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었다. 그런 면에서 예술가들이 부러웠다. 무형의 음악은 영원히 남아 좋고 유형이고 유한이지만 멋진 작품을 남기는 미술가도 부러웠고 유형 같았지만 결국은 무형에 가까운 문학작품의 작가도 부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뭘 굳이 남기려고 해???
이 나이쯤이면 나도 몇 권의 책을 남길 줄 알았다. 그것도 실패. 단독으론 고작 석, 박사 학위 논문과 학술지 공동 논문 몇 편. 편저와 공저가 몇 권이긴 하나....
손자라도 얻고 싶어 비혼인 아이에게 반협박, 반설득하여 결혼을 서둘렀다. 아쉽기도 하고 서운키도 하고 괜찮기도 하고. 내가 저 딸들 서울아이 만들려고 얼마나 많은 고생과 절약과 저축과 대출을 저축을 하였던가. 한국이라는 세상의 절반인이 여기 산다는데 또 경상도 고향인. 내가 경상도라 경상도가 싫다 하면 누군가 이해해 주겠지? 사실 정확히 말하면 비서울, 비수도권, 한마디로 촌사람이 싫다. 아빠를 보내고 그 훌륭하고 선하고 이타적이었던 아빠의 죽음을 두고 이웃들이 했던 망언과 망발. 부러움은 질투와 왜곡으로 표현하는 걸로밖에 생각 안 되는 일들. 말들. 다시는 거길 돌아보지 않게 만든다. 군항제의 도시 진해에서 나고 자란 나, 아빠가 떠나시고 한번도 안 갔다. 그러는 동안 벌써 12번의 벚꽃이 피고 졌다. 촌사람인 내가 촌사람이 싫다.
난 내 마지막을 내가 처리하고 싶다. 불가능한 일이라 더 아쉽다. 그래서 스님들이 암자를 태워 자살하는 것인가?