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라 불리지 않은 유일한 박사의 가운과 에어컨
지금 직장으로 오기 전 마지막 직장, 대학부설학교. 약 50명의 교사가 근무하였지만 막내인 나를 빼곤 거의 교감급 실력의 막강한 지방 최고의 학교였다. 수업도 잘하고 선도(?)도 막강하여 학생 관리도 잘하고 심지어 봉사나 청소 지도도 기똥차게 잘하는 선생님들만 모인 학교였다. 그들끼리는 이른바 교감승진 티켓 1-2개를 위한 평가에 모든 걸 우선으로 걸고 1년을 근무하는 지라 나름 스트레스가 많으셨던 것 같다. 막내인 내가 친목회(당시는 상조회라 불렀다) 총무였는데 그 학교는 40명이서 회식 1차에 소주 100병을 먹었다. 2차는 노래방이었는데 간주 때 노래를 껐다는 오해를 받고 안주접시가 얼굴로 날아오기도 했다. 너마저 나를 우습게 보냐 라는 대사였지 아마. 잘 빌고(!) 달래서 회식 마치고 편도 4차선 이상의 대로에 나와서는 택시를 잡아 가경동이요, 분평동이요, 사직동이요 어르신들 모두 태워 보내드리고 나면 큰길에 덜렁 나만 남았고 그제야 술이 확 오른다. 그런데 내 주소는 청원군 강내면. 거길 가려면 육영수 가로수길을 지나 수 킬로는 달려야 한다. 그땐 대리기사는 거의 없었고 음주운전들을 많이 한 기억인데 음주검문은 있었다. 집에 있는 남편에게 연락하면 차를 몰고 나와 1킬로 앞에서 선발로 가고 난 뒤로 따라가 운전귀가하는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을 몇 번이나 했다. 대리비가 아까워서 그랬었고 정말 말도 안 되는 날들이었다.
그 직장에선 옷 이야기도 있지. 여교사가 13명 있었는데 그중 한 분은 별명이 협찬 500벌. 2년 같이 근무하는 동안 같은 옷을 입은 걸 본 적이 없다. 20년 지나 검색해 보니 전국여교장협회장이던가 여하튼 잘 나가는 교장선생님이 되어있었다. 당연한 능력자셨고 사진 보니 늘씬하고 화려하고 잘 가꾸신 외모 여전하시다. 여하튼 당시 나는 유치원, 어린이집 딸 둘 엄마이고 막 박사를 딴 아주 가난한 상태의 주부교사였다. 진심으로 아주 부럽지는 않았지만 멋진 여교사들의 옷차림이 신경이 안 쓰였다면 거짓말이다. 세탁 잘하고 깨끗이야 입었지만 종류와 벌 수가 문제지.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아, 맞다 방법이 있지 하고 실험가운을 챙겼다. 그리곤 매일 출근하면 곧바로 근무복처럼 갈아입었다. 흰 가운의 천 재질이 안 좋아 여름에는 더워 미치고 속에 옷을 안 입으려면 단추간격이 멀어 옷핀을 2-3개는 채워야 했다. 무엇보다 입고 간 초기에 동료교사들이 얼마나 웃고 놀렸던지. 대부분 안마사, 이발사야 뭐야 하며 웃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나도 비웃고 싶었으나 나는 어렸고 지위는 약했다^^ 요즘 회사동료끼리 김프로 박프로하듯이 교사들은 서로를 김박사 이박사 하던 때인데 재미있는 건 진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당시 내가 유일했으나 나만 권박사가 아닌 권선생으로 불리었다. 실험복을 입고 있는데도 권박사로 불러주는 분은 없었다.
당시에는 일직, 숙직이 있었는데 여름방학 나는 매일 학교에 출근해서 아주 커다란 본 교무실에서 전화도 냉큼 달려가서 받고 청소하러 나오는 당번 학생들도 관리하는 등 근무를 도와드렸다. 원래 목적은 에어컨이 나오는 시원한 곳에서 책을 보고 일직샘들이 사주신 짜장면 먹으러 간 거지.
에어컨 하면 할 말이 또 있네. 부설오기 전 애들이 둘 다 어린이집 다니고 11평짜리 ㅅ아파트 살 던 때구나. 그 아파트는 재밌는 게 한 동은 11평, 다른 한 동은 29평이었다. 11평은 정말 ㅋ딱지만 한 부엌과 욕실을 뺸 방에는 퀸사이즈 침대가 들어가면 책상 놓을 공간도 전혀 없었다. 그마저 서향이라 여름에는 보일러 조절기 위 실내온도가 37도 이상으로 올랐다. 큰 거리에 개업하는 슈퍼 기념품으로 주는 빨간 대야를 받으려고 내가 돌고 남편이 돌아 기어코 2개 받아왔다. 좁디좁은 욕실에 그 대야를 겨우 2개 꽉 채워 놓고 딸 둘을 한 대야에 한 놈씩 담가서 몇 시간을 보내 더위를 잊게 했던 날. 손바닥이 물을 머금어 주름으로 쪼글쪼글해진 걸 엄마 이게 뭐야 해서 귀엽지만 가슴이 아팠는데 정작 억장이 무너진 건 앞동에 사는 친구부부집에 애들과 놀러 갔을 때다 그 집에도 딸이 둘 있었는데 내 딸 둘과 또래였다. 우리 집에선 몇 발짝이면 끝나고 공간 자체가 없는데 그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야~~~ 하고 거실 끝까지 달려가던 딸들의 뒷모습과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에. 에. 컨. 바람!!!!! 결국 얼마 후 무리하고 또 무리해서 제일 작은 벽걸이형 에어컨을 사서 달았다. 고시원용으로 생각하면 딱 맞다. 그 이후 이사를 5번 이상 같이 했나 보다. 에어컨 구입비보다 이전비를 훨씬 많이 썼던 우리 첫 에어컨이 생각난다.
결론은 딸들아 잘 커줘서 고마워. 미안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