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 Lee Oct 08. 2020

스타트업에서 성장하기, 아니면 살아남기

스타트업 문화, 현실과 이상 사이

 스타트업이란,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 벤처기업을 뜻하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생겨난 용어다.
-시사상식사전




스타트업의 멋짐

 지금의 회사, 그러니까 스타트업에 입사하기 전에 막연하게 상상했던 스타트업의 이미지는 소위 '멋있는' 것이었다.


아마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한 IT 공룡들도 한 때는 스타트업이었다고 한다. 차고지나 창고 같은 곳에서 소규모로 시작하여, 전통적인 조직 문화를 보기 좋게 깨뜨려 버리면서 어마어마하게 성장하여 이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거대 기업이 되었다.

맨바닥부터 시작하여 글로벌 기업이 되어가는 성장 과정이 나에게는 정말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나 또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런 과정을 젊을 때 꼭 경험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IT 공룡들 집합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2018년 6월, 지금의 회사, 그러니까 스타트업에 입사하게 되면서 과거에 스타트업 같은 조직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입사하고 보니, 입사하기 전에 한껏 품어왔던 기대는 현실과 너무나도 달랐다.


내가 스타트업 필드에 있지 않았을 때는 '쿨'하고 적당히 '개인적'이고 '자유'로워 보였던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입사하고 보니 단점 투성이의 조직 문화였던 것이다.


내가 느꼈던 가장 큰 단점 두 가지를 꼽아보자면,


1. 의사 결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2. 스스로 업무를 A-Z까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주니어에게는 버거울 수 있다.

 

이 무시무시한 단점 두 가지 때문에 나는 입사하고 나서 꽤 오랜 시간을 업무에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했었다. 멀리서 보았을 때는 희극인 줄 알았는데, 입사하고 보니 비극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금의 회사에서 3년 차를 맞이했다. 그것도 굉장히 만족스러운 상태로.

과거에는 나에게 비극이었던 문화가 어떻게 지금은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우리 회사는 초기 팀원이 3명일 때부터 현재 14명이 될 때까지 성장해오면서 우리 나름의 문화를 만들어 왔다. 그 과정에서 조직원도 회사도 숱한 시행착오를 함께 겪어왔는데, 나는 우리 조직이 성장하는 과정과 개인적으로 회사 생활에 불만족했던 시기, 그리고 다시 만족하게 되기까지의 보고 느낀 경험들을 공유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초기의 스타트업에 합류하신 분, 혹은 어느 정도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종사자분, 또는 스타트업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덕업 일치의 실패

'수평적 조직 문화'는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수평적 조직 문화'를 떠올려보면 보통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과연 사원의 의견과 회사 대표의 의견을 동일한 비율로 놓고 비교해보았을 때, 과연 두 의견의 중요도가 동일할까?


내가 이 조직에 입사했을 당시에는 모든 팀원이 수평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모든 사람이 수평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었기에 전문 지식을 갖춘 팀원의 의견과 관련 지식을 갖추지 못한 팀원의 의견이 동일한 선상에서 논의되곤 했다. 결국 이 과정에서 우리 조직은 아무 의사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우리 조직은 3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평적 조직 문화'를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의사가 이전과 달리 굉장히 빠르게 결정된다. 그렇다면 3년 전의 수평적 조적 문화와 지금의 수평적 조직 문화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걸까.


조직과 함께 성장해오면서 내가 배운 것은 이거다.

수평적 의사 결정이란, 직급에 관계없이 누구나 동등하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우리 회사의 의사결정 방식은 이렇다.

회의는 직급과 무관하게 수평적으로 진행한다. 다만 의사결정은 수직적으로 내려진다. 결정권자는 직급, 나이, 연차와 무관하며, 오직 주제에 대하여 높은 이해도가 있는 사람이거나 혹은 능력을 갖춘 사람이 결정한다. 


우리는 이러한 문화를 만들어 오기까지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는데, 그중에서 가장 빈번하게 저질렀던 것은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이었다.


(가장 쉽고도 빠져버리기 쉬운 다수결)



다수결의 함정


다수결로 어떠한 논의에 대해 결정을 내릴 때, '직급이 수평적이니, 결정도 수평적으로 해야 한다'라는 전제가 깔리기 쉽다. 이는 명백히 '수평적 의사 결정'에 대해 잘못 이해한 경우다.


간단한 예를 들어 보자. 

