 오신다. 바로 다 같이 달려들어 닭을 잡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목따는 것을 잘 쳐다보지 못했다. 그래도 호기심과 배우고 싶은 열망에 슬쩍슬쩍 보긴 했다.
우선 닭의 머리 부분을 칼 뒷등 같은 것으로 쳐서 얌전하게? 만든 후에, 닭의 목을 딴다. 피가 빠지면서 닭이 정신을 잃고 가만히 있게 되는데, 그때부터 털을 뽑아도 되고, 좀 더 손쉽고 깨끗하게 제거하기 위해서 뜨거운 물에 한 번 건졌다가 뺀다. 털을 뽑는 것은 그냥 손으로 뽑으면 되는데, 잔털은 영 어렵다.
털이 깨끗하게 뽑힌 닭은 배를 갈라 내장을 빼내고 알아서 해체하면 된다. 여기서는 닭발, 닭머리까지 다 넣어서 요리를 한다. 하긴 이렇게 키워서 이렇게 금방 잡은 닭은 머리부터 발톱까지 싸악 다 먹어도 될 것 같기는 하다.
2013년 10월, 처음 7마리를 잡아서, 우리 직원 10명이 다 같이 먹었다.
5마리 정도는 닭죽을 하고, 2마리 정도는 닭볶음탕을 했다. 닭죽에는 다시마와 들깨가루를 듬뿍 친 물을 자작이 붓고 쌀을 함께 넣어 끓이고, 볶음탕에는 양파와 감자를 듬뿍 넣고 매콤하게 양념을 했다. 냄비에 올려놓은 후,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업무 관련 발표랑 회의를 하고, 그동안 기다리면 어느샌가 다 익어 있다.
이후로도 몇 번 닭을 잡았는데, 장작불에 구워도 아주 맛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잡는 것은 못하겠다. 이론은 빠삭하지만, 연습이 부족한 탓이다. 그래도 털 뽑는 단계부턴 할 수 있으니, 늘긴 늘었다.
포르투갈 시골서 자란 우리 신랑도 닭 잡는 게 뭐가 대수냐며 코웃음을 치던데...
역시 시골생활은 해봐야 한다.
냉동닭이야 항상 살 수 있는 편이고, 쇠고기는 토요일 시장에 가면, 그 자리에서 소 한 마리를 잡아 해체해서 파는 것을 kg 단위로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이곳 동티모르에서는 수도 딜리를 빼곤, 아직까지, 일상적으로 고기를 팔고 사고 먹는 것이 쉽지 않다.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 모두 모두 로스팔로스에서는 귀한 편이다. 마을 잔치나, 가족 행사나, 손님이 올 때를 빼고는 별로 먹을 기회가 없다. 직접 기르고, 직접 잡고, 직접 다듬어야 먹을 수 있는 탓이다. 쉽게 슈퍼마켓이나 가게에서 곱게 손질된 것을 사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냉동닭인 팔리긴 해도, 냉동닭과 '산'닭은 절대 같은 닭이 아니다. 전자는 그냥 돈 주고 사는 '소비재'라면, 후자는 직접 기르고 돌보는 것, 그래서 내 가족을 먹이는 '존재'다. 당연히 '소중하다는 가치'가 생긴다. 소중하기 때문에 선물도 하고, 손님이 올 때 기꺼이 잡기도 한다.
일전에 한 번, 우리 한국인 직원 하나가 한국에 휴가 다녀오면서 작은 책가방을 하나 가져왔다. 그녀가 평소 모니터링을 하러 다니던 마을에서 알게 된 꼬마가 하나 있었는데, 어찌나 예쁘고 수줍게 잘 따르면서 말도 걸고 그랬는지, 오며 가며 나름 친해졌다. 그 꼬마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어 입학 선물로 가방을 하나 사와 선물한 것.
얼마나 좋아하던지, 보는 자기가 기분이 더 좋았다는 것이 그녀의 말. 그렇게 가방을 선물한 지 한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그 꼬마애가 언니 둘과 우리 집 문 앞에 턱 하니 나타났다. 예의 수줍고 예쁜 미소를 띠면서, 한 팔 엔 산닭을 안고! 가방이 너무 고마웠다며, 자기도 선물을 하고 싶었단다. 내 평생 그렇게 감동적인 선물을 본 적은 별로 없다. 가방을 선물했던 우리 직원 역시 마찬가지... 하지만 당시 같이 살던 우리 한국 여자 셋 중 아무도 닭을 키우거나, 잡아 본 경험이 없었다는 것이 비극이라면 비극.
너무 벅차고 고마운 마음으로 닭을 받아 안긴 안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셋이 같이 쩔쩔매다가, 어떻게 닭을 묶어 놓고 쌀과 옥수수 알을 주면서 며칠을 있었다. 산골 마을에서 자유롭게 친구 닭들과 하루 종일 쏘아 다녔던 닭은, 갑자기 계속 묶여 있어야 하는 것도, 혼자 있어야 하는 것도, 닭에 대해선 일자무식인 것이 분명한 사람들과 있는 것도, 다 무척 마음에 안 들어했을 것이다. 시무룩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결국엔 현지 직원분들께 부탁해, 닭을 잡아 함께 감사하게 먹었다.
가끔 현지 마을 지인 집에 놀러 갈 때도 닭을 대접받을 때가 있다. 절대! 괜찮으니, 절대! 닭을 잡지 마시라고 미리 말을 해도, 알고는 있다. 결국엔 마당에서 뛰어다니는 놈들 중 통통한 놈이 한 놈 잡힐 것을. 그래야 대접하는 분의 마음이 흐뭇해지는 것을. 그래서 놀러 가는 우리도 식용유며 쌀, 통조림 등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식재료들을 항상 바리바리 싸들고 간다. 닭 한 마리를 잡으면, 손님인 우리 셋과, 지인의 가족, 아빠와 엄마, 아이들 여덟이서 한 끼 잘 먹는다. 당연히 큰 부위는 손님들에게 얹어주려고 하고, 우리는 사양하다가도 감사해하면서 맛있게 먹는다.
처음에는 삼겹살과 배달 치킨이 무척 그리웠는데, 지금은 별로 생각이 안 난다. 기회가 줄어드니, 욕구도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한국에 들어가도, 예전만큼 자주 삼겹살과 배달 치킨을 먹고 싶지 않다. 나이가 들어서 그럴 수도 있다. 이런저런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직접 두 눈으로, 생명이 고기가 되는 순간을 매번 대하고 나면, 또 고기의 가치가 꽤나 촘촘하게 사람들의 관계와 얽혀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면, 좀 달라지는 것은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