'백종원의 골목 식당'에서 장사가 잘 되지 않는 A식당을 컨설팅한다고 가정했을 때,
백종원 요리연구가의 의견과 김성주 MC의 의견이 같은 선상에서 논의가 된다면 컨설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만약 메뉴 선정을 다수결로 결정한다고 했을 때, 요리에 문외한인 다른 연예인 패널들이 김성주 MC의 의견에 손을 들어준다면 식당의 컨설팅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질까.


마찬가지로 과거에 우리 조직도 이러한 오류를 생각하지 못하고 모든 논의를 다수결을 통해 결정하려고 했다. 조직원 모두가 동등한 수준의 전문성배경지식을 갖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전문성과 배경지식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소모적인 논의만 이루어질 때도 있었고, 납득할 수 없는 결과가 나오는 일도 잦았다.


스타트업에서 수평적인 의사 결정 문화가 유지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전문성'이다. 즉, 각자가 전문성을 갖추고 논의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원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만약 구성원 모두와 이러한 가치관을 공유할 수 없다면 스타트업의 수평적 의사 결정 문화는 오히려 스타트업의 성장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입사 초기에 나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지 못했다.

스스로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여러 가지 의견을 제시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는데, 막상 내 의견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결정에 대해 자신 있게 의견을 제시하기도 쉽지 않았고, 나의 의견을 관철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스스로 업무에 대한 자신감도 잃어갔고 점점 업무에도 소극적으로 임하게 되었다.

이는 결국 낮은 업무 성과와 낮은 업무의 만족도로 이어졌다...


나는 눈물이 난다..


다행히 지금은 '수평적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 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고, 나의 목소리를 온전히 내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는 왜 힘들었을까요.


지금 우리 회사는 업무를 진행하는 데 있어 별다른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팀원 모두가 해보고 싶은 일은 자유롭게 진행해 볼 수 있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작성하면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이겠다. 하지만 내가 입사한 직후에 겪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은 오히려 '자유'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 '자유'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입사 직후, 대표님은 내가 어떤 업무던 잘 발굴해서 알아서 해주기를 바랐다. 이때 나에게 어떠한 제약도 있진 않았는데, 오히려 제약이 없는 것이 더 큰 제약이 되었다. 당시 내 기분은 들판에 방치된 어린양 같은 기분이랄까. 주변에 먹을 풀도 많고, 갈 곳도 많아 보이는데 막상 어떠한 풀을 먹어야 하는지, 어디로 가는 것이 좋은 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경험치가 부족했던 탓이다.)


반면, 나는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에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수행해나가며 나의 역량을 성장시킬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차있었다. 그리고 이 성장을 도와줄 조력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스타트업 생태계를 겪어보지 못했던 나의 큰 착각이었다. 모두가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초기의 스타트업에서는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은 설립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생기업이다. 즉, 모든 자원이 여유롭지 않다.

금전적 자원부터 인적, 경험적, 시간적 자원 모두 부족한 상황이다.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신입의 교육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

내가 입사 당시, 대표님은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투자금을 모으느라 정신없이 바쁘셨고, 개발자분들은 서비스 개발에 집중하느라 나와 서비스의 운영에 대해 논의할 여유가 없었다. 방치된 어린양 은 만족도가 수직으로 낙하했다.



 이러한 과정을 겪고 나니 '자유는 책임을 뜻한다'는 명언이 이렇게 마음속 깊이 와 닿을 수 없었다. 자유롭게 주도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사람만이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내가 겪었던 것처럼 '자유'가 성장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될 수 도 있다.


다행히 우리 조직은 내가 역량을 키울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보살펴주었다'도 해당할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 되었다.

초기 스타트업에 막 입사한 분이라면 아마 나처럼 자유로운 분위기가 주는 묘한 긴장감과 압박감 때문에 많이 불안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전전긍긍 불안해하기 보다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고자 노력한다면 곧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금의 회사는 어떨까요.


지금 회사에 갓 입사했을 때, 나에게 '수평적인 조직 문화'와 '자유로운 업무 분위기'가 굉장히 어려웠던 이유는 공통적으로 나의 업무적 역량 부족 때문이었다.


지금은 우리 회사만의 두 문화 덕분에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는 내가 이 문화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전문성을 갖추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직 문화의 일원으로서 기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레벨업 과정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조금 더 상세히 풀어보려고 한다.

아무래도 여기에 다 풀기에는 빅 이벤트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글에서 뵐게요.�

   



매거진의 이전글 인터뷰로 팀원 어필하기(feat.스타트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